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무너진 건 영화 친구에도 나오는 거고
2000년대 초반 월드컵 때는 남의 차 위에 올라가서 방방 뛰어도 사람들이 너그러웠는데
2010년대 중반부터는 사람들 눈에 독기가 서리다가
2020년대 부터는 다들 손에 칼을 차고 다니는 느낌임다.
한국의 전성기는 2000~2010년대뿐이고 그 이후는 모두 제로섬 게임을 하는듯.
"이제부터 모두 죽여라"
괜히 한국에서 오징어게임이 나오는 게 아니겠죠.
미국 사람들 왈 "저런 스토리는 한국 사람 머리에서나 가능한 거야".
라이터가 없으면 성냥불이라도;;
저쪽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범죄자들이 좋아하는 것은 국민도 좋아한다라고....'
왠지 이런 시나리오가 어디서 가동 중 일 것이라는 상상이 된다.
용산이전비용은 얼마인가?
자기편에는 모든 것을 쏟아
승진과 세금으로 해결하려고 행태?
용산이전비용은 밝혀라!
그리고 용산에 간 명분은 무엇인가?
다음에 국힘리더가 나오면
또 마음데로 대통령집무실을 아무곳으로 옮길 것인가?
시제 5호
침수된 축사는 폐병을 앓는 자신의 허파를 그린 것이지만 자궁을 가리킬 수 있다. 항문일 수도 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데 묘미가 있다.
이상의 오감도를 관통하는 하나의 코드는 상대성 혹은 거울이다. 이상의 시를 상대성이론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거울 이야기는 이상의 다른 시나 글에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무서운 아해를 거울에 비추면? 무서워 하는 아해가 된다.
무서운 아해에 상대성이론을 적용하면? 무서워 하는 아해가 된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지만 거울에 비추면 거울은 반대편을 가리키므로 뚫린 길이 된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만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면 13인의 아해는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였다.
즉 제 1의 아해와 제 2의 아해~13인의 이해는 거울의 무한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상의 시를 이해하는 본질은 작가와 독자 간의 권력갈등이다.
시인은 독자를 위해 서비스해야 한다. 즉 시인은 하인이고 독자가 왕이다.
원래 시라는 것은 궁정의 어용시인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모든 시는 아첨하는 시다.
이 방면으로 특출한 사람이 롱펠로우다. 인생찬가는 인류에 대한 아첨이다.
전두환의 조국찬가와 비슷하다. 전두환이 조국혁신당에 투표한게 아니다.
전두환이 뜬금없이 조국을 찬양한 이유는 사실은 자기 대머리를 찬양한 것이다.
일해재단을 만들었는데 일해는 바다위로 떠오르는 태양이다.
그것은 전두환의 휘황찬란한 대머리가 한동훈의 가발을 밟아버린다는 뜻이다.
하여간 롱펠로우는 애드거 앨런 포우에게 털렸는데 포우는 갈가마귀가 유명하다.
갈가마귀 느낌이 이상의 오감도와 유사한 점이 포인트
그저 방문객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그것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곳에는 어둠뿐,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이 말뿐, 아무것도 없었다.
까마귀가 가로되, “영영 없으리.”
작가에게 권력이 있는가 독자에게 권력이 있는가? 이것이 이상이 낸 문제다.
인상주의와 유사하다.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에는 돈 내는 사람이 주인이었다.
돈 내는 사람은 귀족이고 귀족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므로 로코코 미술이 유행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로코코 양식은 단번에 짓밟혀서 똥이 되었다.
음악은 베토벤에 의해 작가가 주인이 되었다. 왜? 악보를 출판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왕이 주인이고 악사는 궁정에 출입하며 왕이 시키는대로 연주해야 했다.
작곡가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토벤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인상주의가 등장한 후 권력은 작가에게 넘어갔다. 미술상이나 고객은 뭣도 아니다.
결국 이상을 이해하는 본질은 이 게임에 누가 승자냐다. 권력은 작가에게 있다.
이러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상의 시를 해석할 자격이 없다.
세상이 미친 거지요.
다들 남의 약점을 잡아 갑질하려고
남의 갑질에 관대해진 세상.
자기도 갑질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