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과 접근방법이 다르지만 여러가지로 유사한 점이 있네요.
우주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즉 비국소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구조론은 우주가 개구리알의 세포분열과 같다고 봅니다.
개구리알은 한 개의 세포인데 분열해서 여러 개의 세포가 됩니다.
달걀도 한 개의 세포인데 타조알이 지구에서 가장 큰 세포가 되겠지요.
세포분열을 계속해서 세포의 수가 1조개가 되어도 여전히 하나라는 말입니다.
개구리알이 작에서 세포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1미리라면 혹은 1센티라도 무방함
세포의 수가 1조개라면, 혹은 1천억개든 1백개든 숫자는 무시.
세포 한 개의 사이즈가 작아졌을 뿐 전체의 크기는 여전히 같습니다.
이를 뒤집어진 귤껍질 이론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귤 컵질에 붙어 사는 존재라고 치고 귤 껍질을 뒤집어버리면 어떨까?
우주는 무한히 크지만 동시에 유한히 큰 것입니다.
개구리알 세포 숫자가 100조개로 늘어났다 치고
빅뱅 이후 우주의 크기가 100억광년에 이르렀다 치고
여전히 우주는 조금도 커지지 않았으며 개구리알은 커지지 않았고
뒤집어진 귤껍질은 안쪽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우주의 한 지점에서 무한히 같다면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이 말은 크기를 부정하는 것이며 즉 우주 안에 크기라는 것은 없고
우리가 크기라고 부르는 것은 상호작용을 말하는 것이며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어디에 있든 둘의 거리는 0입니다.
국소성을 부정한다는 말이지요.
우주는 크기가 없다. 공간은 위치가 없다.
크기나 위치는 상호작용할 때 수학적으로 도출된다.
우주의 동쪽 끝에서 맞은편까지의 거리는 1밀리다. 혹은 0밀리라도 좋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무한한 거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우주 안에서 움직일 때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숫자를 의미한다.
우주의 실제 크기는 0이지만 이쪽 끝에서 저쪽 끝가지 가려면 무한에 가깝게 상호작용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되는가 하면
구조론은 근본 방향이 밖에서 안이므로
밖이 안보다 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어떤 중심점이 있다면 그 점의 크기는 0입니다.
왜냐하면 점이니까.
그런데 우주가 뒤집어져 있다면 그 점의 크기가 우주의 바깥 사이즈입니다.
우주가 고무풍선이라면 그 풍선의 크기라는 말이지요.
고무풍선 안에 상호작용이라는 바람을 집어넣으면 커보이지만
상호작용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커보이는 것이고 풍선은 그대로 풍선입니다.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우주의 최초 크기가 1밀리라면 지금도 여전히 1밀리이며
우주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0 혹은 1입니다.
1은 상호작용의 횟수를 나타냅니다.
즉 바람이 든 풍선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으로 가되
풍선 내부를 통과하여 간다면 풍선 안의 무수한 공기와 상호작용해야 하며
초당 한개씩 100조개의 공기입자와 상호작용하면 걸리는 시간은 100조 초가 됩니다.
모든 거리는 상호작용 횟수일 뿐.
그런데 풍선 표면의 고무를 타고 간다면 걸리는 시간은 1입니다.
왜냐하면 중간의 무수한 공기입자와 상호작용하지 않으니까.
즉 우주의 크기는 1이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렇지 않다면 우주는 각자 따로 놀아서 지탱할 수 없습니다.
우주가 집이라면 왜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을까?
한자로는 집우 집주로 우주는 집인데 왜 건축된 우주는 붕괴되지 않을까?
우주는 우주 밖으로 1밀리도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라면을 오래 두면 불어서 면발이 굵어집니다.
우주는 퉁퉁 부어 있다는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