지승호님의 인터뷰정치에 [강준만] 앞으로 인터넷에 글쓰겠다 편이 있습니다. 이후 5개월이 지났는데 강준만이 사이버 세계에 데뷔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자 한국일보 칼럼을 보니 네티즌의 글을 읽고는 있는 듯 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래 인용한 칼럼은 네티즌의 비판에 대한 강준만의 답글로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강준만의 본의를 의심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욕심 혹은 아집입니다. 어쩌면 그는 노무현에 대한 충정을 독점하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준만형제가 언제부터 독수리그룹에 합류하게 된 게요? 재앙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는 독수리 오형제는 조갑제형제, 빠콩형제, 구라주필형제, 송복형제, 지만원형제를 말함이 아니었더란 말이오?』 |
일단 강준만의 글 부터 검토하기로 하고..
[한국일보] 열정의 축복과 재앙 - 강준만 열정은 아름답지만 배타적이다. 자신이 열정을 쏟는 일에 반하는 언행에 과격하게 대응한다. 노무현 정권은 열정의 축복으로 태어난 정권이지만 동시에 열정의 재앙에 직면해 있다. 열정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분열은 지난 대선에서 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고 싶어 한다. 새 집을 짓기 위해 헌 집을 철거하는 데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재활용할 수 있는 자재를 살려가면서 철거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다 때려부수는 방법이 있다. 노 대통령은 후자의 방법을 택했다. 새 집을 지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어디에서 살 것인가? 노 대통령은 그 계산도 하지 않았다. ‘미래지향적’이라는 강박에 압도돼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때려 부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헌 집이 꼭 민주당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용인술 또는 대인관계마저도 그런 식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 주변엔 헌 집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몰려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 대통령처럼 스스로 자신의 지지 기반을 와해시키려고 그렇게 헌신적으로 애를 쓴 지도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건 ‘창조적 파괴’가 아니라 ‘자기 무덤 파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고언을 했다. 그러나 우이독경(牛耳讀經)이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노 대통령의 고집 때문일까? 그게 이유의 전부인 것 같지는 않다. 잠시 인터넷에 들어가보시라. ‘재활용파’와 ‘다 때려부수기파’ 사이의 갈등이 치열하다. 나는 ‘재활용파’로서 그 주장을 담은 책까지 냈다. ‘다 때려부수기파’의 공격이 빗발쳤다. 이론 논쟁이 아니다. 나의 양심과 양식을 문제삼는 인신공격이다. 그러나 귀담아 들을 만한 비판도 있다. 내가 총선 승리에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총선이야 어차피 ‘정치자영업자들 집안잔치’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총선에서 패배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총선 승리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남은 4년여간 국정운영을 염려하는 것이다. 한국정치의 암(癌)이라 할 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30년 앞을 내다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내 의문에 대한 답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노 대통령도 10석이라도 좋으니 전국정당 한번 해보자는 말을 한 걸로 널리 보도되었다. ‘다 때려부수기파’의 수가 많은데다 그들의 열정이 워낙 뜨거워 노 대통령이 그 노선에서 이탈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노선이 ‘열정의 재앙’이라는 나의 판단이 옳은가 그른가는 시간이 입증해줄 것이다. 새 집을 짓는 데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의 순수성과 진정성도 머지 않아 밝혀질 것이다. 지금 나같은 사람이 당면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제2의 분열이 ‘재활용파’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노 정권의 자해(自害) 노선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노무현 죽이기’ 만큼은 왕성하게 비판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입장에 대한 공격도 만만치 않다. 노 대통령의 탓이 더 큰 데, 왜 엉뚱한 쪽을 문제삼느냐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분열의 시대인가? 아니면 열정의 축복에 대해 치러야 할 비용을 지불하는 과도기적 진통인가? /전북대 신방과 교수 |
박통의 슬로건은 조국근대화입니다. 좋습니다. 조국 근대화가 나쁜건 아닙니다. 문제는 그가 조국근대화를 혼자서 독점하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71년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경부고속도로를 파헤쳐 도로 논밭으로 되돌려 놓았을까요? 천만에요. DJ가 당선되었어도 박정희의 산업정책은 상당부분 계승되었을 것입니다.
이승만이 나쁜 것은 그가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을 독점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나라에 애국자는 자기 한사람 밖에 없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독재가 달리 독재이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독재입니다.
기성세대들은 흔히 말하곤 하지요. 보릿고개 시대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 게 된 것이 다 누구 덕이냐고요. 아 인정합니다. 인정하고 말구요. 그러나 나는 그런 발언을 들을 때 마다 섬뜩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우리가 고생해서 이만큼 일으켜 세웠는데 후손들에게 대접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이걸 내손으로 뽀개버려?!』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성세대들에게는 분명 이런 고약한 심리가 있습니다. 조중동들의 심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집이죠. 이건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구주류 무엇이 문제인가?
정균환, 박상천, 한화갑들도 이나라
민주화에 공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이제부터 공을
한번 세워보겠다는 노무현과 386들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김근태가 한 것이 노무현이 한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김근태의 위업은 과거의 것이고, 노무현과 386들은 이제부터 한번 해보려는 것입니다. 민주화투쟁 역시 독점되어서 안됩니다. 공을 세웠으면 댓가를 바랄 일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물러나는 것이 온당합니다.
왜 박통은 조국근대화를 혼자서 독점하려 했을까요?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DJ를 믿지 못했고, YS도 믿지 못했고 JP도 믿지 못했고 아무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추해졌습니다.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강준만의 심리 저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역시 독점욕입니다. 그는 DJ와 노무현을 등극시킨 킹메이커입니다. 부인하지 않습니다. 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공을 내세워서 이제부터 공 좀 세워보겠다는 젊은이들을 방해해서 안됩니다.
강준만, 지금은 변신을 시도할 때
지난날 우리가 강준만 앞에 모여들었던 것은
그 시점에 그와 그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의 역할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적절한 변신입니다.
필자가 진중권들에 실망하는 것은 그가 제 2의 유시민이 아니라, 제 2의 강준만이 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강준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또 대한민국을 한번 엎어먹어 보겠다는 그럴 듯한 야심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그릇의 크기는 그 야심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말 많은 시골 꽁생원이 되어서 어깨너머 훈수나 두려 해서는 안됩니다. 성공한 논객이 되기 보다는 실패한 개혁가가 되는 것이 더 멋있지 않습니까? 왜 팔 걷어부치고 나서지 못합니까?
노무현이 걱정됩니까?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습니까? 만약 정말로 그렇게 느껴진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거 일종의 조로증세입니다. 믿으세요. 아버지가 자식들 믿듯이 믿으세요. 노무현을 믿고, 386을 믿고, 역사를 믿고 개혁세력의 총체적 역량을 믿으세요.
『재앙』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준만이 이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절은 복된 나날이었단 말입니까? 걱정 좋습니다. 그런데 그 걱정이 언제부터 미국에 가 있는 조선일보 구라주필 몫이 아닌 강준만의 몫이 되었습니까?
오지랖도 넓은 구라주필은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서 노무현정부를 걱정하며 오늘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강준만이 거기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입니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이건 추해진 겁니다.
지난날 우리 선배세대들은 북한의 남침이 걱정되어 민주화투쟁을 멈추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 따위 걱정에, 우려에, 노심초사는 최병렬이 하고, 조갑제가 하고, 빠콩이 하고, 기성세대가 하고 수구세력이 하는 것이지 적어도 우리의 주제가 아닙니다. 곧 죽어도 우리는 앞만 보고 가는 겁니다.
1라운드는 잊어 버리고 2라운드 준비해야
강준만이 지금까지 이룬 것을 강준만 드라마의 1라운드라 칩시다. 바야흐로 2라운드가
시작되려 합니다. 1라운드의 영광은 이미 옛 일이 되었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2라운드에는
2라운드에 맞는 변신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용기 그리고 믿음입니다.
강준만이 이 나라에 우연히 있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 나라에 무수한 작은 강준만들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