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전모, 성패의 차원 : 생멸 > 성쇠 > 흥망 > 승패 > 선후
일의 전모, 집단의 차원 : 정보 > 우주 > 생명 > 인류 > 개인
인류 > 국가 > 지역 > 동네 > 개인
일의 전모, 개인의 차원 : 전아(완전함) > 각아(깨달음) > 사아(사유함) > 경아(겪음) > 행아(움직임)
난리가 났다. 국가가 퇴행했다. 인류의 진보에 맞서는 국가는 난리가 난다. 하극상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행에 맞서야만 하는 지역과 동네와 개인은 난리를 만난다. 국가와 지역과 동네에 맞서야만 하는 개인이라면 난리 중에 난리를 만난 것이다.
국가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가능하다. 패하였을지라도 망하지 말하야 한다. 쇠하지 말아야 한다. 멸하지 말아야 한다. 인류를 봐야 하다. 생명을 봐야 한다. 우주를 봐야 한다. 정보를 봐야 한다. 하극상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더 높은 곳을 봐야 한다. 국가가 역중행하면 인류를 봐야 한다. 70억 인류를 넘어 7,000억 인류를 봐야 한다. 인류라는 집단을 본다면, 현재 인류 넘어에 도도하게 너울거리는 과거 현재 미래까지 포괄하는 완전한 인류 7,000억의 7,000억배 넘어 갈 인류를 봐야 한다.
개인은 집단이다. 집단의 차원을 발견해야 한다. 완전해야 한다. 각성해야 한다. 사유해야 한다. 경험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1,500만의 집단이 역행해도, 맞설 수 있다. 5,000만이 역행해도 맞설 수 있다. 완전한 개인은 국가의 퇴행과 맞설 수 있는 집단이다. 인류의 퇴행과도 맞설 수 있는 집단이다.
완전함이 중심이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모든 집단은 중심이 있다. 정보도 우주도 생명도 인류도 개인도 중심이 있다. 완전함이 있다. 중심과 중심이 만날 때 집단은 차원의 한계를 넘어 대등할 수 있다. 그 찰나에 사건이 터진다. 일이 난다. 우주가 나고, 생명이 나고, 인류가 나고. 개인이 난다. 모든 퇴행과 역주행을 일소한다. 진리는 그렇게 일한다. 신은 그렇게 일한다. 완전함은 그렇게 일한다.
완전함으로 일한다. 우주를 낳은 정보는 그렇게 일했다. 생명을 낳은 우주는 그렇게 일했다. 인류를 낳은 생명은 그렇게 일했다. 개인을 낳은 인류는 그렇게 일했다. 그러함으로 낱개인 개체 사람은 부모가 낳을 수 있어도, 집단인 개인 사람은 부모가 낳을 수 없다.
잡스러운 집단에 휘쓸리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잡스러운 선후, 승패, 흥망, 성쇠, 생멸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완전함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완전함으로 바룰 수 있어야 진짜다. 진짜 앞서고, 이기고, 흥하고, 성하고, 생하는 것이다.
동네나 지역이나 국가나 인류는 그리 크지 않다. 크게 보이는 것은 착시다. 그리 세지도 않다. 세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다. 퇴행이나 역주행으로는 망하고, 쇠하고, 멸하게 될 뿐이다. 단호히 끊어 내야 한다. 멀리해야 한다.
진리와 연결하고, 중심과 연결하고, 완전함과 연결하면 된다. 당당히 퇴행과 맞설 수 있다.
나를 낳은 인류의 편에 설 수 있다. 나를 낳은 생명에 편에 설 수 있다. 나를 낳은 우주의 편에 설 수 있다. 나를 낳은 정보의 편에 설 수 있다. 완전함으로 바룰 수 있다.
난리가 났다. 그러나 동요마시라. 난라는 인류 생활의 일상일 뿐이다. 사람이거든 구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