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 '테넷'을 보고 왔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여전히 나쁜 놈이더군요. 아오....
음악과 영상 편집은 예술영화처럼 감각적인데
서사 구성 방식은 설명이 아주 무성의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 영화를 이해하고 싶어서 온갖 분석과 해설을 시도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마치 연애에 있어서 나쁜남자 같아요.
나쁜 여자, 나쁜 남자일 수록 상대들은 그가 왜 이렇게 나에게 나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려고 하죠.
착한 남자, 착한 여자에게는 이런 식으로 '상대를 능동적으로 노력하게 만드는 힘'이 없어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매력]의 본질인 듯 합니다.
유튜브에 테넷 밈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래 영상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OozQcZ524Y&t=62s
세상에 영화 하나를 이해하는 데에 아래 다섯 개의 물리학 이론이 필요하다니.
열역학 제1법칙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법칙
양자역학
코펜하겐해설
에버렛 해설
관객들로 하여금 이렇게 해서라도 영화를 이해할 수록 자신이 지적으로 우월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만들다니.
참 놀라운 일입니다.
작품 창작자와 관객들 사이의 이런 풍부한 의사소통 현상과 별개로, 영화 자체는 정말 무성의합니다.
테넷을 보지 않았지만,
놀란 감독은 자신의 주특기와 엔트로피 법칙을 엮어서 영화의 서사를 풀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그의 주특기는 전제를 모호하게 하는 겁니다.
영화 인셉션이 어렵다고들하는데,
이 영화는 스토리가 어려운게 아니라
전제를 모호하게 만들어서 결론이 모호해지고
관객들은 그걸 소위 어렵다고 하는 겁니다.
인셉션은 어떤 사실을 현실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가,
나중에는 그게 꿈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풀죠.
이게 어렵다고 말하는 게 더 황당하지만,
인간들 수준이 그 정도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인터스텔라의 경우에는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라는 식으로 서사를 전개합니다.
선택했다가 망하고, 재선택하고 하는 식으로 선택의 전개를 보여줍니다.
베트맨 시리즈도 마찬가지고, 덩케르크는 이게 없어서 좀 심심하게 느껴지고.
분명 이 부분은 칭찬할 만합니다. 놀란 감독은 이른바 "선택 장인"이에요.
여기에 현실적인 촬영 기법이 서사의 사실성을 더해주죠.
추측컨데 놀란 감독의 동생이 스토리 장인이고,
놀란은 촬영 장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잘하면 더 나은 결과를 가질 수 있을까요?
놀란 이후의 영화는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가 나오면 재밌을 텐데 말이죠.
설국열차처럼. 결말이 좀 약하긴 했습니다만.
봉준호는 결말을 희미하게 처리했어요. 잘 모르니깐.
물론 놀란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촬영장인이니깐.
1법칙.. 모든 변화는 자리바꿈이다.
2법칙.. 자체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자체 질서를 따른다.
쉬운걸 어렵게 설명하고 있으니.
그 이유는 모르기 때문.
열역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지구에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냥 실험적으로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