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변화다.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변하기 전을 볼 것인가, 변하고 난 다음을 볼 것인가? 날아오는 화살을 볼 것인가, 쏘는 활을 볼 것인가? 무대 위의 배우를 볼 것인가, 무대 뒤의 연출자를 볼 것인가? 사건의 원인 측을 볼 것인가, 결과 측을 볼 것인가? 곤란하다. 인간은 변화를 직접 볼 수 없다. 변화에 명명할 수 없고 변화를 언어로 전달할 수 없다. 변화가 끝나고 멈춘 것을 볼 뿐이다. 변화의 진행은 추론해야 한다. 인간은 세상의 절반을 보지 못한다. 특별히 훈련하여 변화를 보는 눈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구조로 봐야 한다. 구조는 관계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변화가 일어나기 전과 후를 포개서 보는 것이다. 포개면 차원이다. 차원을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변화의 동력을 전달하는 것은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을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측법이 있다. 변화를 보는가, 불변을 보는가다. 변화를 봐야 한다. 그러나 보지 못한다. 인류에게는 변화를 보는 눈이 없다. 인류의 언어에는 변화를 나타내는 언어가 없다. 변화를 말해야 할 때는 얼버무리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 어둠은 빛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꾸며낸 말이다. 빛은 입자가 존재하지만 어둠은 입자가 없다. 악은 선의 변화를 설명하고, 보수는 진보의 변화를 설명하고, 야만은 문명의 변화를 설명한다. 있는 것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도입한 가상의 개념일 뿐 존재가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칭어는 전부 거짓이다. 높이는 있어도 낮이는 없다. 길이는 있어도 짧이는 없다. 크기는 있어도 작기는 없다. 대칭은 말로 전달하기 곤란한 변화를 나타내는 꼼수다. 우주 안에 둘씩 짝짓고 마주보는 것은 없다. 하나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 변화의 엔진이 있다. 자체 동력이 있다. 변화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것과 저것을 붙잡아주는 매개가 있다. 매개는 더 높은 층위에 있으므로 차원이 있다. 차원에 따라 질서가 있다. 우선순위가 있다. 에너지의 전달경로가 있다. 내부에 의사결정구조가 있다. 에너지를 내장하면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은 세상을 불변으로 본다. 주체의 맞은 편 객체로 본다. 고립된 단위로 본다. 개별적 존재로 본다. 세상을 원자로 보면서 원자를 담아내는 그릇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체 동력이 없으므로 움직이는 범위가 제한된다. 전략을 쓸 수는 없고 되치기 전술만 쓸 수 있다. 연결은 할 수 없고 단절만 할 수 있다. 세상을 연결된 구조로 보느냐 아니면 단절된 객체로 보느냐다. 변화로 보느냐 아니면 불변으로 보느냐다. 보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변화의 전략은 외부의 연결에서 답을 찾고 불변의 전술은 내부의 맞섬에서 답을 찾는다.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계속가게 된다.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