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180 vote 0 2023.11.12 (12:35:59)

    인간의 문제는 이겨먹으려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의사결정할 수 있는 상태 안에 머무르려고 한다. 그러려면 방해자를 제거해야 한다. 상대를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자신을 이겨야 한다. 그러다가 본래의 목적인 의사결정은 잊어버리고 오로지 이기려고만 한다. 비뚤어지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하려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돌아가는 판도 전체를 장악해야 한다. 힘이 받쳐줘야 한다. 권력을 틀어쥐어야 한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서로 연동되어야 한다. 톱니가 맞물려야 한다. 도구를 손에 쥐어야 한다. 정보가 전달되는 라인에 머물러야 한다. 긴장이 유지되어야 한다.


    자동차는 시동이 걸려 있어야 한다. 개는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에 가 있으려고 한다. 말은 달릴 수 있는 상태라야 한다. 사람은 의사결정할 수 있는 상태라야 한다. 설령 그것이 가짜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척해야 대접받는다. 다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연기를 한다.


    플러스 A가 있어야 한다. 내 카드를 손에 쥐려고 한다. 필살기가 있어야 한다. 허전한 상태로는 곤란하다. 빈손으로 있을 수는 없다. 다들 헬창이 되고, 캣맘이 되고, 비건이 되고, 결벽증이 되고, 강박증이 되고, 괴력난신에, 초능력에, 환빠에, 사차원에, 지구평면설에 아낌없이 삽질을 한다.


    상대가 잘난 척하며 맨스플레인을 시도하면 나도 맞장을 떠야 한다. '혹시 환빠에 관심 있으세요?' 하고 맞불을 질러야 한다. 가스라이팅을 당하지 않으려면 가스라이팅을 해야 한다. 맞대응 해야 한다. 기싸움에 밀리지 말아야 한다. 패거리를 모아야 한다. 종교와 주술과 뻘짓이 필요하다.


    문신을 하고, 신체변형을 하고, 변발을 한다. 무르시족은 입술에 접시를 끼우고, 카렌족은 목에 링을 끼우고, 조에족은 뽀뚜루를 해야 한다. 코르셋을 차고 전족을 한다. 차별의 표지를 부착하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증오와 혐오와 복수와 죽이기와 맞대응이 판치는 저질정치가 되었다.


    바람이 분다. 파도가 친다. 가만있으면 휩쓸린다. 떠내려간다. 기세에 휘말린다. 흐름에 말려든다. 분위기에 속는다. 중심 잡으려면 지푸라기를 잡아야 한다. 깨진 기왓장이라도 주워서 명품이라며 허리에 차고 있어야 한다. 다들 지푸라기와 기왓조각을 하나씩 주워 신주단지로 모신다.


    옛날부터 인간들은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거짓 표지를 버리고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으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 이름이 붙은 것은 모두 가짜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라. 유일신 신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가리키는 본질은 잊어버리고 흉내만 내고 있다.


    인간은 계몽되어야 한다. 인문주의로 돌아가야 한다. 지식과 시스템에 대한 존중이라야 한다. 변두리즘을 극복해야 한다. 80억 시장으로 커진 만큼 주변부로 떠밀린다. 변방의 작은 존재가 된다. 근원과 연결하는 라인을 잊어버렸다. 동력원과 연결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공지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44155
공지 신라 금관의 비밀 image 7 김동렬 2024-06-12 34365
345 지적설계론과 구조론 image 6 김동렬 2012-05-23 17152
344 부산일보 손문상화백 만평 image 김동렬 2002-12-12 17156
343 마지막 말 김동렬 2007-08-30 17162
342 얼굴보고 반한다는건 허튼소리(마광수의 경우) 2005-08-16 17168
341 “김두관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김동렬 2005-03-22 17169
340 화두란 무엇인가? 4 김동렬 2010-08-10 17203
339 부족민의 화물교 신앙 김동렬 2010-09-08 17203
338 삼류사랑 진짜사랑 5 김동렬 2009-02-10 17217
337 이제까지의 글 중에서 탱글이 2002-12-01 17226
336 그림 image 김동렬 2011-07-11 17234
335 펀 혈액형별 성격 김동렬 2003-05-09 17236
334 美, 로마와 놀라울 만큼 닮았다 김동렬 2002-09-24 17238
333 123457 image 김동렬 2011-10-07 17242
332 후세인동상 철거장면은 헐리우드의 속임수? image 김동렬 2003-04-11 17244
331 재검표하면 이 무슨 개망신이람. 영호 2002-12-24 17276
330 Re..돌이킬 수 없는 강을 가볍게 건나가는 회창 김동렬 2002-09-29 17287
329 Re.. 인터넷백과사전을 이용하시지요. 김동렬 2002-12-24 17289
328 지단의 고독 김동렬 2006-07-12 17299
327 정몽준캠프의 개그콘서트식 민주주의 image 김동렬 2002-11-06 17315
326 만남과 헤어짐 김동렬 2007-11-06 17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