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v.daum.net/v/20201121180602044
연구진은 꽃을 수확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서식지에 자라는 꽃일수록 식물의 잎이 자라는 주변의 바위 색과 유사한 색으로 변화하는 보호색 능력이 발달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이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보호색 능력이 발달된 식물일수록 생존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는 해당 식물을 채취하려는 인간이 결국 이 식물이 주변과 유사한 색으로 위장하는 보호색 능력의 진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꽃을 많이 꺾었다면 남은 종자는 바위 색과 비슷한 꽃일 뿐이지
마치 꽃이 적극적으로 의사결정을 했다는 듯한 뉘앙스를 하는 이유는?
즉 이 진화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것을 건조하게 말하지 않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 사람들을 꾸짖는 이유는?
그냥 꽃 좀 내버려두라고 말하면 되지,
굳이 되지도 않는 진화론적 지식을 갖다 대는 이유는?
그리고 색을 바꾼다는 개념도 잘 생각해보라고.
색을 바꾸는게 아니라 주변과 밸런스를 맞추는 것일뿐이라고.
진화와 엔트로피의 전개는 언제나
같음에서 다름으로, 동시에 다름에서 같음으로의
모순적 동시 이행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게 우리 눈에는 위장camoflauge이라고 착각되는 거라고.
피식자는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위장변장하는게 아니라
다만 피식자 주변과 닮아가는 거라고.
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니깐.
부부가 닮는게 동물의 위장과 같은 원리라니깐.
배우자 잡아먹으려고 위장하는 건 아니잖아?
꽃이 무슨 지능이 있고, 오징어가 무슨 천재라서
무려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위장을 해야 한다"라는
고도의 판단을 하겠냐고?
사람도 잘 못하는 걸 동물이 한다는게 말이 안 되잖아.
무엇보다도 포식자니 피식자니 하는 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이분법적 사고라고.
인간의 몸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엄청 많다는데,
그럼 인간의 두뇌는 위장을, 심장을 노예로 부려먹는 건가?
과연 포식자는 피식자를 억압하고자 먹는 건가? 뭐 힘자랑 하려고?
그럴리가 없잖아.
극단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옥동자가 같은 집에 정우성이 살았다고 쳐봐.
옥동자는 매일 정우성을 보니깐 닮아지겠지.
근데 그게 잘 될까? 잘 안 되겠지.
그래서 옥동자는 개그를 하는 거라고.
닮는데는 한계가 있으니깐.
즉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에 부합하고자 밸런스를 작동하는 거라고.
우리가 닮는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모순이
진화와 다양성의 본질이라니깐.
먹이를 잡으려고 위장한 거면 먹이를 먹고나서도 위장을 풀지 않는게 맞지.
뭣하러 먹이를 잡는 순간에는 위장을 풀까?
위장 자체가 긴장의 한 종류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