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은 언어다 초심자를 위한 안내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하다. 구조론은 어떤 의견을 주장하는게 아니고 그 의견을 전달하는 언어를 제안한다. 구조론에서 하는 말의 내용에 주목하지 말고 구조론의 말하는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사과는 왜 붉은가? 하늘은 왜 푸른가? 이렇게 물으면 안 된다. 사과는 왜 붉게 보이는가? 혹은 하늘은 왜 푸르게 보이는가? 하고 물어야 한다. 사과가 붉다고 하면 ~라고한다의 법칙을 적용하여 사과는 붉은 걸로 한다. 하늘은 푸른 걸로 한다고 알아들어야 한다. 관측자와 관측대상의 관계가 존재한다. 주관이냐 객관이냐다. 언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그냥 자동차가 좋다고 말하면 안 되고 이 자동차는 가성비가 좋다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독일차는 강성이 좋고 일본차는 승차감이 좋다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판단해야 한다. 구조론은 말을 똑바로 하자는 제안이다. 사과가 붉다와 붉게 보인다의 차이는 메커니즘에 있다. 구조론은 메커니즘이다. 어떤 것이 있다면 메커니즘이 있는 것이다. 예외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가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메커니즘은 둘이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다. 붉은 사과와 그것을 보는 내 눈이 있다. 둘이 있는 것이다. 둘은 마주 보고 대칭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대상 자체에도 그러한 대칭이 존재한다. 모든 공간 속을 움직이는 것의 내부에는 반드시 그러한 대칭이 존재한다. 공간이 대칭이기 때문이다. 작용에 반작용이 있는 것이다. 활을 쏘든 총을 쏘든 공을 차든 움직이는 것은 반대방향의 작용이 있다. 화살이 앞으로 날아갔다면 시위는 뒤로 당겨진 것이다. 진보라는 화살이 앞으로 날아갔다면 보수라는 시위가 뒤로 당겨진 것이다. 구조론은 비판할 수 없다. 구조론은 언어의 제안이며 언어를 배우면 구조론의 제자가 되기 때문이다. 에스페란토어를 배우면 에스페란티스토가 되는 것과 같다. 어떤 대상에 내재하는 자체 메커니즘 위주로 사고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멋모르고 관측자를 개입시킨다. 화살이 날아오는 이유는 내가 봤기 때문이 아니고 궁수가 시위를 당겼기 때문이다. 관측대상 자체에 내재하는 자체 질서가 있다. 그 질서를 모르므로 섣불리 선악논리로 가거나 정치논리로 가게 되어 각자 진영논리를 앞세우면 해결책은 미궁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구조론은 게임의 규칙이자 게임의 제안이다. 별을 보려면 망원경을 써야 하고 말을 하려면 구조론을 써야 한다. 구조론 없는 말은 핑퐁과 같아서 말을 받아주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일본 만담처럼 보케와 츳코미로 역할이 나눠진다. 편향된 응석받이 언어가 된다. 내가 본 것은 사과가 아니라 빛이다. 빛 자체에 파장이 있다. 하늘은 프리즘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게 빛의 사정인지 하늘 혹은 사과의 사정인지 내 눈의 사정인지 그 배후에 있는 뇌의 사정인지 판단해야 한다. 사과다 하늘이다 하고 고정하므로 문제가 있다. |
"구조론은 어떤 의견을 주장하는게 아니고 그 의견을 전달하는 언어를 제안한다. 구조론에서 하는 말의 내용에 주목하지 말고 구조론의 말하는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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