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게임하는 존재다. 나의 행동에 따른 상대방의 패와 상대방의 패에 따른
나의 맞대응이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은 집단과의 상호작용이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기어이 증거를 남기는 범죄자의 심리와 도박장을 떠나지
못하는 도박자의 심리에서 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인간은 집단의 호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평범한 가장은 가족의 호응에서 하루를 버티는 힘을 얻는다. 고생은 가장이 하고
과실은 가족이 먹는다. 인간은 집단적 존재다.
어떻게 집단의 호응을 이끌어낼 것인가? 정치인은 비전을 제시하고, 코미디언은 개그를 치고
리더는 집단의 스트레스를 대표하고, 능력이 안되면 고양이라도 키워볼 일이다.
존재하는 것은 게임이고, 게임은 상호작용과 맞대응의 형식이고,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것은 게임의 참가여부와 게임의 종류뿐이다. 아는 게 없으면 사회시스템을 불신하고
사회를 불신하면 사회와 나와의 전선이 그어지며 그 전선속에서 긴장을 조달하고
관성이 형성되면 서서히 망가진다.
좋은게임을 선택해서 에너지를 비축하고 양의 피드백을 형성하는 것이 인생이 정답이다.
중요한것은 양의 피드백이냐 음의 피드백이냐다. 이건 이념을 떠나 물리적 현실이다.
기업도 현금이 쌓이면 흥하고 현금이 고갈되면 망한다. 정치인은 민심이 쌓이면 흥하고
민심이 떠나면 망한다. 큰 틀에서 방향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과의 외교관계에
의한 집단적 스트레스는 실제로 있다. 유비가 얍삽하게 행동해도 민심이 축적되면
마지막에 이긴다. 사업을 해도 마찬가지다. 아이템 한 두개가 실패해도 팀플레이가
축적되고 경험치가 누적되고 신뢰가 살아있으면 흥한다.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환경이 덮친다. 시시각각 변화는 환경이 계속해서 비용을 청구한다.
여름의 폭염은 에어컨값 청구하고 겨울의 냉해는 보일러값 청구한다. 비용을 이기려면
에너지 잉여를 얻어야 한다. 돈을 저축해놓거나 지식을 쌓아두거나 집단의 힘을 빌려야 한다.
결국은 연결이다. 돈을 얻으려면 회사와 연결되고 지식을 쌓으려면 학문이나 학계와 연결되어야하고
집단의 힘을 빌리려면 정당이라도 가입해야 한다. 문제는 그 환경이 또 변한다는 것이다.
친일파는 일본과 연결되서 공짜먹으려는 건데 그 일본이 망해버린다. 어린이는 가족과 연결되서
에너지가 있고 젊은이는 친구와 연결된다. 직장따라 친구와 헤어지고 독립해서 가족과 헤어지면
결국 라인이 끊겨 망한다. 게임의 정답은 애초에 크게 연결하는 것이다. 친구와는 헤어져도 국가와는
헤어질 수 없다. 국가와는 헤어져도 지구와는 헤어질 수 없다. 애초에 큰 세상과 만나면
자잘한 헤어짐을 감당할 수 있다. 정치판이 특히 그렇다. 금태섭 검사친구 따라가고
철수는 아빠 따라간다. 믿을놈 하나없고 대중과의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대통령 되는 판이다.
인간은 천하인으로 완성된다. 개인의 일관성이 사회적 신뢰를 일으키고 사회적 신뢰가
권력의 효율성을 낳고 권력의 효율로 환경을 극복하고 판이 안정되면 돌이킬 수 없다. 자체 관성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