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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56 vote 0 2024.12.18 (13:12:53)

    우리나라는 사치품을 명품이라고 부르는 나라다. 장사치들이 수작을 부린 것이다. 부끄러운줄 모르고 말이다. 언어에는 프레임이 붙는다. 프레임이 걸리면 힘이 있다. 국힘이들은 이찍이니, 적폐청산이니, 차떼기니 이런 말을 싫어한다. 내란수괴라는 말도 싫어할 거다.


    비건은 섭식장애다. 그게 강박장애의 일종이다. 강박장애는 신경증의 일종인데 비건증은 거식증, 폭식증, 이식증, 먹뱉증과 같다. 왜 병을 병이라고 하지 않을까? 언어는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정명사상이다. 교묘한 외래어로 포장하여 교언영색한다면 곤란하다.


    비건증은 종교와 관련이 있으므로 종교차별 문제로 관대해진 측면도 있다. 종교는 끝없이 금제와 터부와 강박을 생산한다. 뭔가를 ‘하지마라’고 제약을 가해야 집단이 결속하기 때문이다. 겁을 줘서 집단을 조직하고 권력을 행사하려는 비뚤어진 권력의지가 숨어있다.


    구조론의 관심은 자존감이다. 인간의 삶에 존엄과 비참 뿐이며 우리는 비참을 멀리하고 존엄을 지향해야 한다. 각종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똥이다. 이념이 어떻고 하지만 다 필요없다. 살펴보면 이념의 배후에 지정학이 도사리고 있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존엄은 인간이 집단이라는 깔때기의 중심으로 진입하려는 것이다. 비참은 깔때기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강박증, 결벽증, 비건증, 의심증, 불안증은 금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의 행동이다. 하는 일이 없거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쓴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정형행동과 같다. 동물원에서 할 일이 없으니 자기 몸에 상처를 만들고 상처를 핥는다. 상처의 피는 자신의 내부에서 나지만 동물은 자신의 외부환경으로 인식한다. 야생동물이 숲과 바위와 나무를 찾듯이 자기 상처에 숲과 바위와 나무를 조성한다.


    자기를 학대하여 얻는 고통에서 들판과 하늘과 구름과 강물과 먼지를 조달하려는 것이다. 비건증은 음식에서 구한다. 바둑의 포석은 바둑판 안에 산맥과 강과 도로를 만든다. 비건증은 음식에 고속도로와 철도와 공항을 만든다. 적군인 고기를 물리치고 개선식을 한다.


    비건증은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의 자기 압박이다. 비건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성공한 사람에게 결벽증, 강박증 환자가 많듯이 비건증의 자기압박이 성공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김건희, 나경원, 한동훈의 성형증도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수단으로 순기능이 있다.


    가발, 키높이, 가슴뽕, 어깨뽕은 성형증의 변종이다. 성공한 사람에게 히스테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자기를 끝없이 몰아쳐서 성공할 수 있다. 문제는 전투적 자기 차별 행동이다. 비건이 일반인을 적대하는 행동이 결국 자기 자신을 적대하는 결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의식 깊은 곳에 퇴적되어 있다가 사고를 친다. 의사출신 흑인 나치 대선후보 벤 카슨이 대표적이다. 그의 인생은 증오로 가득차 있다. 흑인이므로 증오를 면책받는다. 비건은 공격수단이다. 그는 의사 주제에 백신을 부정하기도 했다. 결벽증은 공격수단이다.


    더럽다는 말로 타인에 대한 적대행동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그렇다.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타인을 공격할 의도를 숨긴 것이다. 외국인은 쇠고기를 먹으니까. 외국인과 접촉하지 못하게 인도인을 가두고 인질로 잡으려는 의도를 숨긴다.


    불교는 원래 고기를 먹는데 한국 불교만 유독 고기를 부정하는 이유도 공격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교 선비들이 시회를 열면서 접대를 요구하고 난동을 피우거나 절을 빼앗아 서원으로 바꾸었다. 비린내가 난다는 핑계로 선비를 절에서 축출할 의도를 숨긴 것이다.


    모든 종교적 터부행동에는 권력의지, 차별의지, 자기학대의 의지가 숨어 있다. 남을 괴롭히지 못하므로 무생물을 괴롭히는 것이다. 자기를 구조의 깔때기 속으로 밀어넣는 짓이다. 탈출에 필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내가 남보다 더 잘났다는 우월주의가 아니다.


    자존감은 나를 존중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 내부의 관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 안의 항상성, 균형감각, 안정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내가 해야할 역할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회에 소속감을 느끼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자존감이 부족하면 사회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하는데 그게 관종행동이다. 윤서인증이다. 음모론, 광신도, 터부, 주술에 집착한다. 강박, 결벽, 비건, 의심, 불안, 페미증, 마초증은 사회에 불필요한 트러블을 일으켜 자기 존재를 사회에 알리는 행동이다.


    원시인 아기는 가족들이 나를 혼자 남겨놓고 다른 동굴로 이동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다. 버려질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강한 인상을 줘서 나를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다른 동굴로 이주하더라도 나를 잊어먹지마, 나를 꼭 데려가라고. 각인을 시켜야 한다.


    자기를 사회라는 깔때기의 중심부로 계속 밀어넣는다. 채식만 하면 체중이 줄고 체중이 줄면 체온이 낮아지고, 체온이 낮아지면 면역성이 떨어지고 면역성이 떨어지면 질병에 걸리고 수명이 짧아진다. 비건이 칼로리 부족을 탄수화물로 보충하면 혈당 스파이크가 온다.


    서양인에 비해 췌장이 작은 한국인은 특히 혈당조절을 잘 못하는 체질이므로 미국인과 달리 비만이 더 해롭다. 젊은이는 채식을 해도 괜찮은데 소화흡수력이 떨어지는 60대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다. 비건행동을 꼭 해야 하는 사람은 단백질 보충제를 먹어줘야 한다.


    칼로리 부족을 탄수화물로 채우면 혈관 속에 많아진 포도당이 산화되어 독성물질을 생산하여 모세혈관 벽을 뚫는다. 손상된 모세혈관을 콜레스테롤이 치료하는 과정에 콜레스테롤이 너무 두껍게 도포되어 모세혈관이 막힌다. 모세혈관이 막히면 신체 말단부가 썩는다.


    노인은 소화흡수력이 떨어지므로 삶은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 육식도 좋지 않은데 원래 인간이 육식할 때는 하루 한 끼를 먹었다. 육식 위주로 생활하려면 하루 한 끼, 혹은 며칠에 한 끼를 먹어야 하는데 현대인은 원시인과 달리 할 일이 많아서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원시인이 사냥을 하면 배 터지게 먹고 며칠을 굶는 것은 기본이다. 들개는 일주일 정도는 기본으로 굶는다. 고양이도 며칠 정도는 안 먹어도 멀쩡하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은 고기 야채 탄수화물을 고루 먹을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현대인은 하루 2식으로 줄여야 한다.


    하루 세끼는 자연스러운 인체 활동과 맞지 않다. 어린이는 많이 먹어야 하지만 성인은 하루 두 끼를 먹어야 몸이 정상화 된다. 문제는 탄수화물 위주로 식사하면 아침에 배가 고프다는 점이다. 결국 세 끼를 다 먹게 되고 거기다 콜라를 마시면 비만을 피하기가 어렵다.


    태국 스님은 하루 한 끼를 먹는데 48퍼센트가 비만이고 42퍼센트가 고혈압이라고 한다. 콜라를 마셔서 그렇다고. 채식 위주로 하루 한 끼를 먹으면 배가 고프고 고픈 배를 콜라로 달래면 돼지가 된다. 스님이 고기를 먹어야 배가 든든해서 콜라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디너, 브랙퍼스트, 런치라는 말에 게르만족이 하루 한 끼를 먹은 흔적이 남아 있다.


    디너 - 원래 오후 3시가 예배 시간이다. 예배 이후 하루 한 끼 정식을 먹는다.


    브랙퍼스트 - 브랙은 부스러기다. 어제 먹다 남은 빵 부스러기를 먹는데 간식이지 식사가 아니다. 런치 - noon은 nine이다. 옛날에는 오후 3시가 9시였으므로 오후 3시를 눈(9)이라고 했다. 눈에 예배를 보면 애프터눈이다. 교황이 시계를 바꿔서 지금은 12시가 눈이다. 눈에 예배를 보고 밥을 먹는 습관이 런치가 되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추론이 철학이다

2024.12.18 (14:15:29)

대중의 인지적 판단은 대상 자체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꼭 집단의 판단을 따라가야 하는지 의아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담배는 건강에 좋다고 마케팅을 했는데 마케팅 내용은 의사랑 운동선수들이 나와서 

담배 = 건강 이미지를 각인시켰다는 거지요 전문가나 공인된 인물들이 선도하니깐 대중이 깜빡 넘어갔습니다

지구가 둥근 이유는 교과서에 나왔으니깐 이런 것인데 논리 자체에 관심이 없고

남들이 둥글다 하니깐 똑같이 둥글다고 맞추는 형태입니다 


이러한 이유가 지식에 대해 믿음으로 접근하며 선험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인데

선험적으로 접근한다고 하면 사과가 빨갛다고 이해를 하려면

생물학 뇌과학 물리학의 배경지식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100시간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것에 비해 남들이 빨갛다고 하니깐 빨간가 보다고 믿어 버리면 공부를 할 필요도 없고 간단하니깐요

차라리 지식에 대한 선험적 접근이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왜 전문가나 집단을 믿고 꼭 선동당할 리스크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가입니다


1. 대중은 모든 지식을 믿지 않을 수 있는가?

2. 모든 지식을 믿지 않으면 선험적으로 접근을 하던가

3. 선험적으로 접근을 못하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던가


가정하여 이러한 123의 경우가 적용되는 것이 지금의 형태보다 낫다고 볼 수 있는지 의아해서 질문드립니다

제가 저번에도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이번 질문의 핵심은 교과서에 지식이 유통되는 구조가

그냥 그래, 원래 그래, 남들이 그러니깐 그래 형태로 기존 형식을 유지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구조론식으로 사과가 빨간 이유는 환경압에 의한 확산결과이다로 

보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설명을 하는 형태로 바뀌는 게 나은지입니다  

1+1=2라고만 가르치지 않고 왜 그런지 원인 설명을 하는 교과서 형태로 바뀔 이유가 있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4.12.18 (14:36:34)

솔직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


1. 대중은 모든 지식을 믿지 않을 수 있는가?.. 이건 뭐 프랑스 철학시험 바깔로레아인가? 비문입니다. 질문 불성립. 대중은 개인이 아니므로 믿고 안믿고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대중은 무얼 믿는게 아니라 가담하는 거. 즉 판단을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


2. 모든 지식을 믿지 않으면 선험적으로 접근을 하던가. . 이건 공부를 하라는 말인듯 한데 공부를 하면 대중이 아니라 지식인이지요. 대중에게는 해당없음. 이 말은 대중이 판단을 위임하지 말고 공부해서 지식인이 되라는 말 같은데 무리한 주문. 그건 지식인의 역할입니다.


3. 선험적으로 접근을 못하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던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으면 동료와 합이 안 맞는데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리오?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추려면 아무데나 붙어야 합니다. 대중은 판단과 해석을 권위자에게 위임합니다. 그러니까 대중이지요.


대중의 판단은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듯 한데 그게 구조론에서 항상 하는 보통사람의 보통생각은 보통 틀린다는 말입니다. 대중은 언제나 오류를 저지르며 그러므로 지식인에게 위임하는데 위임할 수 없는게 정치분야입니다. 정치는 항상 새로운 길을 가기 때문에.


예컨데 과학은 과학자에게, 의학은 의사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투표는? 일찍이 정답인지 이찍이 정답인지 누구한테 물어보리오? 대중은 항상 시행착오를 합니다. 정치는 전문가가 없습니다. 자칭 정치 전문가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유창선 성한용이 맞는 말만 했습니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는데 비건은 대중이 아니라 엘리트가 비뚤어진 권력의지로 저지르는 퇴행행동인게 문제입니다. 풀만 먹어라고 압박하면 추종자를 꼼짝 못하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게 극단적인 형태로 가면 인민사원의 집단자살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마라. 죽어라. 

프로필 이미지 [레벨:3]추론이 철학이다

2024.12.18 (15:10:05)

123번은 답변되었습니다 123번 모두 무리한 질문이었군요

본문 내용중 인간은 원래 1일 1식이 생물학적으로 이롭다고 쓰여져 있는데

한국에서 20년 전에만 해도 삼시세끼를 먹는 것이 건강하다고 상식으로 자리 잡히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삼시세끼가 건강한지 분석해 본 사람도 없을 테고 다들 그렇게 믿어 왔는데

시대가 변화고 정보가 변화면서 기존 상식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중이 지식에 접근하는 형태는 선험적인 게 아니라 믿음으로 접근하는데

이러한 형태 때문에 선동 리스크가 있어서 차라리 아무것도 안 믿는 게 가능한가 질문해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믿는 게 오히려 더 리스크가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대중에게 공부를 요구하는 게 오히려 무리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공교육이 구조론의 형태로 될 필요가 있는가입니다

기존의 형태는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라고 검색을 하면 회전체의 크기, 질량은 회전속도와 반비례한다 이렇게만 알려주지

왜 반비례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뭐든지 결과만 알려주지 원인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과서가 구조론의 형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는지도 질문인데 무리한 질문일까 의아합니다

왜냐면 기존의 지식 형태는 파편화되어서 배경지식과의 연결성을 생략하는데

구조론은 부분적인 지식은 보다 전체적인 지식에 의해 연결되어야 하니 오히려 복잡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종적인 질문은 구조론의 지식체계는 보편화될 필요가 있는지 일부만 배우는 게 나은지 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24.12.18 (15:20:35)

구조론은 당연히 보편화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는 되겠지만 당장은 무리수입니다.


출박점이 우주=방향전환인데 

이걸 알아먹을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소?


E=MC2인데 여기서 핵심은 제곱.

제곱은 각운동량 보존이 거리를 속도로 바꿀 때 


면적을 선으로 바꾸므로 제곱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면 개념을 버리고 각을 채택해서 


각의 입구와 출구를 정하고 입구는 면적이고 

출구는 선이라는 것을 알아채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음.


1일 1식이 생물학적으로 이로운건 아니고 원시인이 그런 것인데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수명은 40세 정도입니다.


동물은 수명이 짧은데 인간이 사육하면 수명이 3배로 늘어납니다. 

늑대의 자연수명은 6~8년인데 인간이 사육하면 최대 18년입니다. 


현대인의 기대수명 80살도 자연수명보다 훨씬 오래 사는 것입니다. 

대중은 지식을 전문가에게 위임하는게 맞는데 정치는 전문가 말도 못 믿는다는게 중요합니다.


정치는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민주적으로 가며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데

민주적인 판단은 최선이 아니고 최악을 방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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