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중심적 사고를 버려라. 구조 몰라도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대충 하지 뭘 복잡하게 인력, 척력 시시콜콜 따지냐 이러시면 곤란하다. 그걸 따지는게 구조론이다. 척력 한 가지로 일원화 시켜야지 퇴계 이원론으로 가면 이미 망해 있다. 뼈가 있어야 살이 붙는다. 살은 누구나 본다. 살만 봐도 문제는 없다. 뼈는 안목있는 사람이 보는 거다. 구조론은 특별히 안목있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다. 소를 그리되 보통 사람은 살을 그리고 오직 이중섭이 뼈를 그렸다. 모델이 몸매를 과시해도 그렇다. 일본모델은 통통한 가슴을 부각하는 경우가 많더라. 한국모델은 앙상한 쇄골을 과시한다. 이건 조금 더 나아간 것이다. 보통에 머무르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구조의 뼈를 볼 수 있어야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척력은 일원론이고 인력은 이원론이다. 인력을 쓰려면 사전조치로 척력세팅이 필요해진다. 반면 척력은 인력 없이도 작동한다. 척력이 일의 상부구조라면 인력은 하부구조다. 그런데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무슨 사상이든 대개 일원론으로 출발해서 이원론으로 나아간다. 빌어먹을 퇴행이다. 왜냐하면 이원론이 더 쉽거든. 그래서 망하고 마는 것이다. 퇴계가 율곡보다 매력적이지만 그래서 일본이 망한 것이다. 척력은 밀어내고 인력은 잡아당긴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해서 조선과 만주와 중국을 잡아당긴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밀어냈다. 척력이 작용한 것이다. 일본에 전해진 퇴계사상이 문제였다. 율곡사상은 일본에 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퇴계가 국제적으로 인기가 있다. 물론 한국 지폐는 오천원짜리 율곡이 천원짜리 퇴계를 이긴다. 망하기로 작심하면 뭔들 못하겠느냐마는 흥하려면 율곡이 정답이다. 공자 척력과 노자 인력을 비교해도 같다. 노자는 웃는 얼굴로 사람을 끌어들이니 대중적 인기가 있다. 공자는 성난 얼굴로 소인배를 밀어내니 다만 아는 사람이 소인배의 압박을 피해 공자문하로 모인다. 척력이나 인력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관측자가 보는 방향이 다를 뿐 사건 내용은 같은 것이다. 척력이 인력이고 인력이 척력이다. 그런데 인력을 받아들이면 망한다. 주는게 받는 거고 받는게 주는 건데 받으면 망한다. 점원이 물건을 파는 척력이나 고객이 물건을 사는 인력이나 동일한 사건이다. 일본이 주는 10억엔을 받는 즉 박근혜가 망한다. 갑을관계다. 받는 사람은 을이고 주는 사람이 갑이다. 주는건 어렵고 받는건 쉽다. 받는건 손만 벌리면 되니까. 주는 쪽을 보건 받는 쪽을 보건 관측자의 시점 차이일 뿐 사건 내용은 동일하다. 구조라는건 주고 받는 둘을 에너지로 꿰어서 통짜덩어리의 하나로 보는 것이다. 주는 쪽을 주목해야 한다. 받는 쪽을 주목하는 순간 에너지는 간 곳 없다. 에너지가 없어도 받을 수는 있지만 에너지 없이 줄 수는 없다. 주는 데는 반드시 비용이 든다. 불우이웃돕기를 해도 오며가며 차비가 든다. 그 차비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의 열쇠다. 전기라도 주는 것이 마이너스고 받는 쪽이 플러스다. 방향이라고 하지 않고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은 방향이 헷갈리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도 증가방향이다. 그런데 과연 어느 쪽이 무질서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과학자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구나 한다. 얼핏보면 질서도의 증가로 보인다. 조선왕조처럼 모두 가난하면 조용하니 질서가 있다. 돈이 돌면서 시끄러워진다. 어느 동네는 금광이 터져서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네 한다. 그러나 사회질서와 에너지의 질서는 다르다. 에너지 준위가 높은 것이 질서다. 엔트로피는 에너지가 없는 것이 무질서다. 살을 보느냐 뼈를 보느냐다. 에너지가 뼈다. 에너지의 질서를 봐야 한다. 확실한 것은 마이너스 방향이라는 거다. 중첩의 해제다. 최초에 중첩이 성립하는 것이 척력이다. 어떻게든 중첩이 성립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보통은 이 단계를 건너 뛴다. 군대를 소집하는 절차를 건너 띄고 이미 군대가 모여 있다고 전제깔고 이야기 시작한다. 그래서 망한다. 어떤 군대는 이기고 어떤 군대는 진다. 왜? 장군이 지휘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군대 소집절차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승방략으로 가면 이길 수 없다. 중앙에서 파견된 지휘관과 현지에 소집된 군대가 손발이 안 맞는다. 진관체제로 가면 각 진영이 서로 견제해서 합동작전이 안 된다. 2차대전때 일본군은 출신지별로 사단을 만들었는데 이게 진관체제와 같아서 곧장 분열된다. 육해군 합동작전을 못하는게 일본군 주특기다. 소련군이 2차대전 후반에 강해진 것은 이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병과 전차와 공군과 공수부대를 통합운영하는 주코프의 전격전이다. 보병 따로 전차 따로 가면 백퍼센트 깨진다. 할힌골 경험이다. 히틀러도 못한 것을 주코프가 해냈다. 미군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625 때 중공군에게 알차게 털렸다. 미군이 국군과 합동작전을 못하니 현리전투가 망했다. 같은 미군끼리 합동작전 안되니 중공군이 38선까지 침투해도 몰랐다. 소련군에 비하면 최악이다. 근데 전쟁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이런 소집절차 문제는 논하지 않는다. 왜? 피곤하고 재미가 없으니까. 근데 왜 재미가 없지? 난 재미있는데? 뇌구조가 다른 거다. 뇌가 그 지점에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평 위주로 간다. 독소전 논하면 로멜찬양 괴링 욕한다. 괴링이 사고쳐서 공군의 지원이 안 되고 어쩌구 한다. 한심하다. 원래 독일군은 그게 안된다. 군대의 개념 자체가 다른 거다. 로멜이 잘한게 아니라 로멜 한 넘이 부각된다는 사실 그 자체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거다. 이순신이 부각된다면 조선군이 망해있다. 전쟁은 소집단계에서 이미 승패가 결정되어 있다. 북한지역 출신 장성이 남한지역 출신 사병을 지배하는 구조로 되어서 625는 싸우기 전에 결정되었다. 그래서 남한 출신인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때까지 북한 출신이 군부를 틀어쥐고 있었으니. 척력을 단순히 미는힘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에너지의 중첩으로 계를 유도하는 절차다. 최초에 사건을 격발하는 조건을 갖추기다. 방향을 논하려면 그 방향이 있어야 하는데 계를 지정해야 방향이 생긴다. 척력은 처음 계를 유도하는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력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애국, 충성, 효도 등은 인력중심적 사고다. 우리가 원래부터 집단이나 조직에 잡혀있다는 망상이 모든 실패의 원인이 된다. 그런게 어딨어? 타자성으로 출발하기다. 비워놓고 제로베이스에서 사유를 시작해야만 한다.
◎ 국가에 잡혀 있다는게 애국 처음부터 ‘우리가 남이가’ 하면 망하는 거다. 너희가 남이다. 타자성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존재는 서로 밀어내려고 하는 것이며, 뭉치는 것은 외부에서 더 큰 적이 침략해 왔을 때 한정이다. 외부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좁은 공간으로 몰려서 자연히 뭉쳐진다. 적군이 침략하거나, 혹은 호랑이가 출몰하여 살려고 도망치다 좁은 공간에 몰리면 결과적으로 인력이 형성된다. 우리가 집단이 만들어지는 최초지점을 사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군의 침략이라는 척력이 없으면 이순신 장군의 지휘력이라는 인력도 없는 거다. 국가나 가족이나 서열이나 전통이나 이런 인력적 요소들이 원래부터 존재하여 있다는 숨은 전제를 깔고 들어가면 답이 없다. 그 깔고 들어가는 숨은전제를 타파해야 한다. 외부로부터의 침략은 다양하다. 외적 뿐 아니라 천재지변도 있고 세월호의 비극도 있다.
◎ 왜군이 쳐들어오니 국가가 만들어진다. 외력에 대항하여 내부를 결집하는 힘을 뭉뚱그려서 국가라고 한다. 문제는 척력이 먼저라는 사실을 우리가 확고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거다. 대통령이 먼저라고 생각해버리면 일이 꼬인다. 촛불이 먼저고 광장이 먼저고 분노가 먼저다. 대중의 분노는 척력이다. 척력이야말로 국가를 탄생시키는 근원의 힘이다. 이쯤 되면 보수꼴통들이 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광장을 거부하고 촛불을 혐오하는지 알만한 것이다. 그들은 권력이라는 인력을 주장하고 촛불이라는 척력을 부정한다. 데모를 부정하고 시민의 분노를 부정한다. 대신 지도자의 사랑을 들먹인다. 분노가 척력이면 사랑은 인력이다. 거룩한 분노에서 진정한 사랑이 나온다. 분노가 없는 일방적 사랑타령은 가짜다. 국가에서 영장을 보내 군대로 끌고가는 힘은 당기는 인력의 힘이다. 그 국가의 힘은 광장의 촛불이 만들어낸다. 우리가 척력우선주의 사고방식을 익혀야 한다. 모든 조직이 다 원래부터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조건에서 유도되어진 것이다. 그 유도절차를 봐야 한다. 그러한 유도절차를 생략하므로 박그네라는 괴물이 등장하는 거다. 인력중심주의 망상에 빠져 말이다.
국민은 나를 사랑해. 위험한 생각이다. 그러다 한 순간에 훅간다. 사실 박빠들은 문재인을 밀어내려 하다가 박그네에게 잡힌 거다. 밀어내는게 그들의 진짜 목적이다. 그러므로 박빠들은 서둘러 배신한다. 척력은 통제되는 힘이며 인력은 통제가 안 된다. 척력은 인력으로 변환된다. 인력은 척력으로 변환이 안 된다. 밀다가 당길 수 있지만 당기다가 밀 수 없다. 해봐라 되는가? 밀려면 당기던 것을 놓아야 하는데 놓는 순간 도망가버린다. 통제권을 벗어나 버린다. 박근혜가 중국을 당기다가 손을 놓으니 중국이 곧 통제권 밖으로 나가버렸다. 밀당실패다. 밀당은 되는데 당밀이 안 된다. 같은 화살이라도 시위에서 밀어내는 화살과 시위를 떠나 과녁으로 끌려가는 화살은 에너지 위상이 다른 거다. 빵을 도너츠로 만들 수 있으나 도너츠를 빵으로 만들 수는 없다. 에너지의 비가역성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점증법이 있고 소거법이 있다. 점증법은 플러스이니 인력에 해당되고 소거법은 마이너스이니 척력에 해당된다. 영국의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 무덤을 발굴할 때다. 지역을 30개의 칸으로 나누고 하나씩 발굴한다. 맨 마지막 30번째 칸에서 겨우 성공했다고. 이건 플러스 방법인가 마이너스 방법인가? 30개에서 하나씩 빼는 마이너스다. 왜 플러스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가장 유력한 곳을 먼저 발굴해보고 그 다음으로 유력한 곳을 발굴하면 된다. 플러스법이 확실히 시간을 단축시킨다. 그런데 왜? 흙더미 때문이었다. 주변에 다른 왕들의 거대무덤들이 있었기 때문에 공간이 비좁아서 파낸 흙을 치울 수 없다. 1번 지역을 발굴하며 2번 지역으로 옮겨둔 흙을 다시 1번 지역으로 옮기는 등 흙더미를 돌려막기 해야만 했다. 어쨌든 마이너스법을 쓰면 갈수록 성공확률이 올라간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발굴에 임할 수 있다. 플러스법을 쓰면 확신이 없어 갈수록 맥이 빠진다. 단 운이 좋으면 단번에 발굴할 수 있다. 동전을 잃었다면 플러스 법으로 가서 가장 유력한 곳 순서대로 뒤지면 된다. 방바닥에 잡동사니가 널려 있다면 곤란하다. 동전을 찾을수록 집안이 어질러져서 마침내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마이너스 법으로 가야 한다. 우리가 인력중심주의 플러스법에 빠져 있는 것은 인력이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잘못된 경우는 영영 해결되지 않는다. 구조론은 중요한 일에 쓴다. 사소한 일이면 점증법이 낫다. 동전 하나 찾는데 방을 30개 구획으로 나누고 서랍을 옮기고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순실 비밀장부를 찾으려면 소거법이 맞다. 플러스가 쉬운뎅? 인력이 편한뎅? 이런 소리 하는 사람은 진지하지 않다. 동전 주우러 온 사람이다.
세상은 오직 뺄셈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덧셈은 뺄셈을 반대방향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셈을 해도 열 손가락을 모두 펼친 다음에 하나씩 제거하는게 맞습니다. 주먹을 쥔 상태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며 셈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상한 사람입니다. |
손가락으로 셈을 했는데 손가락 11개가 나와버리면 기존 체계가 무너져버린다.
혹시나 모를까 11개 일수도 있으니 10개로 잡아 놓고 셈을 해야 내부 체계가 유지된다.
나머지 1개의 손가락이 남는다? 능력이 안 되면 모르미로 둬야 한다.
초등수학에서 5나누기 2하면 2와 나머지 1로 되듯이 소수점은 나중에 일이고
그림을 그려도 부분을 먼저 퀄리티 있게 그리면 결국 손가락 11개가 나와버리니 당황스럽다.
그러니 전체적인 구도를 먼저 잡고 속살을 채우는 형식이다.
그렇게 그리고 나니깐 손가락 1개가 남는데 인지가 안될 뿐 어차피 한 통속이다.
11진수는 분명 헷갈리는데 백분율을 넣어버리면 이해가 쉽다.
분수 덕분에 소수가 나오고 소수점이 나오고 반올림 반내림이 나오는 셈
1부터 무한까지 더하는 건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틀렸다.
1이란 숫자가 무한으로 쪼개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제 기억에 서양인은 주먹을 쥔 후 새끼 손가락부터 하나씩 펼치며 세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