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없지만 희망은 있다. 의미는 없지만 의미는 있다. 에고는 없지만 신은 있다. 내게는 없지만 하나가 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느냐의 실천 문제다. 그래서 나는 제자를 필요로 한다. 이 길을 가겠는가? 이 길을 가는 사람의 세력에 속하겠는가? 희망 없고 의미 없음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리하여 온전한 희망과 의미 그 자체를 발견하겠는가? 그것은 내가 사유화하려는 순간에 사라진다. 희망을 사유화하려는 순간에 희망은 사라진다. 의미를 사유화하려는 순간에 의미는 사라진다. 나의 희망을 찾으려 할 때 희망은 사라진다. 나의 의미를 찾으려는 순간에 의미는 사라진다. 희망도 의미도 없다. 내가 그것을 온전히 버렸을 때 공유되는 희망이 거기에 있고 내가 그것을 온전히 포기했을 때 공유되는 의미는 거기에 있다. 태양은 사유화할 수 없다. 희망은 그런 것이다. 의미는 그런 것이다. 신은 그런 것이다. 나의 구원을 탐하는 순간 구원은 사라지고 없다. 구원 그 자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구원이지 어떤 사람의 구원이 아니다. 신도 있고 희망도 있고 의미도 있고 구원도 있으나 온전히 하나로 있다. 각자 하나씩 할당되지 않고 배당되지 않는다. 쪼개지지 않는 완전체로 있다. 혹자는 내게 의미가 없는데 의미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냐고 따지겠지만 거꾸로 의미가 없는데 없는 그것이 내게 있은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없는 그것이 내게 있다는 것은 결국 없다는 말이다. 있는 그것이 여기에 없다면 저곳에 있다. 누구에겐가 속하여 있으면 의미는 죽고 만다. 사유화된 공유지와 같다. 사유화되면 공유지가 아니다. 의미가 누구에게 점유되면 의미가 아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기에 내가 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길을 가겠는가? 이 세력에 속하겠는가? 걸작은 사유되지 않는다. 모나리자를 소유했다고 말해봤자 의미없다. 보관소의 관리자로 취직했다는 의미다. 가치는 인류가 공유한다. 걸작을 훼손할 수 있지만 인류의 가치총량은 보존된다. 작품을 파괴하면 다른 작품의 가격이 그만큼 올라간다. 걸작의 가격은 수집가들이 가진 돈의 총액과 비례한다. 수집가를 선망하여 쳐다보는 눈빛들에 비례한다. 그것은 언제나 전체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의 희망은 인류의 희망에 연동되고 개인의 의미는 인류의 의미에 연동되고 개인의 구원은 인류의 구원으로 결정된다. 인류에게 과연 희망이 있을까? 인류에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인류는 과연 온전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이야기를 얻으면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원래 인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할 말이 있지만 그 언어는 원래의 것에서 가져온 것이다. |
"그것은 인간의 구원이지 어떤 사람의 구원이 아니다. 신도 있고 희망도 있고 의미도 있고 구원도 있으나 온전히 하나로 있다."
- http://gujoron.com/xe/1176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