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물떼세
악어새는 없소.
이름이 악어새일 뿐.
간 큰 새인 것은 맞소.
제비는 인간과 공생하는게 아니고 단지 집을 거기에 지을 뿐.
인간의 집이 없을 때도 제비는 있었고 원래는 절벽에 집을 지었소.
제비도 간이 큰 새인 것은 맞소.
공생 좋아하네.
그것은 '위하여'에 중독된 인간의 망상일 뿐이오.
물론 공생 비슷한건 있소.
억어는 악어새와 공생하지 않고 악어새는 악어와 공생하지 않소.
단지 간이 큰 넘이라서 겁대가리없이 근처에 얼쩡거릴 뿐.
사슴은 단지 스킨십을 즐길 뿐 벌레퇴치를 위하여 거래하는 것은 아니오.
'위하여주의'에 기반한 근대과학은 송두리째 붕괴되어야 하오.
다 거짓말이오.
중요한건 여러분이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의하여주의'로 세계관을 확 바꿀 배짱이 있느냐이오.
이건 배짱의 문제이오.
깨달음은 배짱이오.
메커니즘 자체.
닫힌계 안에서 판단하기.
문득 악어의 눈물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깨달음이 배짱이라는 말
참 즐겁게 느껴집니다.
예전에 털은 바람을 복제한 것이다.라고 언급하신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저희 집 고양이는 스킨십을 무척 좋아합니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겠구요.
그렇다고 물고기나 뱀 따위가 사람이 만지는 것 같은 스킨십을 좋아할 것 같진 않구요.
혹시 사람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뱀은 땅을 기어서 다니니까 땅과 접촉하는 것이 나름대로의 방식일지도...)
중력이나 신체구조상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사람이 발을 땅에 딛고 사는 것도
스킨십과도 조금은 관계가 있을 듯도 하고...
하여튼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어제 위의 사진을 딱 보는 순간, 근질다(긁다)와 간질이다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두 말 모두 피부와 관련된 것이고, 피부의 문제는 체온, 습도, 털의 유무
그리고 벌레와 같은 이물질과 관련이 있는 듯 하고요.
영양이 자신의 등에 새들을 태우고 스킨십을 즐기는 건
우선 영양의 체온과 주위의 습도, 털, 벌레 때문에 어떤 근지럽다, 간지럽다와 같은 걸 느낀 것 같구요.
원래부터? 스킨쉽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원래부터 그랬을 리는 없겠지요 )
어떤 시원함을 원했는데, 우연히 새들이 와서 쪼아대니까 기분이 좋아졌고
그래서 새들도 영양이 가만히 있으니 계속 찾아올테고
영양은 조렇게 오르가즘을 느끼는 듯한 묘한 포즈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린도 긁어주면 고개를 쳐듭니다.
사람도 기분이 좋을땐 고개를 젖힙니다.
돼지나 하마도 고개를 듭니다.
염소나 낙타나 말은 입술을 쳐듭니다.
모든 동물은 기분이 좋을 때 고개를 젖히는데
그 이유는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음악감상 안 합니다.
원래부터 스킨십(정확히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추구하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드는 이유는
환경과의 교감하려고 자기 몸의 표면적을 넓히는 걸로 봅니다.
나도 의하여에 한표 - 확 바꿀 배짱 있습니다
생명의 최초 탄생은 스킨십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애초부터 자연의 스킨십이 있었고 그것이 생명에 복제되어 저장된 거죠.
그는 카운셀러 였는데, 그 당시 얘기의 맥락은 달랐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더군요...
의하여로 가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