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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41 vote 0 2020.08.10 (16:08:26)

    사회적 자유주의 제언


    신은 하나다. 현장에서는 셋으로 나뉜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와 유지의 신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가 있다. 각각 일의 시작과 진행과 종결을 담당한다. 추가 설명이 필요하지만 대략 이렇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인류의 이념은 하나다. 70억 인류가 연결하여 하나의 뇌를 이룬다면? 


    그게 이념이다. 가정이든 동호회든 회사든 국가든 인류든 집단의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이념이 필요하다. 의사결정에 앞서 집단을 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집단인가? 콩가루 집안인데도? 의붓자식인데도? 나라가 망했는데도? 어떻든 의사결정을 하려면 이념을 부정할 수 없다.


    이념을 부정하는 견해도 이념의 파편이다. 이념부정은 집단부정이고 집단이 없으면 집단적 결정을 못 한다. 집단적 결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각자도생이 그러하다. 그런데 집단적 결정을 한다면 반드시 이념이 도출된다. 외계인이 침략하면 인류가 힘을 하나로 모아 맞서야 한다.


    이미 이념이 만들어졌다.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재앙은 인류가 힘을 모아 대응해야 한다. 이념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념의 부정은 집단적 의사결정의 부정이고 이는 집단의 일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단의 일에 참여하지 않겠다면 발언권도 없다. 그러므로 닥쳐!


    이념이 둘이 될 수는 없다.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은 집단이 방향을 트는 것이며, 방향을 틀면 움직이게 되고, 움직이면 외부와 일대일로 대응된다. 자동차 핸들은 하나다. 둘이면 집단이 깨진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다.


    움직이는 두 사람이 만나려면 같은 날, 같은 장소를 특정해야 한다. 시공간의 좌표 위에 한 점을 찍어야 한다. 움직이는 세상과 나를 잇는 라인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라인이 둘이면 흡수된다. 이념은 하나인데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 것은 집단에서 맡은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은 일어나고 인간은 가담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진행한다. 사건의 어느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 적당할까? 창조가 좋지만 금방 끝난다. 브라흐마 신의 서열이 높아도 인기가 없다. 시바신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념은 하나이나 단계별로 공화, 자유, 민주, 자본, 사회가 있다. 공화는 가끔 등장하며 브라흐마처럼 금방 시즌이 끝나버린다. 자유는 앞단계에 개입하여 권력을 얻고 사회는 뒷단계에 개입하여 보상을 얻는다. 여기서 갈등한다. 그 중간의 민주와 자본은 대략 세팅된 대로 굴러간다.


    법과 제도에 맡겨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는 운영의 묘에 달려 있다. 기업가와 금융인이 잘해야 하고 정부의 기술자들이 재정과 환율과 금리로 마술을 부려야 한다. 미국이라면 연준의 파월 의장과 트럼프의 안목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이 즐비한데 개인이 끼어들 여지는 잘 없다.


    개인은 권력의 자유주의와 보상의 사회주의 중에서 자기 입장을 정해야 한다. 엘리트는 권력을 선택하고 하층민은 보상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권력지향적이다. 권력은 눈앞에 있고 보상은 먼 훗날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당장의 권력에 굶주려 있다. 


    가난할수록 계급배반투표로 간다. 권력과 보상 중에서 권력을 선택한다. 가난한 이유는 먼 훗날에 대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축도 안 하는 사람이 나중에 보상받는다는 약속을 믿어? 현찰을 나눠주면 몰라도. 권력은 가깝고 보상은 멀다. 그 권력은 상당 부분 심리적인 권력이다. 


    남자가 여자를 지배한다고 믿거나, 경상도가 다른 지역을 지배한다고 믿거나, 강남이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고 믿는다면 망상이다. 검찰이 반역하는 이유도 자기네 패거리가 대한민국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눈앞의 권력에 집착하는게 인간이다. 


    인간은 망상에 가까운 심리적 권력에 집착한다. 돈이라도 마찬가지다. 이건희가 수십조 원을 가졌지만 병실에 누워있으면 심리적인 가치뿐이다. 부자들은 돈에 묻어오는 권력을 누릴 뿐 돈을 소비하여 얻는 보상에는 관심 없다. 보상은 부자의 부인이나 자식들이 챙겨가는 것이다.


    권력이 동기가 되지만 보상이 없어도 인간은 게임에 참여하지 않는다. 승자든 패자든 마찬가지다. 승자의 이익이 없으면 메시도 시합을 건성으로 뛴다. 패자의 이익이 없으면 승산이 없는 약자들은 외국으로 도망치거나 범죄자가 된다. 자살하거나 노숙자가 되어 게임에 불참한다.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납득할 만큼 보상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적절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부족주의다. 부족주의는 권위주의적인 패거리를 이루고 세력에 묻어가는 전략이다. 반칙을 하려는 것이다. 권력이냐 보상 중에 선택하라구? 아냐. 난 반칙할래. 이게 문제다.


    북유럽은 보상을 추구하다 망하고, 미국은 권력을 추구하다 망하고, 후진국은 반칙을 추구하다 망한다. 권력을 선택하면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정선카지노 행이기 다반사다. 의사결정권을 백퍼센트 개인에게 넘기면 대부분 도박을 하고 뒷감당을 못 한다.


    보상을 선택하면 기대에 미치지 않는 적은 액수가 배당된다. 다수가 적은 액수를 보상받고 모두가 불만에 찬다. 결정적으로 엘리트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간다. 결국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진다. 선권력 후보상이냐, 선보상 후권력이냐, 게임 참여냐, 게임이탈이냐. 결정해야 한다.


    반칙할 것이냐, 정당하게 승부할 것이냐도 결정해야 한다. 전략과 전술 중에서도 선택해야 한다. 장기전과 단기전, 전면전과 제한전이 있다. 전략은 진보이고 전술은 보수다. 장기전은 진보이고 단기전은 보수다. 전면전은 진보이고, 제한전은 보수다. 지리적인 구도가 변수가 된다.


    중국처럼 땅이 넓다면 대략 장기전을 선택한다. 국가는 장기전을 하는데 개인은 초단타를 친다. 미국이 압박해도 중국이 버티는 것은 장기전이다. 50년간 토론하고 백 년을 밀어붙이는게 중국인이다. 반대로 중국 부자들이 인스그램에서 돈자랑을 하는 것은 초단타에 해당하겠다.


    단기적으로 반응을 끌어내는 데는 쪽수가 넉넉한 중국만큼 좋은 곳이 없다. 감동적인 사진을 투척하면 10억 명이 본다. 뻥을 치려면 화끈하게 쳐야 한다. 반면 진지한 주장이라면 어떤 주장을 내놓아도 메아리가 없다. 공자 이후로 공자노선을 걷는 사람은 중국 역사에 한 명도 없다.


    공자의 후예들은 지금은 장사꾼이 되었다. 전 국민이 단타를 치는 셈이다. 상업이 단기전이면 학문은 장기전이다. 공리공론 위주의 관념철학을 버리고 풍수나 따지며 도교사상 특유의 극단적인 실용주의로 가다가 망한 나라가 중국이다. 이념은 공화, 자유, 민주, 자본, 사회가 있다.


    하나의 일이 기획단계, 독립단계, 성장단계, 팽창단계, 수확단계에 따라 필요한 결정이다. 역할의 차이다. 필자의 사회적 자유주의는 책임은 시스템에 묻고 권력은 개인에게 주자는 거다. 뭐든 잘못되면 사람탓을 하지 말고 매뉴얼을 고쳐야 한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 사회주의다.


    공화는 가끔 한 번씩 등장한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인기가 없어진 이유다. 노예제도를 폐지한 이후 토지공개념을 빼고 공화할 일이 별로 없다. 국민이 한자리에 다 모여서 룰을 다시 정할 일이 거의 없다. 미국은 인종갈등이 심해서 공화할 일이 남아있다. 푸닥거리 해줘야 한다.


    한국은 남북통일이 공화주의를 들고나올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제도에 의해 안착이 되어 가는 편이고 자본주의는 발달하는 중이며 제도가 뒷받침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 주요한 갈등은 개인이 선택하는 자유주의 사회주의다. 


    자유주의는 엘리트 위주이며 개인주의다. 후진국은 묻어가기 전략을 쓴다. 반칙을 한다. 왜 가부장이 존재하는가? 가장 한 명이 출세하면 다른 사람들은 묻어가려는 꼼수 때문에 가장의 입지가 강화되고 차별이 일어난다. 가장이 혼자 벌어서 일곱 식구 먹이고 노부모 봉양해야 한다.


    후진국일수록 한 명이 벌어 다수를 먹인다. 장남은 명문대 보내고 차남 이하는 중학교까지만 가르친다. 왜? 돈이 없어서다. 장남 하나에 몰빵하고 낙수효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선진국이 될수록 개인주의로 기울게 된다. 후배가 선배에 의지할 수도, 선배가 후배를 챙겨줄 수도 없다. 


    챙겨주면 반드시 갑질하게 된다. 그러다가 미투를 당한다. 백퍼센트다. 게임의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패거리가 되면 필연적으로 갑질, 차별, 비리, 부패로 간다. 그룹원 중에서 나쁜 한 명에 맞추다 보면 그렇게 된다. 후진국은 당연히 그렇게 된다. 개인에게는 경쟁할 자원이 없다.


    지식도 없고, 힘도 없고, 빽도 없으니 교회라도 가서 빌붙어야 한다. 필자는 이런 패거리 현상을 부족주의라고 부른다. 개인에게 권력을 주고 집단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부족주의가 발호하면 모든 것이 애매해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개인에게 권력을 줄 수 없다.


    권력을 주면 타인에게 위임해 버린다. 투표권을 줘도 남이 시킨 대로 찍는다. 의사결정의 난맥상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선진국은 그래봤자 얻는게 없지만 후진국은 그렇게 하면 이익이 있다. 차별주의는 묻어가기 전략이다. 왜 교회는 소수자를 차별하는가? 묻어가면 차별하게 된다.


    앞단계 권력인가, 뒷단계 보상인가? –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다.
    강자의 공정경쟁인가, 약자의 묻어가기 꼼수인가? – 개인주의와 권위주의다.
    장기적인 전략인가, 단기적인 전술인가? –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다.


    이 외에도 공화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있지만 이들은 대개 세팅된 대로 굴러간다. 개인이 게임에 가담할 때 판단해야 하는 것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중에서 미국식으로 권력을 추구할 것인가 북유럽식으로 보상을 추구할 것인가다. 엘리트는 권력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층민은 보상을 선택하는게 유리하다. 그러나 권력은 눈앞에 있고 보상은 저 멀리 있다. 결정적으로 강자는 공정경쟁이 유리하고 약자는 권위주의가 유리하다. 약자는 매를 맞더라도 선배를 섬기는게 낫다. 이렇게 되면 복잡해진다. 약자가 물질적 보상보다 심리적 권력을 택한다.


    허다한 이념논쟁은 이러한 세 가지 게임의 모순 때문이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똑똑한 사람에게 유리하다. 그게 맞다. 똑똑한 사람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띨한 사람은 패거리 짓는 방법으로 즉 반칙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비틀어버린다. 여성인데 남자편 든다.


    남편이 돈을 잘 버니까. 약자인데 강자편 든다. 삼촌이 부자니까. 이런 식이다.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은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집단이 비전을 받아들이도록 신뢰를 닦는 것이다. 장기전을 선택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물론 그 경우에도 반발하는 사람은 있는데 노인이다.


    진보와 보수 - 앞에 가담할 것인가, 뒤에 가담할 것인가?

    개인과 권위 - 개인으로 가담할 것인가, 패거리로 가담할 것인가?

    자유와 사회 - 당장 권력을 얻을 것인가, 나중에 보상받을 것인가?


    공화와 봉건 - 집단에 가담할 것인가, 그냥 혼자 놀 것인가?

    민주와 독재 - 다수가 합의할 것인가, 소수가 폭주할 것인가? 

    자본과 원시 - 발전할 것인가, 퇴행할 것인가?


    공화주의냐 봉건주의냐는 백 년 단위로 드물게 한 번씩 집단이 의사결정할 이슈가 터지고, 민주주의는 한 번 세팅되면 대략 안정적으로 굴러가며 법과 제도를 정비할 나름이고, 자본주의 역시 법과 제도를 세련되게 운영하는 전문기술자의 영역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8.11 (04:04:41)

"결국 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법은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집단이 비전을 받아들이도록 신뢰를 닦는 것이다."

http://gujoron.com/xe/1226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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