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의 남하에 신라와 백제가 연합
2) 수나라의 공격에 고구려 양면전쟁 불가로 신라를 회유
3) 한강유역 신라에 넘기면 백제가 신라를 칠 때 고구려 어부지리
4) 고구려가 신라를 칠 것이라고 여기고 백제 한강유역에서 일단 철수 가야 경영에 집중
5) 고구려 한강 포기하자 백제 왜와 연결하고 가야를 끌어들여 서라벌 직접 공격 전략
6) 고구려가 한강의 김유신 세력을 잡아줄 때 옥천과 보은을 점령하여 경주와 김유신세력의 연결을 끊은 다음
가야의 대야성을 중심으로 경주기습 계획
7) 고구려 신라와 내통으로 김무력 급거남하 성공. 백제 성왕 관산성에서 사망
8) 선덕여왕의 삽질과 의자왕의 복수전으로 백제군 경주 턱밑인 대야성까지 진격
9) 백제와 고구려의 연합에 궁지에 몰린 신라 당나라에 개입 요청
결론.. 신라와 고구려가 내통하여 일어난 물밑에서의 외교전이 감추어져 있다는 말씀.
고구려가 한강을 신라에 내주고 백제와 신라가 싸우게 만들어 어부지리를 꾀한 전략은
수나라, 돌궐의 침략 및 연이은 내란 때문.
고구려의 전략은 거의 성공했고 그 덕분에 수와 당에 맞설 수 있었음.
백제 성왕이 일찍 죽는 바람에 한강을 신라에 맡겨 고구려를 방어하고
가야를 먹어 신라의 배후를 치려는 백제의 계획이 실패한게 변수
백제가 실패한 이유.. 지휘체계가 복잡한 다국적군은 원래 잘 안 됨
백제군 - 성왕의 충청도 직할부대+호남 귀족의 지원군+왜병+가야병
김유신 변수 - 가족이 경주에 인질로 잡혀 있으므로 배신불가
옥천과 보은을 백제가 점령하면 김유신세력 고립되고
신라군의 이동을 합천에서 견제하면 백제의 승산 있었음.
보은의 삼년산성이 왜 그렇게 높아졌는지 알 수 있음
김정은, 다음단계로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