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이재명 그리고 이명박 민주주의는 외부 환경변화에 맞대응하여 집단 내부에 질서를 갖춘 새로운 다수가 내부질서가 소멸된 낡은 다수를 밀어내는 절차다. 인간은 환경을 바꾸고 환경은 다시 인간을 바꾼다. 인간이 먼저 산업화로 환경을 바꾸었고 그 변화된 환경이 다시 인간의 정치시스템을 바꾼다. 4차산업혁명시대다. 환경이 변했다. 그러므로 인간도 변해야 한다. 드론이니 VR이니 3D프린터니 AI니 무인운전이니 로봇이니 말이 많지만 이렇듯 주워섬기면 귀납의 오류이고 연역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은 한마디로 플랫폼의 등장이다. 근간 아마존의 득세가 플랫폼의 의미다. 3차 산업혁명이 김대중, 노무현 10년을 열었다. 컴퓨터다. 만화가들도 누군가의 문하생이 되어 도제식 수업을 받는 일이 없어졌다. 그러나 조석도 네이버 웹툰의 지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은 플랫폼의 등장이며 조석이 네이버에서 완전히 독립하게 되는 것이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다. 환경이 변하면 그 변화된 환경에 맞대응한다. 그 과정에 집단 내부에 질서가 만들어진다.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면 마치 원심분리기처럼 질량의 순서대로 정렬된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러한 내부질서가 있고 조중동과 한경오에게는 그 질서가 없다. 콩가루다. 구세력도 처음에는 내부질서가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없어졌다. 엔트로피의 원리다. 무질서도의 증가로 계가 균일화되는 거다. 어떤 집단이든 새로 떠오르는 집단은 내부에 강력한 질서를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조선왕조 초기에 신진사대부 세력의 대두라도 그러하다. 60년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쿠데타 세력의 대두라도 그러하다. 중국에서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했다. 먼저 성리학을 배운 사람은 잘 알고 늦게 입문한 사람은 잘 모른다. 실력차가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적고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많으니 자연히 질서가 만들어진다. 후배는 선배를 존중하고 선배는 후배를 이용한다. 율곡과 퇴계는 높다. 선비들은 율곡과 퇴계를 존중한다. 율곡과 퇴계는 자신의 학문을 전파해 줄 후배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잠시 그러할 뿐이다. 그 바람이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 인맥과 연고와 패거리만 남는다. 이제는 다들 성리학을 익혀서 저잘났다고 떠들어대니 고만고만해졌다. 후배인 정여립이 스승뻘인 율곡을 씹어돌려도 말리는 자가 없게 되었다. 참담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학문의 기상은 사라지고 벼슬자리 욕심만 남았다. 원래 그렇게 된다. 좋은 것도 오래가지 않는 거다. 박정희 일당의 쿠데타도 그렇다. 처음에는 군인집단 내부에 질서가 있다. 20년 세월이 흐르자 질서가 사라진다. 34년생 차지철이 박정희 고향후배인 26년생 김재규와 맞먹으려고 한다. 망조가 들었다. 필자가 친문 전해철보다 비문 이재명을 미는 이유도 그러하다. 답은 질서다. 3철이 북콘서트니 뭐니 하며 정치인들을 죄다 끌어모아 세과시 하며 민주당 내부질서를 깨뜨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서출신은 말하자면 음서다. 호가호위다. 북콘서트에 모인 집단은 문재인 호랑이가 아닌 양정철 여우를 보고 온 것이다. 누가 실세인지 냄새 맡으려고.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정승집 개가 동물 개를 말하는게 아니다. 음서다. 빽으로 들어온 음서가 과거시험으로 들어온 양반을 이기면 하극상이다. 정두언이 이상득에게 밀리는 것도 그렇다. 이상득은 동생 빽으로 들어왔는데 그게 말하자면 음서다. 정두언은 이명박의 혁명동지다. 아니 사기꾼 동업자라고 해야 하나? 어디가나 그 바닥의 질서가 있는 법이다. 그 질서가 깨지는 순간 조직은 이미 망해있다. 이상득이 정두언을 쳤을 때 이명박은 정치적으로 죽어 있었다. 정치의 본질은 산업환경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사회에 제안하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면 에너지가 바뀌고 에너지가 바뀌면 질서가 바뀐다. 돈의 질서를 주장하는 집단은 보수다. 지식의 질서를 주장하는 집단은 진보다. 에너지의 질서를 주장하는 세력은 노무현그룹이다. 이명박도 어느 면에서는 노무현이 만든 에너지 질서의 연장선상에 있다. 노무현의 에너지 질서와 이명박의 돈 질서가 손을 잡으면 모양이 좋지 않겠는가? 2007년의 아둔한 한국인들 생각이었다. 대중은 자유분방한 이명박이 시스템을 갖춘 노무현을 계승하면 된다고 믿었다. 노무현의 원칙에 이명박의 융통성을 더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착각이다. 결이 달라서 안 된다. 에너지는 결이 있다. 결이 다르면 에너지의 방향이 바뀐다. 노무현은 시스템을 존중한다. 이명박은 시스템을 불신한다. 이명박은 상고출신에 장사하며 자란 사람이다. 장사를 하다보니 공무원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가 시스템을 불신하게 되었다. 트럼프도 비슷하다. 언론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엘리트시스템과 싸우고 있다. 낡은 시스템을 깨고 SNS시대에 맞는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키려 한다. 트럼프가 아베를 싫어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아베가 연극을 하기 때문이다. 아베 뒤에는 독특한 장로제 일본식 시스템이 있다. 아베나 시진핑이나 집단 내부에서 정해진 대본대로 연기할 뿐 본인이 결단하지 않는다. 아베와 시진핑의 그런 수작은 눈치 빠른 트럼프에게 금방 들킨다.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문재인과 다르다. 문재인은 트럼프와 정보를 공유하므로 뒤로 시스템을 돌릴 수 없다. 필자가 문정인을 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문정인이 떠들면 트럼프는 문재인이 몰래 시스템을 돌린다고 여긴다. 반칙이잖아. 문재인이 내게는 허위정보를 주고 고급정보는 문정인에게만 따로 준다고? 큰일난다. 매티스가 어떻고 볼턴이 어떻고 하며 언론이 떠들지만 트럼프의 원칙은 하나다. 트럼프 패스 하면 죽는다. 뒤로 정보를 돌리면 죽는다. 자기들끼리 구수회의 하면 죽는다. 뒤로 자민당 장로회의 돌리는 아베는 당연히 죽는다. 뒤로 공산당 원로회의 돌리는 시진핑도 당연히 죽는다. 정보를 공유하는 자가 우리편이고 정보를 뒤로 돌리는 자가 적이다. 문재인과 트럼프와 김정은이 배짱이 맞다고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유교는 원래 리더가 결단을 하므로 뒤로 시스템을 돌리지 않는다. 임진왜란 영화를 봐도 일본은 장수들끼리 회의 하지만 이순신은 안 한다. 한국인 특유의 유교주의 리더십이 트럼프와 맞는 것이다. 혼네를 감추고 다테마에를 내세우는게 일본인들이다. 후흑학을 연마하여 본심을 감추는게 중국인이다. 일본인과 중국인은 공통적으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뒤로 시스템을 돌린다. 그러다가 트럼프에게 찍히는 것이다. 노무현은 정보를 공유하는 공개시스템을 제안했고 문재인은 그 시스템을 완성했다. 3차산업혁명에 4차산업혁명이 따라가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컴퓨터가 나오면 자연히 AI가 나오고 온라인 쇼핑몰이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플랫폼이 등장하게 되어 있다. 이는 자연법칙이다. 그러나 이명박 시스템은 실패다. 시스템을 싫어하는 자가 시스템을 건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명박도 자기 부하들과 짜고치는 가신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김백준들의 배신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장로제 비슷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긴 했다. 그러나 역주행이다. 4차산업혁명의 본질인 정보공유와 맞지 않다. 정보 뒤로 빼돌리기가 이명박 시스템이다. 인간은 인물을 찍는게 아니라 사실은 그 인물이 대표하는 시스템을 선택하는 것이다. 정책이니 뭐니 하는건 개소리고 복제가 가능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중요한 거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덫에 갇혀 있던 비엘리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민중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끌어냈다. 그냥 선동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질서가 잡혀야 한다. 바보 유시민은 워낙 머리가 나빠서 노무현이 시스템을 제안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인간적인 매력으로 착각했다. 노무현이 너무 잘생겨서(?) 대중이 노무현의 알 수 없는 어떤 매력에 흠뻑 빠졌다는 식이다. 미친 새끼다. 386 정치인들이 맞담배를 피우며 노무현과 토론한다는 말이 나와서 나름 내부질서가 갖추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희정이 정여립이었다. 질서가 진짜다. 진짜 질서는 문재인과 지지자들의 역할분담으로 완성된다. 그 질서는 플랫폼의 등장이다. 4차산업혁명이 플랫폼의 등장이듯이 문재인도 플랫폼이다. 노무현은 플랫폼을 제안했으나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다. 플랫폼이라야 민중이 집단 안에서 각자 자기 역할을 얻어내는 것이다. 노무현을 죽인 자들은 비엘리트가 주제넘게 엘리트 영역에 들어와 있다고 화를 내고 텃세를 부린 쓰레기 지식인이다. 조중동 지역주의 세력과 한경오 엘리트 세력이 양쪽에서 협공했다. 그들은 몰랐던 것이 바로 노무현의 공백이라는 특이점이다. 문재인 쓰나미에 쓸려나갔다. 노무현이 열차라면 문재인은 기차역이다. 비로소 완전해졌다. 노무현이라는 열차가 사라지자 문재인이라는 기차역이 보였고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 열차를 알아서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강력해졌다. 에너지는 자체의 방향성을 갖고 있으므로 스스로 진화해 가는 법이다. 천하에 큰 사건을 일으켜 에너지를 끌어내는 사람이 진짜다. 노무현이 사건을 일으켰고 문재인이 수습했다. 노무현이 에너지를 끌어냈고 문재인이 운전한다. 노무현이 열차를 발명하자 문재인이 철도를 깔았다. 한국인들은 4차산업혁명에 있어서는우리가 선발대임을 알아챘다. 전해철이 나온다는데 3철은 일단 아웃이다. 비서출신이 지금 나서는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문재인은 노무현이 없을 때 나왔다. 호랑이가 있는데 여우가 나대면 곤란하다. 지자체장이라는건 원래 중앙에 대항하는 성격이 있으므로 중앙과 연고가 없는 독립적인 정치인이라야 한다. 이재명은 보급형 노무현이다. 에너지를 끌어낼 줄 안다. 외곽에 독립적인 정치인을 키워야 판이 안정된다. 안희정처럼 대중에게 아부하는 사람이 위험하다. 이재명처럼 싸움을 걸줄 알아야 진짜다. 싸움을 건다는 것은 대중에게 역할을 나눠주는 것이다. 겸손한 자가 싸움을 건다. 싸움을 중재하겠다며 극중을 주장하는 자가 오만한 자다. 싸움 말리는 역할은 국민의 역할이다. 국민의 역할을 빼앗는다면 반역이다. 안희정과 안철수가 주제넘은 짓을 했다. 의리가 민주당이다. 전해철은 의리없음을 보였다. 비서 안희정을 믿지 못하듯이 전해철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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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그렇군요. 이제야 완전히 납득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며칠 전 전해철이 북콘서트 한답시고 국회의원을 무려 4~50명 불러모아 세를 과시할 때 보기에 썩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임기 1년도 채 안 된 대통령이 버젓이 있는데 외곽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는게 꼴사납다는 걸 모를리가 없을텐데 말입니다.
어째서 사람들이 3철을 그렇게 견제하는지도 이해가 갑니다.
또 제 주위에 제가 머리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을 지지했는데 그 이유도 좀 알겠네요.
지금 트위터에서는 친문을 참칭하는 사람들이 이재명을 어떻게든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떨어뜨리려고 엄청 시끄럽게 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전과 이외에도 인간성 문제, 분노조절장애 문제 등등이 있는데 동렬님 글을 읽으니 그런 건 소소한 문제이고 빅 픽처에서 이재명이 경기도지사가 되어야 하겠네요.
50% 의 점수를 국민여론조사로 한다고 하니 아마도 이재명이 되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트위터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해철도 꽤 지명도가 높지만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지명도에서 넘사벽 차이가 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