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동양인 비하 눈찢기도 마찬가지인데
비하의 의도가 없었다 해도 문제를 제기하면 받아들여야 합니다.
개고기 먹는 사람이 동물학대 의도가 없다고 해도 누가 하지마라고 하면 안하는게 맞습니다.
중요한건 개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가 아니라 그게 문명이냐 야만이냐가 아니라
검찰이 문민통제를 따라야 하듯이 인류는 문명통제를 따라야 합니다.
남녀갈등에도 이런 부분이 많은데
여성들은 탈코르셋 전략과 코르셋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면서 양쪽에서 협공합니다.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유혹하면서 그 유혹에 호응하면 마초라고 공격 들어갑니다.
이런 이중전략에 대해서 정당하지 않다고 항의하면 안 됩니다.
이런 부분은 인류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용해되는 것이며
강자에게 불리하고 약자에게 유리하며
집단은 상호작용 총량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기동하게 되며
상호작용을 늘린 집단이 승리하는 구조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게임은 사회의 약자에게 유리해지며
성소수자, 장애인, 여성, 흑인, 빈자에게 유리해지며
전체적으로 상호작용 총량을 증대시키게 되는데
일부 강자들 곧 부자이며 백인이며 남자이며 이성애자가 가장 피해가 됩니다.
그러나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오히려 공정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게임은 약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강자에게 핸디캡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일부 강자 입장에서 이 게임은 불공정한 것이며
강자에게 강자 대접을 하는게 공정하지 이렇게 나옵니다.
메시는 축구를 너무 잘하므로 메시만 드리블 금지 이건 아니지요.
그런데 문화는 이렇게 갑니다.
문화는 문화 자체의 논리와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상호작용 총량증대 방향으로 기동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옳다 그르다의 도덕문제도 아니고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도 아닙니다.
문화는 문화 자신이 권력을 쥐는 방향으로 편향되게 작동합니다.
원래 에티켓이란게 남자를 엿먹이려고 만든 거에요.
문화라는 것은 애초에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서로에 대해 재갈을 물리고 목줄을 쥐고 통제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상마에게 불리한 게임입니다.
정치의 쪽수논리와 경제의 효율논리와 다른
문화만의 독자적인 논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는 상영가능한 모든 영화에 대해 일단 예매부터 받아 놓고 예매 순위 상위 영화만 재개봉하고 나머지는 환불하는 방식도 가능할 듯...자신의 참여에 따라 재개봉될 수 있는 영화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이 더 참여도를 높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