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냐 나무냐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어리석은 논쟁입니다.
풀이냐 나무냐는 원래 구분이 없고
1년생은 풀, 다년생은 나무인 거지요.
대나무는 형성층이 없으므로 풀이라는 둥 하며
억지 근거를 대는 사람도 있는데
원래 언어의 명명은 인간의 용도 기준이지
대상 자체에 내재한 논리가 아닙니다.
바나나나 대나무처럼 애매한 것도 있는데
나무도 속은 죽어 있고 다년생도 사실은 1년생입니다.
대나무는 50년씩 살지만 9년이 지나면
사실 사망상태라 영양활동이 마이너스입니다.
9년이 지난 대나무는 베어주는게 좋습니다.
과일과 채소의 엄격한 구분은 무의미하고
열매가 단맛이 나면 과일이고 쓴맛이 나는 오이는 채소입니다.
열매를 먹으면 과일이고 반찬을 만들면 채소입니다.
인간의 용도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언어가 원래 그 기준이기 때문에.
토마토를 생으로 먹으면 과일이고 케찹을 만들면 채소입니다.
엄격한 과학적 구분은 무의미하고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과일안주냐 채소안주냐?
나무에서 수확한 것만 과일이라는 것은 편협한 태도입니다.
그런 주장을 고집하는 사람은 성격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수박껍질로 절임을 만들면 채소입니다.
나무로 귀틀집을 짓는 틀을 짜는데 쓰는 재목은 트리tree가 되고
불을 붙이는데 쓰이는 불쏘시개는 부시bush가 되듯이
언어는 인간의 용도를 따라갈 뿐 대상 자체의 속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물은 물렁해서 물이고 진흙은 신발에 묻어서 머드mud이고
이런 것은 인간중심적 분류인데 우리가 한자를 쓰다보니
한자는 조어의 편의에 따라 더 과학적 분석에 따른 명명이 가능하므로
언어가 대상 자체에 내재한 과학적 속성을 따른다는 잘못된 믿음이 생겨나서
각종 민간어원설이 생겨나게 된 거지요.
민간어원설은 대부분 설득력이 있는데 그 이유는 과학적 분석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명명은 전혀 과학적이지가 않습니다.
원시인이 과학을 알긴 개뿔 그런거 없잖아요.
언어는 합의하기 쉬운 것이고 그것은 단순한 것입니다.
설득력이 있는, 아귀가 맞는, 논리적인, 과학적인 것은 가짜입니다.
풀, 나무, 과일, 채소 등 단어들의 정의 자체가 애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