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한 가지 욕망이 있다. 그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솔직하게 말해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취미가 된다. 내가 진실을 말하는 이유는 내게 진실을 말하는 특별한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편하게 프레임에 의존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말할 만한 진실 자체가 없는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변화의 원천은 에너지에 있다. 에너지는 감추어져 있다. 표면의 사실 뒤에 이면의 진실이 있다. 그 이면의 진실을 들추는 것이 나의 기술이다. 이면과 표면 사이에 전략과 전술이 있다.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이 있다. 단기전과 장기전, 전면전과 국지전이 있다. 그것을 바둑판의 돌처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진실을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편하게 프레임 뒤에 숨고 진영논리에 의존한다. 진영논리는 극단적일수록 좋다. 시계추는 진보와 보수를 번갈아 오간다. 시간을 끌면 언젠가 한 번은 맞는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고 극단에 서면 50퍼센트 확률로 맞춘다. 10년에 한 번쯤 시류가 맞아떨어지면 기세를 올린다. 김대중 노무현도 10년은 갔고 이명박근혜도 10년 근처까지 갔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극단에 서서 10년만 기다리면 물이 들어온다. 노 저을 수 있다. 중도에 서다가 꿩도 매도 다 놓치고 안철수 되느니 극단이 낫다. 안다는 사람과 기레기들이 극단으로 달려간다. 비열한 짓이다. 그게 패거리에 의지하는 행동이다. 패거리는 소수일 때 내부 상호작용이 긴밀해진다. 사이비 종교와 극단주의 세력과 엘리트들이 인맥놀음과 친목질에 열중하는 이유다. 그들은 열광적인 소수가 되기를 원한다. 독 안에 든 쥐처럼 구석에 몰려 옹기종기 앉아았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인 다수는 가만있었으면 성공했을 사람이다. 오세훈은 가만있었으면 유력한 대선주자다. 천정배도 마찬가지다. 안철수도 마찬가지고 김두관도 비슷한 경우다. 그런데 다들 가만있지를 못하더라.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며 줄을 서다가 망한다. 정치의 진실은 왼쪽도 아니고 오른쪽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다. 주인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바깥에서 온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터지자 우르르 녹색으로 몰려갔다. 미투운동이 터지자 페미니즘으로 몰려간다. 코로나19로 이번에는 공공의료당이 뜰 것인가?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이 뜨자 정치혐오를 떠들다가 마크롱이 뜨자 극중정치를 주장하던 안철수는 또 무엇을 흉내 낼까? 눈에 보이는 것은 진짜가 아니다. 노선이나 정책이나 이념은 진짜가 아니다. 진짜는 에너지를 통제하는 기술이다. 유행을 따라 이쪽으로 저쪽으로 쏠리다가 국민에게 기술없음을 들키는 것이다. 황교안은 친박과 전광훈과 집 나간 이은재와 태극기 세력에 휘둘리는 모습을 들켜서 망한다. 차명진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통제하는 기술이 없어 에너지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억압적으로 통제해도 기술없음을 들킨다. 민주당과 열린민주당이 치고받고 한다면 기술없음을 들키는 것이다. 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조율해내지 못하고 우당탕퉁탕하며 소음을 내는가? 외곽세력에 끌려다녀도 안 되고 억압해도 안 된다. 팀플레이를 성공해야 한다. 공간을 벌리면서도 손발이 맞을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나는 정의당류 진보장사를 경멸한다. 진짜 진보는 정책이나 이념이 아니라 민주주의 기술에 있다. 분배를 어쩌고 복지를 어떻게 하는게 진보는 아니다. 때로는 성장이 최고의 복지일 수도 있다. 돈 나눠주는 것은 허경영도 한다.
에너지의 진보가 진짜다. 어떤 목적지에 도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차를 타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정의든 평등이든 평화든 복지든 행복이든 그것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사람은 후손이다. 그 과정에 차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진짜 진보다. 진짜 진보는 국민의 잠재력을 최대한 동원하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소수자라는 이유로 혹은 피부색을 이유로 동원에서 배제되면 안 된다. 모두 태우고 가는 커다란 대승의 차가 아니면 안 된다. 국민이 정부 정책에 협조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은 차가 스피드를 내기만 하면 금방 따라잡는다. 코로나 사태로 어느 면에서 한국이 북유럽보다 앞서있음이 증명되었다. 10만 명당 병상수도 의료장비도 우리가 더 많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것은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협조하게 만든 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끄러워할 것은 아직도 협조하지 않고 행패를 부리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진보다. 올바른 결정에 국민이 납득하고 승복하고 따라가게 하는 것 말이다. 속도를 낼 수 있는 자발적 동의를 끌어내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보다. 진보가 강조하는 환경이나 페미니즘은 사회가 발전하면 자연히 얻어지게 되는 것이다. 서구가 우리보다 잘하는 것은 원래부터 그들의 문명의 수준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교육수준과 문화적 생산력이 총량에서 압도적이다. 후진국과의 격차가 있다.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문명의 수준이다. 핸들을 잘못 꺾은 것이 아니라 차가 후진 것이다. 산업생산력은 전공이 아니라서 자신 없고 문화생산력은 일단 쉬워 보이므로 진보가 거기에 매몰된다. 그런데 그냥 거짓말이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 산업생산력의 뒷받침 없는 문화생산력은 진보처럼 보이나 진보가 아니다. 차가 경운기 수준인데 핸들을 진보의 가치에 맞춰 잘 꺾는다고 답이 나오는게 아니다. 일단 속도를 내고 핸들은 마지막에 꺾어도 된다. 한국에서 녹색이나 페미니즘이 유럽만큼 먹히지 않는 이유는 생산력에서 그들만큼 안 되기 때문이다. 산업 생산력뿐만 아니라 문화적 생산력에서 격차가 크다. 산업의 생산력은 오히려 서구를 추월할 태세다. 에너지를 이길 수 있는 장사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문화적 생산력은 충분한 여가로 얻어지는데 한국은 노동시간이 세계최장이다. 그 이유는 산업생산력이 낮기 때문이다. 산업생산력을 먼저 끌어올려야 한다. 생산력 향상>생산성 제고>더 많은 여가>더 우수한 문화>녹색과 페미의 순서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책만 떠들면 된다고 우기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이다. 북한이 진보를 떠들지만 진보가 안 되는 이유는 생산력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적으로 생산력이 지배한다. 일부 재벌기업의 선전으로 착시현상이 일어날 뿐 우리의 산업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다. 여가시간은 적고 문화수준은 낮다. 전 국민을 강당에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때린다고 수준이 높아지겠는가? 천만에. 전 국민이 자가용을 굴려야 페미니즘이 먹힌다. 자동차가 대중교통보다 여성에게 더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가용을 굴리며 여성에게 '야 타!' 이러면 실패다.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본질에서 멀다. 생산력이 낮아서 남자직원에게 무리하게 야근을 시킬 의도를 기업이 갖고 있는데서 바탕이 잘못되어 있다. 생산력의 근원은 교육이므로 희망은 있다. 에너지 중심의 사유로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지만 목수가 오전 내내 연장만 벼르더니 오후 짧은 시간에 집을 한 채 뚝딱 지어놨더라고 한다. 마차로 가느냐 경운기로 가느냐 자동차로 가느냐 비행기로 가느냐가 중요하지 목적지가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탈것을 얻은 다음에 목적지는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좋은 탈것이 민주주의다.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너나없이 모두 태우고 갈 수 있는 커다란 차를 만들어야 한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는 진보에서 보수까지 모두 동원해야 한다. 서구가 만든 차는 여기까지다. 우리는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서구보다 더 세련된 민주주의를 보여줬을 때가 국제사회에의 진짜 데뷔다. |
"생산력 향상>생산성 제고>더 많은 여가>더 우수한 문화>녹색과 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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