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딜레마 인간은 빵보다 권력이다. 인간의 권력의지는 왕이 되어 집단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다. 물론 지배자가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라도 역할이 있다. 인간은 대개 조연으로 만족한다. 단 팽팽하게 긴장되어야 한다. 그냥 역할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집단을 흔들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야 한다. 대칭적인 포지셔닝을 통해 인간은 집단을 흔들 수 있다. 각종 차별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칭적인 포지셔닝을 통해 사회를 긴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대결이든 세대대결이든 성차별이든 대칭을 만들어낸다. 집단의 정보가 자신을 통과하여 전달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역할과 포지션을 조직해야 한다. 지도자는 권력을 생산해야 한다. 역할을 생산하고 나눠줘야 한다. 집단을 대칭적으로 조직해야만 다수에게 포지션이 주어진다. 여기서 권력의 딜레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굳이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점차 역할이 사라지게 된다. 명령은 보스> 참모> 간부> 실무자> 말단직원으로 전달된다. 같은 명령이 반복될 때 중간단계는 필요 없다. 단계를 생략해도 된다. 명령은 보스에서 말단으로 직행한다. 직거래한다. 중간의 귀족, 엘리트, 기득권은 역할이 없다. 강남패싱이 일어난다. 이에 기득권의 저항이 일어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그들 중간자는 점차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개인주의가 발달하면 가부장은 쓸모가 없다. 이제 부모가 자녀를 매질할 수 없다. 매뉴얼이 나오면 선배들의 기여가 없다. 왜 사회에 귀족이 존재하는가? 귀족은 귀족끼리 결혼한다. 귀족의 인맥을 이용하여 외부의 지원을 끌어낼 수 있다. 유럽의 귀족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죄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친척이다. 귀족은 국경이 없다. 그러므로 전쟁을 중재할 수가 있다. 그런데 소총이 등장하고 절대왕정 시대다. 민족주의가 대두된다. 이제 귀족은 필요 없다. 각국은 제국주의 패권경쟁에 돌입하여 먼저 침략할 궁리만 한다. 귀족들 간의 이합집산에 의한 힘의 균형은 의미가 없다. 부르주아가 궐기한 것은 귀족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부르주아조차 필요 없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런 식이다. 왕과 사제와 귀족과 평민과 농노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요 없게 된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자 토지를 중심으로 하는 귀족들의 역할은 소멸되었다. 미디어가 발달하자 사제계급들은 용도폐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목사들의 난동은 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역할의 소멸 때문이다. 예전에는 글자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목사가 설교 시간에 뉴스를 해설해줘야 했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글자는 겨우 읽는데 문해력이 없다. 문맹은 벗어났으나 우편주소나 읽을 뿐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졸자가 늘어서 대중이 문해력을 갖게 되자 역할을 뺏긴 목사들이 불안해진 것이다. 회사라도 보스와 이사와 간부와 직원의 계급이 있다. 그런데 필요 없다. 부장과 과장, 계장, 실장, 차장 따위를 죄다 없애고 팀장으로 통일한다. 권력의 딜레마는 중간계급이 필요 없어지는 현상이다. 사회에 서열이 필요하지만 나중에는 서열이 필요 없다. 처음에는 중간상인을 끼워 거래하지만 나중에는 직거래를 선호하게 된다. 당근마켓이 등장하자 직거래가 활성화되어 많은 중간상인들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노동자 농민은 옛날이야기다. 핵심은 권력이다. 권력은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없어도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새로운 권력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업은 창업으로 권력을 만들어낸다. 창업 초기에는 중간권력이 필요하다. 기술자가 어깨에 힘을 준다. 그러나 회사가 성장하면 고참 노동자는 해고한다. 매뉴얼대로 만들어내면 된다. 현대차가 그렇다고. 노조가 파업하면 생산라인에 처음 들어간 사람도 조립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고. 경력직 필요 없다. 초보자도 싼타페와 모하비 조립한다. 나중에는 아예 직원이 필요 없게 된다. 인공지능이 일자리 빼앗는다. 그렇다면? 중간권력이 사라지는 만큼 신규권력을 새로 창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문화 분야에서 권력창출이 활발하다. 신곡이 뜨고 신작이 업데이트되고 신상이 출시되고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면 그것이 권력이다. 그런데 닫힌사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일본은 아직도 팩스를 쓰고 인감도장을 찍는다. 없어도 되는 중간권력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한국도 법원은 이메일과 전화기 놔두고 등기 우편을 쓴다. 근거를 남기려고 한다. 종이에 인감도장 박아두면 실물이 있으므로 근거가 된다는 식이다. 한국도 법원이 보수적인 이유는 법정에서 근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요가 없다. 사실은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닫힌사회와 열린사회가 있다. 일본은 닫힌사회이고 한국은 열린사회다. 상대적으로 그러하다. 권력의 딜레마다. 일본은 수직구조가 발달해 있다. 한국은 수평구조가 발달해 있다. 닫힌사회는 중간계급을 없애지 않는다. 외부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변화하면 갑자기 멸망한다. 중고차 직거래를 하면 차팔이들이 사기를 친다. 컴퓨터를 직거래하면 용팔이들이 농간을 부린다. 업자들이 매물을 싹쓸이하여 재판매하는 수법을 쓴다. 허위매물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다. 이런 혼란을 막으면 중간권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일본 방식이다. 경기도 하천의 불법점유다. 일본이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한국은 중간권력이 약해서 해괴한 일이 일어난다. 업자가 국유지와 하천을 불법점유 해도 막을 사람이 없다. 그런 것을 단속하려면 중간권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열린사회는 가만 놔두어도 신규권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 상관없다. 새로운 뉴스, 새로운 상품, 새로운 정보가 뜨기 때문에 권력은 부단히 새로 만들어지고 동시에 소멸한다. 중간권력이 없어도 사회가 잘 돌아간다. 한국의 의사와 검사와 목사들은 우리가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없어도 된다. 정 안 되면 북한 의사를 수입하면 되잖아. 권력의 측면에서 보면 정의당과 국힘당이 완전히 같은 놈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없어도 되는 존재다. 그들은 자기네가 있어야만 한다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농간을 부린다. 진중권은 이념이 무지개인 내가 국힘당, 민주당, 정의당 사이를 중재해야 나라가 원만하게 돌아가지. 이러고 있다. 금태섭, 안철수, 김한길, 손학규, 이종걸, 박용진, 김종인 등 똥들의 특징은 이 당 저 당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중간 포지션에 서 있으면서 자기가 나서서 중재하겠다는 특권귀족 행동을 하는 점이다. 진보는 그런 불필요한 퇴물들을 부단히 청소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1) 중간권력은 필요하다. 2) 중간권력은 점차 필요 없게 된다. 3) 닫힌사회가 중간권력 없으면 환경변화에 취약하다. 4) 기득권은 자기네를 필요한 존재로 만들려고 구조를 왜곡한다. 5) 외부와 연결을 끊으면 내부가 취약해져서 중간권력이 필요하게 된다. 6) 중간권력은 외부와 단절하고 고립시켜 집단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생존한다. 7) 열린사회는 부단히 새로운 권력이 창출되어 환경변화에 대응하므로 중간권력이 필요 없다. 8) 노무현주의는 개방과 혁신으로 외부와 연결하여 새로운 권력을 공급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중간권력을 폐기하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
중간권력 없이 직접 하는 직거래의 장단점은 아직 잘 알 수 없으나, 앞으로의 세상의 방향은 그쪽이 될 거 같다
이와 같은 일들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야 할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직거래?의 좋은 점은 -
중간에서 이간질하고, 당사자들을 악성 루머와 함정에 빠뜨리며 유기적인 관계를 끊어 놓는 나쁜 중간자들이 줄어들 것이고, 사람들은 소문보다 당사자들에게 직접 듣고 확인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할 것이다
사실 개체들이 균일한 구조일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원활한 연결을 담당하는 시스템의 역할은
많이, 또 따로,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당사자들 자체가 서로에게 대상이며 동시에 시스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