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반드시 맞대응이 나온다는 점이다. 정시를 하면 학원만 흥하고 학종을 하면 교사가 사고친다. 상대의 대응이 나오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흥하는데 거기에 흥미를 가지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자가 있다. 핵폭탄만 만들면 된다. 그러다가 수소폭탄 나오고 중성자탄 나오고 핵잠수함 나온다. 끝이 없다. 진짜는 방향성이다. 어떤 목표에 도달하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우위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초격차 전략과 같다. 장군을 멍군으로 받을 수 없다. 원자탄 받고 수소탄, 수소탄 받고 중성자탄 하는 응수가 불가능한 구조가 있다. 상대성의 작동이 멈추는 절대성의 지점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인삼은 더운 성질이고 당신은 찬 성질이다. 이런 식의 헛소리가 본질주의다. 본질은 어쩔 수 없다. 원래 성질이 그런데 어쩌리? 포기하자는 거다. 일본의 민족성은 원래 그렇다는 식이다. 세상은 정보고 정보는 둘이 만나는 방식이 결정한다. 레코드판의 홈과 같다. 그것은 비어 있다. 정보는 존재가 아니라 부재에 기록된다. 우주 안에 변화는 없다. 우주가 팽창한 것은 서로 움직여서 멀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사이에 공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A와 B가 틀어진 것은 그사이에 C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항상 이런 식이다. 본질이 없으므로 본질의 변화도 없다. 본질은 현상을 낳고 현상은 왜곡된다. 현상이 왜곡되므로 본질로 도피하게 된다. 사실은 본질로 도피하므로 현상이 왜곡되는 것이다. 물체가 있으므로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를 지운다고 지워지지 않는다. 광원을 옮기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그림자가 아닌 물체를 보라는 것이 본질주의다. 물체도 그림자도 아닌 빛을 봐야 한다. 진짜는 빛과 피사체와 그림자의 서열이다. 바둑알에 없고 바둑판에 없다. 흑과 백의 상호작용에 있다. 하수는 바둑알만 보고 중수는 바둑판만 본다. 하수는 바둑을 두되 손따라 둔다. 현상에 집착한다. 중수는 포석만 예쁘게 잘한다. 구조주의는 이세돌처럼 둘의 밸런스를 흔드는 것이다. 그것은 더 높은 차원이다. 진정한 답은 따먹은 바둑알에 없고 지어놓은 집의 형태도 아니고 밸런스에 있다. 헛되게 그림자를 쫓아가는 사람은 실패한다. 현상파다. 혼자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은 환경변화에 따라 실패한다. 본질파다. 진정한 것은 너와 나의 경계면에 걸쳐져 있다. 둘을 동시에 아우른다. 그것은 유행을 만들고 트렌드를 선도하고 창의하는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기다. 에너지원을 틀어쥐는 것이다. 현상파는 남이하는 것을 따라하다가 망한다. 배추농사 지으면 가격폭락 망한다. 마늘농사 지으면 가격폭락 망한다. 본질파는 묵묵히 한우물만 파다가 일본처럼 망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옛날에 하던 농사 고집하다가 망한다. 디지털카메라 만들다가 소니처럼 망한다. 진짜는 종자를 공급하는 자다. 그들은 망하지 않는다. |
"진정한 것은 너와 나의 경계면에 걸쳐져 있다. 둘을 동시에 아우른다. 그것은 유행을 만들고 트렌드를 선도하고 창의하는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에너지원을 틀어 쥐는 것이다."
- http://gujoron.com/xe/1146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