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제가 올린 글을 퍼왔습니다.
선생님들의 반응도 매우 좋습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는 웬만하면 넘어가고 정도가 심한 경우는
절차적으로 징계를 내리는 것이 다수이고, 아이들의 문제행동이 개선되는 경우는 별로 없거든요.
특히, 담당 업무의 교사라 할찌라도 특정 사례에 개입하기 보다는 서류상 업무를 담당하고, 일체식 방송교육이나
그림 글짓기 행사에 그쳐서 문제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교육청의 지시에 대해 '이러이러한 교육을 했다'는 책임이행의
증거를 남기는데 의의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동료 선생님들과 실제적으로 협력적으로
학급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행동을 해결하니까 놀랍기도 하고, 관심이 가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현재까지는 구조론이 최선입니다. 저는 학급에서 아이들의 행동의 원인을 동렬님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고,
동렬님의 해결책을 가지고 실제로 적용했을 뿐입니다. 물론 다른 분들이 그러하듯이 일련의 해결책은 저도 구조론적인 사고를
연습하기 때문에 이미 해결책을 알고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구조론을 통해 근원적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정답을 확신하고 진행하느냐, 어렴풋이 알고서 설익은 상태에서 적용하느냐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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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애들이 왜 교실에서 말을 안들을까요?
구조론의 창시자 김동렬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아래글은 '마음의 구조'에서 발췌함)
엄마 말을 지독하게 안 듣는 어린이도 외부에서 선생님이나 전문가가 개입하면 바로 달라진다.
말을 안 듣는 이유는 가정 안에서 말썽을 부리는 포지션으로 자기 위치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가정이라는 하나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최대화 하려하며 그 영역한계를 탐사하는 임무를 자신에게 부여하고,
그 한계 끝까지 엄마를 몰여붙여 보는 것이다. 엄마의 인내심 한계를 탐구하고
다시 그 한계선을 가능한 극한까지 넓혀보려는 임무를 자신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의 개입은 그러한 포지션 구조를 해체한다. 자신에게 다른 임무가 부여되고 이전의 임무는 끝나버린다.
그러므로 문제아를 통제하려면 반드시 제 3자를 개입시키고 외부의 다른 룰을 들고와야 한다.
교실에서 말썽을 피우는 녀석은 선생님과의 대결구도를 상정하고 교실의 법칙을 설정하려 한다.
원시의 수렵본능을 발동시켜 환경이 인간에게 허용하는 한계선의 극한을 탐구하려 한다.
가능한 말썽의 최대한을 모험하는 임무를 자신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체벌이라든가 꾸중이라든가 따위 내부에서의 교정은 실패로 돌아간다.
학부모를 호출하고, 교장이 개입해서, 교사와 학생간의 사적인 대결구도를 해체하고,
학생이 임의로 설정한 교실의 법칙을 해체하고 공적인 상황으로 전개시켜 가야 한다.
룰을 건드리면 외부에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연동되어 줄줄이 개입하며 사건이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신문기자가 취재를 나서고 지역 경찰서에서 출동하는 일이 벌어지고 지역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교실문을 닫으면 끝이고 모든 문제는 교실 안에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식의
심리적 안전장치를 해제해 버리는 것이다.
존중 중심의 대화법 초등교사 연구 카페(본인운영) http://cafe.naver.com/indischool/121 , http://www.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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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수원에서도 학구가 안좋기로 유명한 초등학교의 인성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서류업무의 대부분은 폭력담당 선생님이 맡고 있고, 저는 실제 아이들의 다툼이나 갈등문제,
학급내의 도를 넘은 문제행동, 학부모 상담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6학년 담임이고, 5학년 두반의 수업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주역이 한 명씩 있고,
그 주역을 따르는 이들이 2명씩 있습니다. 그리고, 한 반의 남자아이는 품행장애가 의심될 정도로
문제행동이 잦고, 여자애들에게도 공격적인 성향에, 영어 전담시간의 수업방해 행위로 수업이 제대로
진행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예전같으면, '관리자들이 그런 애들을 통제해줘야지 담임 선생님들 노력으로 되겠는가'
그도 안되면 '학년 선생님들이 엄한 분위기 조성해서 애들 불러내서 학년 차원에서 혼내야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인권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면 그 녀석들은 벌써 학부모 상담에
봉사활동을 십수시간은 해야 할 녀석들 인데도 초기에 예방하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인권규정은 사실 유명무실. 이 부분은 초짜 인성부장의 실수였습니다. 작년에 애들에게 엄포만 놓고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 괜히 담임 선생님들이 신경쓰이지 않으시게 배려한다는 게
도리어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놓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성부장 자격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입을 시작한지 한 2-3주 된 결과,
특정아이의 도를 넘는 수업방해 행위는 상당부분 개선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문제가 커지니까 자신들도
조심합니다. 물론, 하루 아침에 나아진 것은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방치와 폭력에 자주 시달리면서도
자신도 학교에서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한 남자아이, 그리고 이 아이와 자주 부딪히는 여자 아이 2명을
담임 선생님 입회하에 접근금지시켰습니다. 물론 그 사이 2-3회 작은 충돌이 있었지만, 예전만큼 갈등이나
싸움의 정도가 심하지 않으니 양쪽 아이들 모두 만족하고 있습니다. 수업시간 또한 애들의 말대꾸나
장난스런 발언, 반의 꼴통 남자애들 2-3명의 맞장구와 호응, 동조하는 애들의 어수선한 분위기때문에
담임 선생님과 교담 선생님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통제방법을 점심시간 자유시간과 계발활동 축구부, 방과후 학교에서 남아서 놀기로 삼았습니다.
수학여행 교관들은 취침시간과 매점이용시간으로 애들을 통제합니다. 결국은 아이들의 자유 vs 수학여행중
안전규칙준수와 교관의 설명에 집중하기를 상호 거래 한 것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을 매우 계산적으로 다루는
것 같지만, 집나와서 들떠있는 6학년 무개념 남자 애들을 통제하는데 이보다 효과적인 통제 기술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수업 방해행위를 계속할 경우 남자 애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점심시간 축구를 금지했습니다.
물론 다른 문제행동을 저지르고도 이를 어긴 6학년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때는 다시 엄중경고하고
또다시 어기면 금지기간이 늘어난다는 것, 벌칙의 사실을 같이 축구하는 반 아이들에게 알리고
같이 축구하면 전원 금지를 명하겠다고 예고를 합니다. 또한 마침 2명의 아이들이 계발활동 축구부입니다.
만약 5학년 두 녀석이 수업중 계속 문제행동을 일으키면, 이 아이들은 축구경기에서 심판을 봐야 합니다,
나아가 체육시간에도 심판을 보거나, 체육활동을 보조하는 방법으로 통제합니다.
교감 선생님께서도 의외로 5학년에서 가장 심한 아이에게 아이의 꿈을 함께 찾아가는 자기주도적 인생캠프의
활동을 이용해서 아이에게 간단한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과제를 안해서인지 하루 학교를 빠진 적도 있지만
그래도 교감선생님이 수업 이외에 폭력관련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시고 학교폭력대책위 회부 사안임을
경고하자 아이도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조금씩 실감하고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상담 선생님과 매주는 아니어도 2-3주에 한번씩은 상담하고,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놓습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봅니다. 학교에서 복지 프로그램중 전문 심리상담 멘토 프로그램이 있어서 자원봉사자와
1:1인간관계로 만남을 가지면서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개인적인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결국 학급에서 아무리 해도 안되는 아이들은 학급 차원이 아닌 학년 차원, 동료교사와의 협력적인 방법,
관리자들의 지원으로 충분히 통제 가능합니다. 문제는 아이가 말을 안들으면, 선생님이 제대로 생활지도를
못한 것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풍토때문에 담임 선생님들도 알리길 꺼리거나, 학급이 혼란스럽게 되어도
학년말까지 괴로운 흐름들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할 점은 지나친 잔소리는 애들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대화법을 연구하시고 적용하시면
아이들과이 관계가 좀 나아집니다. 물론 대화법 만으로는 안됩니다. 학부모가 대화법을 하지 않고,
전년도 선생님이 대화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담임 선생님만 대화법을 하면 아이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종종봅니다. 확실한 통제수단이 없는 대화법 적용은 아이들의 만용을 키웁니다.
핵심은 학급의 문제를 공론화하여 동료교사들이 함께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부모의 협력을 얻을 수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제 사례 경우 두 가정 모두 학부모의 도움을 얻기 어려운 처지라 담임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이 애들 내버려두었다가는 6학년때 힘들겠다는 위기감 때문에 미리 손을 쓴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힘을 합칩시다. 학급을 운영하는 것은 교사이지만, 아이들에 대한 이해와 처방지도는 협력적일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교육의 본질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함께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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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반응
* 윗글에 대한 저의 댓글 : 학급내의 구도를 학년의 구도로, 학교 전체의 구도로 입체화, 공론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학생 생활 규정을 바탕으로 한 인권규정의 엄격한 적용도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리도 대화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감과 단호함을 동반합니다.
아이들과의 괜한 시비나 적대감을 막을 수 있지요.
무언의 폭력에는 저는 반대합니다. 엄격한 행동통제를 요구하는 경우는 수업방해행위와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교사의 수업권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부모 상담요령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 문제의 근본원인이 학부모에게 있더라도 어느 정도 협력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험 많은 교사들의 행동통제방법을 경험 적은 저의 예로 들어보면, 유머감각과 적절한 침묵과 쏘아보기 등이 있었습니다. 유머감각이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아이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지더군요. 높은 목소리와 계속적인 잔소리보다 짧은 몇마디, 잠시동안의 침묵, 쏘아보기, 한가지 더 적절한 제스쳐를 함께하면 도움이 되더군요.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
백인들의 눈으로 봤을 때 그저 미개하기만 인디언들도 이미 집단지성의 힘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지도방법은 인디언 격언에서 지향하고 있는 바와 일치하네요.
저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내년에 동학년 학생이름을 전부 외울 생각입니다.
그리고 동학년 선생님들께도 동참을 권유할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복도에서 뛰어가는 아이에게 "야~ 뛰지 마"라고 하는 것보다 "xx야, 걸어가자"가 효과적이니까요.
선생님 말씀처럼 함께 힘내요.
*윗글에 대한 저의 댓글 :저도 내년에는 동학년 이름부터 시작해서 적어도 고학년은, 저중학년에서 어려움 겪는 친구들 이름은 모두 외우려구요. 지금은 전교생 1000명 중에서 250명 정도는 이름을 외우고 있네요. '야, 너'가 아닌 '00야~'라는 이름부르기가 아이와 저와의 관계를 좋게 만드니까요. 애들끼리도 이름부르기를 시켜봤는데, 쑥스러운지 잘 안되네요. 계속 해봐야죠~
*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이를 '동료성'이라고 부릅니다. 혁신의 출발은 개인의 성찰과 같은 공간의 교사들이 함께 동료성을 일굴 때 비로서 첫 단추를 끼우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과 선생님 학교의 노력은 말 그대로 교육적인 행위라고 봅니다.
교육을 앞세워 얼마나 많은 폭력을 아이들에게 자행합니까...
이 사회를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지요.
그 안에서 저도 자유로울 수 없구요.-_-
멋진 분이 인성 부장을 맡고 계시네요.
*선배님의 의견처럼 저도 고위기 학생들은 학급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카페에 글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연구하셔서 저희들 및 동료교사를 위한 사례집으로 엮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결국 시스템으로 아이들을 관리해야 하나 우리 교육은 아직도 20세기 초반에 머물러 있으니..--
*와.. 출력해서 두고두고 읽어야겠어요... 시스템개선이 시급합니다..
*확실한 통제수단이 없는 대화법 적용은 아이들의 만용을 키웁니다. 이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돕니다.저는 무조건 억제, 통제가 아니라 하지말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진실한 대화를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아이들만 이해하고 노력합니다. 대다수는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아도 '확실한 통제 수단'이 없으면 고치지 못하더군요. 좀더 다양한 사례와 구체적인 해결법이 있다면 공유했으면 좋겠네요.
*경험이 담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참고 되었습니다!
기왕 하시는 거 전초협하나 만드셔야겠네요.
전국 초등학교 교사 협동조합
전초협. ㅋ
오세님이랑 뭐가 통하는구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을 얼마전부터 품고
방학중에 힘좀 내서 조직을 하려고 합니다.
전교조나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 운영자들에게 도움좀 받고, 구조론 식구들의 조언 좀 받겠습니다.
나는 지금 열린학교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소.
언제 모이면 이 모델에 관해 함께 얘기나눠보면 좋겠소.
예. 아마 대안학교들에는 동료교사간의 협력적인 문제행동 해결법,
단계적인 문제행동 메뉴얼이 잘 통하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협력적 문제해결법은 비폭력대화,교사역할훈련,감정코칭과 같은 공감, 관계지향 대화법이 동반되면 효과가 매우 큽니다.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 동렬님이 말하는 닫힌 교실에서
넓은 세상으로 눈을 열어주고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것을 통해 내안의 참된 이상을 갖게 된다면
협력적 문제해결이니 대화법이니 하는 것은 문제해결지향보다 인류 진보지향의 교육방향에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존엄을 교양하는 세력이 나와주는구려^^
*선생님의 노고가 깊이 느껴집니다. 문제 학생에 대하여 단선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학부모, 담임, 관련 학생들 모두에게 심도 있는 접근을 요청하고 있기에 어렵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매우 광범위한 사례의 연속일 수 있기에 교사의 중요한 일일 수 있지만 확실한 대안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인정하다시피 문제 학생의 대응 정도에 따라 교사가 개입하는 선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건과 상황이 잘 맞아서 관계가 개선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또다른 사건이 터질까 조심조심하는 상황이라면 행동통제 차원에서 지능적으로 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교육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교사의 학생에 대한 행동엔 교육 외로도 사회화, 교조화, 행동통제, 심리치료, 폭력, 약물통제 등 매우 다양합니다. 선생님의 경우 대화법을 통해 심리치료나 행동통제를 지향하시는듯 합니다. 구체적인 정황을 알 수 없다면 "교육"이라고 단언하기 어렵기에 보다 사실적인 언어사용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추구해야합니다.
목적하는 바가 행동통제라면 대화법의 과정도 좋지만, 남자 교사의 경우 힘을 과시하여 믿음과 폭력의 양면을 노출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가령 문제가 있는 경우 손이 얼얼할 정도로 약간 세게 악수를 하면서 '내가 너를 믿고 있으니 더욱 노력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폭력이 아니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폭력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화법 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동통제 방법을 생각하셔서 상황마다 효과를 노리시기 바랍니다. 사실 경험 많은 선생님들은 행동통제에 관하여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는 저 역시 경이롭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음에 얘기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