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장 신이 있다. 답이 있다는 말이다. 인류가 답이 없는 문제를 헛되이 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신의 역할은 존재 그 자체다. 북극성이 인간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북극성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신의 존재 그 자체로 인간의 구원은 완성되었다. 정답은 나왔다. 대본이 나왔다. 이제부터 각자에게 주어진 대본대로 역할 하면 그만이다.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대본이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확률에 달렸고 운명의 갈림길에서 어떻게든 판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신의 존재 의미다. 신이 없다면 옳고 그름이란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럴 때 삶의 일관성이 사라진다. 하던 일을 마저 끝낼 수 없게 된다. 무엇을 판단할 수도 없고 결정할 수도 없다. 길이 있다. 그 길을 가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다만 가려면 그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길은 원래 없다. 가다 보면 결국 그 길로 가게 된다. 모든 길이 그 하나의 길로 합류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다 보면 어차피 그 길로 가게 되는데 길을 알고 가는 자는 편하다. 결국 갈 거면 알고 가기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길이 없다면 그 길을 가는 사람도 없다. 나는 과연 있는가? 주체를 의심해야 한다. 대상이 아닌 주체의 문제다. 길을 가는 동안 나는 존재하고 길을 가지 않을 때 나는 없다.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동지를 만날 때 나는 커지고 명백해진다. 동료와 헤어질 때 나는 작아지고 희미해진다. 나의 권력과 주도권과 의사결정영역이 사라진다. 노예에게도 나의 자아는 존재하는가? 여권도 없고 민증도 없고 친구도 없고 증언해 줄 그 무엇도 없다면 나는 존재하는가? 결정론이 틀린 이유는 주체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데 무엇이 결정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라는 것은 나의 권력이고 주도권이고 의사결정영역이다. 그것은 의사결정의 순간에 도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희미하다. 길이 아닌 곳으로 역주행하면 나는 치여 사라진다. 의사결정은 실패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신을 부정하면서 나의 존재를 믿고 있다면 터무니없는 것이다. 모두가 나의 방해자가 되고 나는 그 방해자들에 치인다. 세상의 편에 들어야 내 존재가 우뚝해진다. 노예는 증언해줄 내 편이 없기 때문에 벌레처럼 존재가 희미한 거다. 내 편이 없고, 내 땅이 없고, 내 권리가 없고, 내게 힘이 없어 의사결정할 수 없다면 나는 없는 것이다. 동료가 있고 역할이 있고 팀이 있기에 내가 있다. 길이 있으므로 그 길을 가는 내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길이 아니라 그냥 발자국들일지 모른다.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나는 투명해진다. 나는 사라진다. 동료도 떠나고 권리도 떠나고 소유도 떠나고 모두가 내게서 등을 돌린다. 길을 가지 않으면서 무언가 해낼 수 없다. 무언가 이룰 수 없다. 무엇을 해내고 이룬다면 그것이 곧 길이다. 길은 다른 길과 합류해 간다. 길은 결국 하나가 된다. 길을 통해서 나는 세상과 연결된다. 상호작용한다. 그것이 신의 의미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루려고 한다면 반드시 다른 것과 충돌한다. 충돌하면 실패한다. 좌절한다. 실패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면 거기에 길은 있는 것이다. 길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는 성공할 수 없다. 지구는 둥글고 세월은 흐르고 인간은 죽든가 아니면 그 길을 가든가뿐이다. 가면 길은 합류되고 더 많은 길이 합류되면 그 길의 끝에 신이 있다. 길을 알고 가면 편하게 간다. 인간의 미래는 세부적으로 낱낱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 산다는 것은 부단한 의사결정을 통하여 그것을 하나하나 확정해 가는 것이다. 점 두 개가 연결되면 선이다. 길은 선이다. 결정론은 점 하나만 갖고 나머지 점이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다. 아니다. 연결되어야 비로소 존재가 있다. 존재는 의사결정에 따른 두 점의 부단한 연결이다. 존재하는 자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그것이 존재다. 존재하는 것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그것이 존재다. 그러므로 결정론은 틀렸다. 결정해야 존재인 것이며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면 존재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것이 존재를 확정해 가는 것이 삶이다. |
내가 걷고 있는 시 공간에서
신과 우주를 연역하며 걸어갈 때
길이 나고.
우리는 동료를 만나며.
삶의 에너지 장에 휩싸인다.
신은 반짝이고 정다웁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있다에서 시작한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게 아니라, 있다에서 있다로 가는 거다.
그게 존재론이다.
"신의 역할은 존재 그 자체다. ~ 신의 존재 그 자체로 인간의 구원은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