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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윤민
read 5227 vote 0 2021.06.03 (21:55:41)

지식인의 역할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드레퓌스는 죄가 없다는 에밀 졸로의 말처럼 진실을 밝혀야 한다. 19세기 모든 프랑스의 엘리트가 침묵했을 때, 에밀 졸라만이 지식인의 양심을 지켰다.

 

에밀 졸라 덕분에 19세기 프랑스가 체면치레를 했다. 그로부터 2세기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한강 대학생 실종사건에 대해서 지성인들은 왜 침묵하는가? 그나마 허지웅이 한 마디 했지만, 자신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인증했을 뿐 진실을 당당하게 밝히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에밀 졸라는 없었다.

 

대한민국의 지식인 집단은 이번 사건에 침묵함으로써, 자체적으로 자정이 불가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개탄할 만한 일이다. 때로는 지식인은 모두가 등을 돌리더라도 집단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서 자정작용이 있음을 보여야 한다. 에밀 졸라는 그랬다. 프로이센에게 진 이유를 약자인 드레퓌스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프랑스의 치졸함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식인의 침묵은 비단 대한민국 일은 아닌 것 같다. 전 세계에서 머리 좋다는 자들이 몰린다는 스타트업, IT업계에서도 지식인은 침묵한다. 한물 간줄 알았던 Growth hacking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IT업계에도 에밀 졸라는 없는가?

 

Growth hacking이라는 단어는 2010Sean Ellis가 주장한 마케팅 용법이다. Sean Ellis Growth hacking의 사례로 “Hot mail”, “Dropbox”, “AirBnB”의 신화적인 마케팅 사례를 들곤 한다. 모두 J곡선을 그리며 성공한 스타트업이다. Sean Ellis는 이 성공 비결을 Growth hacking이라 주장한다.

 

과연 그러할까? 그렇다면 Growth hacking을 사용하면 내 서비스도 유수의 스타트업처럼 J곡선을 그릴 수 있을까? Growth hacking의 핵심기술을 살펴보자면 AARRR로 대표되는 "유저여정별 지표분석"이다. 그런데, “Hot mail”이나 “Dropbox”의 신화적인 마케팅이 AARRR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연관성은 없다. “Hot mail”은 그저 매일 하단에 "P.S.: I love you. Get your free e-mail at Hotmail." 썼을 뿐이다. 그대가 “Hot mail”처럼 메일 하단에 문구를 작성한다고 해서 또는 AARRR기법을 사용한다 해도 J곡선을 그릴 수는 없다. “Hot mail”의 이메일 마케팅 신화는 산업초기에만 있을 유행으로 해석 하는게 맞다. “AirBnB”의 크레이그리스트 해킹은 그때나 지금이나 범죄다.

 

솔직하게 말하자. Sean Ellis가 말하는 Growth hacking "데이터 분석기법"에 불과하다. 그리고 "데이터 분석"“Hot mail”이나 “AirBnB”의 신화적인 마케팅 사례와는 별개다. 데이터 분석은 서비스의 상황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최적화를 하는데 도움을 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마케팅 비용의 최적화는 가능하게 하겠지만, 당연히, 신화적인 마케팅 신화는 기대할 수 없다.

 

빅데이터라 해서 다르지 않다. 빅데이터 분석을 얻은 인사이트를 통해 데이터기반 의사결정이 각광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데이터가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과연 그 기대는 이루어질까?

 

누군가 내게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미래"를 묻거든, 나는 그의 고개를 들어 "주식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보게 할 것이다. 주가의 흐름이나 유저흐름 등 데이터를 분석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다르지 않다. 주식 자동매매 프로그램의 효과는 직접 검색해 보길 바란다. 아마 썩 훌륭하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모두가 최적화의 일환이다. 최적화는 이미 진행한 의사결정에 대한 후작업이다. 결국 의사결정은 데이터가 부재한 상태에서 할 수 밖에 없다. 또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생존자편향 오류(Survivorship bias)처럼 수집되지 않은 데이터가 더 많은 진실을 품고 있을 때도 있다.

 

이제 결론을 말하자. Growth hacking의 본 모습은 "데이터분석을 통한 최적화" 작업이다. 이렇게 말해야 떳떳하다. Growth hackingSean Ellis가 장사를 하기 위해 붙인 말이다. 공자는 언어가 떳떳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정명사상이다. Growth hacking이라는 떳떳하지 못한 단어는 지금이라도 언어를 바르게 고쳐야 한다.

 

처음 눈길을 걸어갈 때는 뒷사람을 생각해서 신중하게 걸어야 한다. 김구선생의 말이다. Sean Ellis가 뒷사람을 생각하지 않은 덕분에 수많은 IT관계자, 투자자가 엿을 먹이고 있다. Sean Ellis를 탓 할까? 아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그냥 장사를 위해 포장했을 뿐이다. 그가 강제로 가져가다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이 업계에서 단 한 명도 진실을 말하지 않은 탓이다. 누구를 탓할까? 그저 IT업계에 에밀 졸라가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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