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의 단점은 너무 쉽다는 거다. 어려운 것은 낱낱이 설명하면 되는데 쉬운것은 설명할 수 없다. 이런 게임맵은 졸라리 어색하다. 딱 보면 느낌이 온다. 원근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근법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가? 소실점이 어떻고 하며 설명하자면 매우 복잡해진다. 설명 필요없다. 딱 봤는데도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5백방 외에 답이 없다. 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는가? 느꼈다면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어색함을 느꼈는데 무시했다면? 왜 사냐고 물어보고 싶다. 왜 살어? 이 양반아!
궁금한건 풀어야 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밥이 넘어가는가? 숨이 쉬어지나? 목에 가시처럼 딱 걸려야 하는거 아닌가? 나는 진화론을 처음 배우면서 이 그림이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딱 봐도 이상하잖아. 그렇지 않은가? 주둥이가 튀어나오면 머리가 흔들려서 달리기를 할 수가 없다. 이게 어색하지 않다는 바보들과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논리가 필요하랴? 아닌건 아닌 거다. 저 진화론 그림을 나만 본 것이 아니다. 전 세계에 수 많은 천재들이 다 봤을텐데 누구도 이 그림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다. 1초 만에 판단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한 거다.
결국 나는 과학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인류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지성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소실점은 1초만에 알아채는 건데 5천년 동안 동양인 중에 그것을 본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피타고라스는 대장간 앞을 지나다가 대장장이의 망치소리를 듣고 바로 화음을 알았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화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음치라서 그렇다. 그런데 언젠가 다섯 살 쯤 되는 꼬마가 실로폰을 치면서 ‘엄마 이 소리와 이 소리가 서로 좋아해.’ 하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다섯 살 꼬마도 곧 알아보는 화음을 나는 아직도 힘들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본질적인 것이 걸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관점이다. 생각의 방향이다. 거기서 막힌다. 거기서 갈린다. 이후 완전히 다르게 된다. 구조론은 수학이지만 수학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수는 낱개로 시작한다. 계측을 목적으로 한다. 관측자의 포지션이다. 구조론은 반대다. 사건을 일으키는 자의 포지션이다. 계측되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그것은 에너지다. 그것은 중첩이다. 그것은 낳음이다. 그 낳음의 자궁이다. 아기가 태어나야 계량이 된다. 산모는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 어느 쪽도 아니다. 낳아봐야 안다. 쌍둥이를 낳을 수도 있다.
아기를 유산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인 듯 두사람이며 어쩌면 세사람일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애매한 상태가 바로 에너지다. 중첩이다. 구조론은 거기서 시작한다. 위 그림의 고리는 하나인가 둘인가? 1이라고 할 수도 없고 2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태가 에너지다. 곧 위치에너지다.
흔히 각운동량이라고 한다. 김연아가 자세를 낮추면 갑자기 회전속도가 빨라진다. 속도를 내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빨라진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지? 그게 에너지다. 그 에너지가 어떤 사람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거다. 김연아가 요술을 부렸나? 그게 안 보이면 대화가 안 되는 거다. 김연아가 두 팔을 크게 벌리면 곧 궁수가 활을 잡아당긴 듯 팽팽한 긴장을 여러분은 느껴야 한다. 김연아가 팔을 크게 벌려 큰 동작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긴장감을 못 느낀 사람은 화살 한 번 쏘아보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대화가 되나? 그런 사람은 김연아 피겨를 왜 보는가? 보이지도 않는데 도대체 뭘 보는거야? 당신은 김연아를 보면 김연아가 보인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 펼치면 움츠림이 보이고 움츠리면 펼침이 보여야 한다. 느리면 빠름이 보이고 빠르면 느림이 보여야 한다. 그게 안 보이는 사람과의 대화는 불능이다. 설명 못한다. 못 알아듣는다. 이해 안 된다고? 직접 스케이트를 타보시라. 구조론은 딱 하나면 알면 된다. 그것은 에너지의 방향성이다. 정지해 있는 것은 그 방향성이 없다. 움직여가는 것은 그 움직이는 상태로 정지해 있다. 움직인다는 것은 외부의 관측자 시점에서 얻은 값이고 그 자체로는 움직여 가는게 아니다. 내부에서 어떤 의사결정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은 태양주변의 궤도 위에 단진동 형태로 정지해 있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을 돌지 않는다. 태양에 붙잡혀 태양계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방향성이 없다. 방향성을 가지려면 최소한 둘 이상이어야 한다. 만물은 에너지 효율성을 따른다. 어떤 하나는 에너지가 없으므로 사건은 반드시 둘 이상에서만 일어난다. 김연아가 하나로 보이는가? 실패다. 팔을 벌려서 둘을 만들어낸 것이다. 투수가 공을 던지기 앞서, 골퍼가 스윙을 하기 앞서 몸을 한껏 펄쳐 둘로 나누어 대칭을 만드는 절차가 있다. 둘에서 시작한다. 둘이 하나를 공유하면 그만큼 효율적이다. 사건을 진행하며 그 효율성을 잃는다. 둘이 하나를 공유하다가 그 공유하는 토대를 잃고 계에서 이탈하여 떨어져 나가는 것이 사건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 다섯 번 대칭을 만들고 그 대칭의 교차지점을 잃는다. 다섯 번 잃는다. 그리고 완전히 갈라선다. 그리하여 종결된다. 그러므로 만물은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효율성을 잃으며 그 에너지를 잃는 만큼 보상받는 것이 있다. 만물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하는 경로를 따른다. 정유라는 반대로 비효율을 따른다. 비축해둔 돈이 있으니까. 공부를 잘 하는게 효율적이다. 비싼 말을 사들이는건 비효율적이다. 돈만 수십억 깨졌다. 자연은 비축이 없으므로 효율을 따른다. 비효율로 간다면 즉시 에너지를 소비하고 해체된다. 방향성이 있는 것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최대화 되면 소멸한다. 에너지는 주로 열로 변하여 사라지게 된다. 당신이 어떤 것을 봤다면 그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버텼다는 것이고 곧 효율적으로 기능했다는 의미다. 비효율적인 자동차는 3년 안에 폐차된다. 비효율적인 가게는 6개월 안에 폐업한다. 거북이는 효율적이라서 오래 산다. 화살을 쏘아보내듯이 최대한 살려가며 사건을 연결한다. 방향성을 본다는 것은 에너지의 입구와 출구를 본다는 것이다.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을 본다는 것이다.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을 알아챈다는 것이다. 국지적으로는 비효율이 있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자원들은 효율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트럼프 행동은 분명히 비효율이지만 인류로 보자. 비효율인 미국을 폐기하고 보다 효율적인 중국으로 문명의 축이 옮겨간다. 인류전체로 보면 트럼프를 써서 미국을 폐기해 버리는게 효율적이다.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브렉시트와 트럼프는 보다 효율적인 지구관리가 된다. 지구온난화를 앞당기는 미국을 폐기해야 지구가 살아난다. 한국은 굴뚝패권과 스마트패권 사이에 세대교체가 진행된다. 박근혜를 써서 굴뚝패권의 해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명박근혜 10년이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방해자인 굴뚝패권을 종식시켜 집단의 의사결정을 쉽게 만드는바 곧 효율달성이다. 진보하고 있다.
구조론은 어렵게 설명할 필요없이 그냥 보이고 그냥 들리고 그냥 느껴지는 것입니다. 밸런스가 맞아지면 편안함이 느껴지고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일의 다음단계가 보이지 않으면 답답하게 느껴지고 다음 단계가 보이면 시원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박원순의 땡깡에는 다음 단계가 안 보여서 답답해지고 문재인의 쾌도난마에는 다음 단계가 보여서 시원시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트럼프를 보고 시원시원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트럼프를 보고 답답하다고 합니다. 크게 보는 사람과 작게 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작게 보는 사람은 컨닝이 시원시원하고 공부가 답답하며 크게 보는 사람은 공부가 시원시원하고 컨닝이 답답합니다. 다음 단계가 안 보이는 겁니다. 컨닝해서 어쩌려고? 그래 컨닝해서 성적 올렸다 치고 그 다음은 어쩔 건데? 그 다음이 안 보이잖아요. 답답하잖아요. 그게 방향성입니다. 일의 다음 단계가 보이는 것이 깨달아야 할 방향성입니다. |
구조론이 쉽긴 쉽죠.
자신이 들어있는 시스템과 결별하는게 어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