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중독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본바탕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백인이 타인종을 차별하지 않는 이유는 그 방법으로
자기들이 줄곧 이겨왔기 때문이며 이기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지면 트럼프 본색이 드러납니다.
미국이 중국의 기세에 밀리니까 숨겨왔던 발톱을 드러낸 것입니다.
모든 백인은 인종차별을 할 수 있습니다.
단 백인이 이기는 게임에서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차별하는 자가 지는 것이 문명사회의 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어차피 야만한 짐승이라는 본질을 인정하고
사회계약을 통해 근근이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뿐이며
차별금지는 그 사회계약내용이며 계약을 어기는 윤서인들은
본보기로 역사의 희생제물로 삼아 제단에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이기는 게임을 추구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기면 다음 게임으로 갈아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미션을 받아 진보의 게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평등하다?
계약에 의해 평등하고 게임에 의해 평등한 것입니다.
게임이 없으면 계약할 이유도 없습니다.
게임이 벌여졌기 때문에 이기려고 하고 이기려면 자기편을 늘려야 하고
자기편을 늘리려면 계약을 지켜야 합니다.
평등은 이기는 계약일 뿐입니다.
게임이 인간의 숙명이므로 평등도 인간의 숙명입니다.
계약도 없고 게임도 없으면 인간은 3초 안에 짐승으로 돌아갑니다.
월남 정글에 던져놓으면 당신도 당신의 삼촌들이 그랬듯이
민간인을 향해 서슴없이 방아쇠를 당깁니다.
물고기를 잡듯이 사람을 사냥합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입니다.
문명은 그런 야만을 지속적으로 패배시켜 왔습니다.
다만 20세기 들어 탈근대 또라이들이 득세하여
야만이라는 단어 자체를 금지시켜 버렸습니다.
그러자 인류는 모두 문명인으로 태어났다고 착각하고
야만을 저지르면서도 나는 문명인이니까 이건 야만이 아닐거야.
왜냐하면 중권또라이가 말했어. 나더러 문명인이래.
쟤들이 하면 야만이고 내가 하면 문명인 행동이지 암만.
이렇게 비뚤어져 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야만한 존재이며 언제든 3초 안에 야만본색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그 개가 사람을 무는 꼴을 목도하게 됩니다.
문명과 야만은 종이 한 장 차이란 말씀.
게임에 의해 긴장이 유지되는 동안만 물지 않는 개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사회계약론이 아니라 사회게임론이 맞습니다.
인류는 끊임없이 피아간에 대척점을 만들고 경쟁해 왔습니다.
의사결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평등을 룰로 채택한 팀이 이기는 게임을 만들어 왔습니다.
차별하면 선수들이 도망가서 전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인종차별, 민족차별을 하지 않았다면 독일이 소련을 이겼을 것입니다.
진보는 평등을 룰로 채택하고 보수는 차별을 룰로 선택하는데
단기전에는 보수가 이기고 장기전에는 진보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평등을 룰로 채택하면 누구를 장군으로 뽑아야 할지 알 수 없으므로
대장이 없어서 전쟁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장이 있어도 평등이 룰이라며 따르지 않습니다.
평등하다면서 왜 내가 노무현 말 듣고 문재인 말을 듣지?
무현아 재인아 나랑 맞먹자. 우리는 평등이잖아.
이 지랄삥을 하는게 중궈니즘입니다. 윤석열 역적입니다.
이런 반란군 새뀌들은 총살시켜버려야 합니다.
보수는 대장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초전에 승리하지만
너무 잘 들어서 박근혜 대장이 매양 이 산이 아닌게벼 하는데
전투를 하다보면 차별에 분노한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결국 전멸
진보는 처음에는 중궈니 석열이 반란군 놈의 새끼들 때문에 애를 먹지만
그 와중에 대오가 갖추어지고 훈련이 숙달되면 이기는 부대가 탄생하고
평등하므로 상승부대의 전술이 다른 부대에 쉽게 전파되어 한 순간에 전력상승입니다.
그 과정이 험난할 뿐이지만 역사의 순환이 거기에 있습니다.
평등해서 이기는게 아니고 평등하면 누가 이기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
그 기술을 재빨리 복제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차별하는 부대는 자기편도 차별하기 때문에 누가 이기는 방법을 찾아내도
혼자 알고있지 그것을 동료들에게 전파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진보가 이기도록 되어 있지만 그냥 되지 않습니다.
내부의 적인 중궈니즘을 박멸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