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의 진실
https://www.youtube.com/watch?v=GnQzDMYIWfE 올리버쌤이 동영상에서 한마디 했나 보다. '미국인이 왜 미국을 까냐?' '왜 남의 나라 국뽕장사를 하냐?' '너 좌파냐?' 시청자의 이런 항의에 해명하고 있다. 미국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 봐야 하는 측면이 있다. 덩어리가 크다는 말이다. 한국도 있고 일본도 있듯이 LA도 있고 뉴욕도 있다. 미국의 거대한 사이즈에 비하면 한국은 하나의 도시나 마찬가지다. 한국인 한 사람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뉴욕시민이 뉴욕시에 미치는 영향력 정도다. 미국은 시뽕이나 주뽕으로 바꿔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도 비슷한 점이 있다. 국가의 일에 관심이 없다. 명나라가 망하고 동남아로 흩어진 중국인들은 유럽에 진출해 무역하면서도 청나라가 망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국인이면서 왜 중국 편을 들지 않느냐고 물으면 화를 낸다.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면서. 오히려 한국인 너희들이 중국계잖아. 이런다. 족보 따져보면 죄다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일본도 봉건시대 수백 개의 다이묘로 나누어져 국가 개념이 약하다. 정치뉴스를 안 보거나 봐도 관심없다. 유럽도 통합되어 국가개념의 의미가 없다. 다른 나라에서 직장 구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이 유별난 나라 맞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유별났으며, 앞으로도 유별날 것이며, 이는 한국의 전통이고 관습이고 지정학적 운명이라는 거다.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했다. 역시 섬이라는 지정학적 이유가 크다. 한국인의 우월성이니 이런건 초딩이나 환빠가 하는 소리고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할 이유가 있다. 유태인은 옳건 그르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집시도 그렇고 화교도 그러하다. 각자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환경이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인이 유럽인, 미국인, 중국인, 인도인처럼 될 수는 없다. 인도인도 독특하다. 외국인이 인도를 비판하면 '그건 그 계급의 문제이지 우리 카스트는 그렇지 않은데?' 이러면 할 말이 없다. 인도는 워낙 거대한 세계라서 개인에게 따지는건 의미없다. 언어가 800개인데 '너희들 왜 그래' 하고 캐물을 수 없다. 우리라고? 1/800이다. 거대한 인구 앞에서 허무해지는 것이다. 범인도 세력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까지 18억이다. 18억 인구의 압박 앞에서 개인은 허무할 뿐이다. 한국은 그 반대다. 한국인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영토가 좁고, 상호작용이 활발하고, 의사결정이 빠르고 국민 모두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조선시대부터 그랬다. 당쟁이 일어나면 국민 모두가 일희일비하며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심지어 집안 종놈들까지 분기탱천해서 다른 당파의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았다. 길에서 만나면 으르릉대며 주먹을 휘둘렀다. 일본은 그런게 없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촌주의 권력이 세고 부족주의가 있어서 봉건영주가 통치하는 지역 내부에만 관심이 있고, 중국은 거대해서 문제가 있으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살면 되고, 인도는 자기 카스트, 자기 종교집단 내부의 일만 신경쓴다. 집단적 의사결정은 관심없다. 아랍도 부족의식이 강해서 족장의 명령만 듣는다. 한국은 덩어리가 작아서 의사결정에 민감하다. '여기에 줄을 서야 한다니깐.' '아니다 저쪽에 줄을 서야 해.' 이런 말이 많았다. 왜 국뽕이 나왔는가? 옛날에 소련을 배우자(20년대) 혁명 하면 소련이지. 독일을 배우자(30년대) 히틀러 총통이 순식간에 독일병을 치료했다네. 일본을 배우자(40년대) 미국을 이겨버리네. 미국을 배우자(50년대) 미군정을 거치며 교과서에 링컨과 워싱턴과 에디슨의 조작된 가짜 위인전이 올랐지. 맥아더도 꼽살이 끼었고. 중국을 배우자(60년대) 문화혁명. 한때 세계의 모든 지식인이 열광했지. 베트남을 배우자.(70년대) 조그만 것들이 거인 미국을 떡실신 시키네. 북한을 배우자(80년대) 주체사상 배우는 자들 있었지. 일본을 배우자(90년대)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이규형인가 하는 자가 뻥치고 다녔지. 북유럽을 배우자(2000년대) 진중권, 박노자, 홍세화 등이 서구 사대주의를 전파했지. 거꾸로 니들이 한국의 모범을 배워라. (2020년대) 이렇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다른 나라에 없고 한국인만 이러고들 노는 거다. 국뽕이 아니라 한국인의 유별남이다. 하여간 별난 애들이다. 배우기 좋아하는 교육망국 한국에서 뭐든 배우려고 노력하다가 더 배울 것이 없으니 거꾸로 가르치려 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어쨌든 한국인은 국가단위로 뭐든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비열한 엘리트의 저급한 권력의지다. 소련을 배워라.. 라고 쓰고 '소련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내 뒤로 줄을 서라'로 읽는다. 미국을 배워라.. 라고 쓰고 '미국에 대해 알고 싶으면 내 뒤로 줄을 서라.' 국뽕 비난은 내 뒤로 줄서라는 거다. 3류 엘리트의 천박한 권력의지다. 유태인은 특수한 역사와 전통과 지정학적 구조에 처해 있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된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거다. 피할 수 없다. 한국도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이제 더는 외국에서 배울 것이 없고 되레 가르치게 되었다. 다른 나라들도 다들 한 번씩 그렇게 했다. 5천 년 만에 우리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이 유행이 길게 안 간다. 한국은 인구멸망 예약해놨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금방 사라지는 기회다. 한국의 역동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전파해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다른 나라에 없는 특별한 것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 일군 공화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되 거기에 한국만의 플러스 알파를 인류문명의 새로운 메뉴로 삼아야 한다. 구조론에서 공자의 엘리트주의를 민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 없는 강자의 철학이다. 일본은 원래 아시아의 변방이니 변방의 실용주의로 가고, 미국은 유럽에서 변방이니 당연히 변방의 실용주의로 가고, 중국은 북방 오랑캐에 시달리다 지식인이 남쪽으로 이주하며 남는게 없어서 실용주의다. 유럽도 독일은 변방이라 당연히 실용이다. 영국은 섬이라서 치고빠지기 얌체 짓만 하다 보니 해적질에 실용이 미덕이 되었고, 프랑스가 한때 나폴레옹 주도로 대국행세를 하며 합리주의를 외쳤으나 나폴레옹 자신이 먼저 나폴레옹 사상을 배반해 버려. 이탈리아는 수십 개의 소국으로 분열되어 로마시절의 대국사상이 멸종했고, 그리스는 알렉산더 이후 문명의 요람이었지만 이탈리아에 밀린 후 지리멸렬. 아랍은 한때 마호멧의 종교개혁으로 꽤나 합리적이었지만 징기스칸에 씹힌 후 영영 멸망해버려. 인도인들은 현세에 무관심해서 기록을 하지 않으므로 자동멸망. 거의 모든 나라가 합리주의를 버리고 실용으로 치달으니 인류는 파멸을 예약한 것. 한국이 유일하게 세계 사대강국 미일중러 사이에 끼어 이 구조로는 실용주의로 가서 살아남을 수 없어. 실용은 귀퉁이 나라가 하는 것인데 한국은 어쩌다 중심이 되어버렸어. 미국 뒤에 붙거나, 중국 뒤에 붙거나 한국은 어느 나라 뒤에 붙어도 멸망하게 되어 있어. 바퀴축이 견디지 못하면 깨지는 법칙. 남 뒤에 살살 묻어가는 전략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유럽이라면 주변국 눈치 보며 적당히 상황판단하면 되는데 한국은 그게 곤란. 중국이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러시아든 적당히 눈치 볼 수 있는 덩치들이 아냐. 한국의 운명은 지정학적으로 정해진 것. 물론 주어진 기회를 살리느냐는 각자 역량에 달린 것. 한국은 엘리트주의로 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운명이 강제된 나라. 유태인은 금융업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도록 강제된 집단. 어쩌다 팔자가 그렇게 된 것. 집시가 차별받는 것은 이유가 있고 아프리카 난민이 유럽으로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고. 집시집단끼리 서로 친하지 않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해결이 안 돼. 어떤 집시집단이 국가정책에 성실히 협조해도 다른 집시그룹이 몰려와서 깽판쳐버려. 동유럽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집시들은 집시세계 자체가 하나의 세계여서 다들 다른 집시를 욕해. 집시끼리 뭉치거나 쿠르드가 뭉치거나는 무리. 쿠르드는 산악민족인데 산악은 지형부터 뭉치기가 곤란해. 한국이 아니면 지구촌 인류는 답이 없어. 피할 수 없는 물리적 조건. 인류는 잠시 한국에 의해 행복해 하다가 곧 중국의 재앙을 목도하게 될 것. 앙골모아의 대왕인지 앙골몽골의 대왕인지 공포의 대왕이 가만두지 않아. 바다가 거칠면 배가 난파되고 바다가 조용하면 항해가 순조로운 법. 세계가 하나의 바다라면 큰 바다와 작은 바다가 있는 법. 바다의 사이즈에 따라서 바람의 방향은 다른 법. 덩어리 큰 미국과 유럽과 인도를 한국이 모방하려 하면 무리수. 유럽이 되는 것은 유럽이라서 되는 것이고, 미국이 그런 것은 미국이라서 그런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인을 계몽시켜 한일 대화해로 가기는 거의 불가능. 구조적으로 안 되는 그림. 중국이 민주화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당분간은 헛된 생각. 13억이 내달리는 관성의 법칙에 의해 발동걸린 거함이 방향을 틀지 못해. 중국에서 흐류쇼프나 고르바초프를 기대할 수 없어. 꽌시라는 상호감시체제 때문에 영웅적인 인물이 나올 수 없는 구조. 국뽕은 개인의 어떤 생각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처한 물리적 조건. 세계 200여 개 국가가 있지만 그냥 이름이 국가일 뿐 어떤 나라는 사실 도시에 불과하고 어떤 나라는 아주 별도의 세계를 이루고 있어. 단순비교해서 똑같이 가야 한다고 믿으면 멍청이. 프랑스가 되니까, 덴마크가 되니까, 핀란드가 되니까 한국도 당연히 될 거라고 믿는다면 초딩. 한반도를 유럽 한 귀퉁이에 붙여놓는다면 몰라도. 국가의 사이즈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지정학적 조건이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의사결정구조가 다르다고. 강자의 철학을 배운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 한때 로마가 강자의 철학을 가졌고, 한때 프랑스가 강자의 철학을 가졌고, 알렉산더의 그리스가 보편주의를 추구했고 중국도 강자의 철학을 가졌던 한나라 무제 때 잘나갔지만, 곧 약자의 철학으로 갈아탔어. 지도자는 애초에 지도자로 길러져야 해. 국가도 마찬가지. 미국인은 세계를 이끌 생각이 없어. 트럼프가 그렇잖아. 아베도 마찬가지 시진핑도 그 나물에 그 밥. 자기 몫 찾기에나 분주할 뿐 그들은 소인배. 소인배로 키워졌고 소인배라서 살아남은 인물. 나라의 덩치가 너무 크면 그래서 좋지 않은 것. 덩치가 너무 작으면 포기하는 것. 숫자가 많으면 숫자의 힘에 압도되어 버려. 그게 부족주의 현상. 집단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숫자의 힘에 개인이 위축되기 때문. 중국은 인구 5천만에 30개 국가로 쪼개야. 그렇게 쪼개진 대륙이 유럽. 유전자로 보면 유럽의 다양성이나 중국의 다양성이나 같아. 같은 한족이라 해도 황하유역과 양자강 유역은 전혀 다른 핏줄. 인구는 유럽과 중국이 비슷한데 유럽은 잘게 쪼개졌고 중국은 죄다 합쳐졌고 그 차이. 구조의 문제. |
"한국의 역동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전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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