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의사결정비용으로 모두 설명한다. 의사결정 비용을 늘리는 방향으로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경우는 계가 깨져서 사건이 진행되지 않는다. 자동차가 고장났다. 계속 가려면 비용이 필요하다. 비용이 없다. 그러므로 사건은 중지된다. 고장난 자동차가 벌떡 일어나서 스스로 수리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 일은 절대로 없다. 밭에 씨앗을 뿌린다. 곡식이 자란다. 꽃이 핀다. 열매를 맺는다. 이건 계속 가는 거다. 그 과정에서 태양에너지가 소비된다. 분명히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 과정에서 소비는 최소화된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나무가 계속 자란다. 나무가 1킬로 높이까지 자랐다면? 지상에서 1킬로미터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고성능 식물 펌프는? 그런거 없다. 지구상의 식물은 최대 100미터까지 물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므로 계속 갈 수 없다. 식물이 성장을 멈추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리는 것은 에너지소비를 최소화 하는 전략이다. 에너지 소비가 최대화 되면 죽는다. 어떻든 비용을 줄여야 한다. 화살을 쏜다. 화살은 날아가면서 어떻게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화살의 진행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 하는 경로를 따른다. 결따라 가는 것이다. 결은 에너지 소비가 최소화되는 루트다. 최대화 된다면?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경우다. 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지 않고 반대로 하류에서 상류로 흐른다면? 못 간다. 그 경우는 에너지 소비가 최대화 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에너지는 보통 열로 변해 사라진다. 자연은 에너지 소비가 최소화 되는 경로를 따르며 반대로 에너지 소비가 극대화 되는 경우는 폭발과 같아 폭발적으로 사라진다. 사건이 중단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에서 무수히 그 반대의 현상을 목도하게도 된다. 에너지 소비를 극대화 해도 잘 가는 경우다. 그 경우는 재벌이 비축해둔 에너지를 꺼내 쓰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호화판으로 파티를 연다든가, 뻘짓으로 돈을 날려버린다거나 하는 짓이다. 에너지 소비가 극대화 되므로 오래가지 못하지만 워낙 저축해둔 돈이 많아서 잠시 가능하다. 의사결정비용을 줄이는 방법은? 일치와 연동이다. 주파수가 일치하면 공명이 일어나 비용이 줄어든다. 연동은 다음 단계로 이어가는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상류에 사는 부자는 하류에 사는 빈자를 엿먹일 수 있다.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상류에서 쓰레기를 버리면 하류로 떠내려온다. 상류를 통제해야 비용이 줄어든다. 상류에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면 하류에서 쓰레기를 건지는데 드는 비용을 백분의 1로 줄인다. 이것이 권權이다. 그 권한이 권리되고 권력되어 세상을 씨줄날줄로 조직한다. 장기전과 단기전, 내전과 외전, 국지전과 전면전이 뒤섞여 있어서 권을 교통정리하기 어렵다. 우주의 모든 것은 극단적인 상태에 몰려 있다. 우주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춥거나다. 중간은 없다시피 하다. 돈이 너무 많거나 돈이 너무 없거나다. 적당한 경우는 잘 없다. 그것은 원리적으로 없는 거다. 부족민은 돈이 전혀 없다. 없어야 한다. 부자는 돈이 너무 많다. 많아야 한다. 플러스 아니면 마이너스다. 플러스 모드로 가면 돈이 너무 많아지고 마이너스 모드로 가면 너무 없어진다. 중간은 원리적으로 없다. 우주의 곡률이 플러스냐 마이너스냐다. 중간은 없는 거다. 조금이라도 플러스면 그걸 모아서 무한대로 만들 수 있다. 이윤이 0.0001이라도 계속 모으면 무한히 번다. 손실이 0.0001이라도 지속되면 무한히 거지된다. 중간은 없다. 지구도 추운 곳은 무한히 춥고 더운 곳은 무한히 덥다. 중간지역인 온대지방은? 무한히 변한다. 무한히 춥거나 무한히 덥거나 무한히 변덕스럽거나다. 속도를 계속 높이거나 계속 줄이거나 아니면 무한히 변속하거나다. 그 중간은 원리적으로 없다. 모든 생물 종은 극단에 있다. 치타는 속도의 극한에 있다. 사자는 포식자의 극단에 있다. 인류도 수백만년 동안 멸종 직전에 와 있었다. 어떤 종이 조금 형편이 풀렸다면 곧 무한번식하여 생태계를 파멸시키고 지구환경을 바꾸어 멸종하게 된다. 어떤 종이 완벽하게 적응했다. 완벽하게 번식한다. 완벽하게 환경을 바꾼다. 완벽하게 멸종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극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문명이 이정도 온 것은 역시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극한에 몰려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인류는 70억이 모두 졸부가 되어 터무니없이 넘쳐나는 에너지로 지구를 파괴하고 멸망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부족민으로 되돌아간다. 중간은 없다. 있다면 그것은 지속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적절한 안정은 없다. 무한히 많거나 무한히 적거나 단진동으로 보면 발산에 해당한다. 무한히 진폭이 커져서 되돌아오지 않는다. 멸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기적적인 확률로 중간지점이 있다. 그 지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위치를 이동시킨다. 그것이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골디락스존처럼 적당한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도 멈추지 않고 변한다. 인류문명의 골디락스존은 지속적으로 이동해 왔다. 이집트에서 문명이 기어나와 메소포타미아로, 지중해로, 소아시아로, 그리스로, 로마로, 동로마로, 스페인으로, 프랑스로, 네덜란드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일본으로, 한국으로,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멈출 수 없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중간지대인 골디락스존 역시 극한에 있다. 계속 이동하는 극한이다. 우리는 이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것은 대칭으로 설명되고 대칭은 축이 있으며 축은 작은 특이점을 이루고 그 점은 이동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바늘 끝에 서 있는 것이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또한 극한이며 극한이라는 것은 한 방향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계속 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위태롭게 가지 끝에 겨우 서 있지만 가지끝은 의외로 안정된 공간입니다. 참새도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태연하게 앉아 있습니다.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바람을 타고 시소를 타고 단진동을 즐기고 있습니다. 민주당도 그러하고 문재인도 그러하며 위태롭게 가지 끝에 서 있지만 오히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맨 먼저 읽을 수 있으니 기쁜 것입니다. |
'녹색동물'이라는 EBS다큐를 보니,
식물이 식물이 아니라 아예 괴물이더군요.
700년을 씨앗으로 버티다가 물만 닿으면 깨어나는 아라홍련.
산불과 싸워서 이기기위해 키가 100m까지 자라는 자이언트세콰이어.
껍질이 1m에, 그것도 스펀지모양으로 푹신푹신해서 물로 무장을 하고.
쉬오크는 200도이상에서만 솔방울이 벌어진다네요.
제주도 토끼섬에 군주란은 태평양을 건너온 놈들이고
모감주나무는 바다에서 3500Km이상을 이동해서 번식하는 등등,
골디락스 존을 찾아 헤매는 건
어쩌면 생명 본능같은 거 아닌가 싶습니다.
만일 자연이 인간과 같은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벌써 지구를 떠나 우주로 날아가서 어딘가에 안착했을 겁니다.
아인슈타인을 알면 뉴턴이 답답해 보이는 것처럼
진리는 아름답지만 처음이란 더 처절하게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