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2021.04.12.
위의 기사와는 종교를 보면서 느낀점입니다.
한국에서 교회가 가톨릭보다 문제가 더 많은 것은
가톨릭은 중앙에서 관리가 되고 교회는 중앙교단없이 중구난방으로 생기기 때문에
이단논쟁, 여신도 성폭행문제, 휴거 등 사이비 논쟁이 많다.
가톨릭이나 교회는 서구유럽의 정신세계가 한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로마교회 가톨릭 즉 구교에 대한 종교개혁으로 신교, 교회가 생겨났다.
교회는 가톨릭에 대한 반대정책으로 신부독신에 반발하여
신부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이름은 목사로 하고
중앙의 통제하는 가톨릭에 반대하여 목사중심으로 움직인 것이 종교개혁이다.
가톨릭은 교육, 의료사업, 빈민구제(?) 등을 하고 교회도 이러한 사업을 하나
종교의 부작용은 개혁을 신교 즉 교회가 구교 즉 가톨릭보다 심하다.
그러니까 개혁을 하면 꽃길이 내 앞에 펼쳐져서 뭐든 좋은 것이 올 것 같지만
종교개혁의 부작용만 봐도 개혁이 꼭 좋은 것만 가져다 주지 않는다.
개혁은 새로운 세상과 함께 새로운 문제도 같이 세상에 던져준다.
그러나 개혁해야 하는 이유는 개혁하지 않으면 그동안 유지되었던 구체제가
더이상 미래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고
개혁하지 않으면 구태의연한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이상 통하지 않는 과거의 방법을 가지고 미래로 갈 수 없기 때문에
피를 흘리더라도 개혁을 하는 것이다.
그 개혁의 과실을 내가 따먹지 않더라도 말이다.
뒤에 오는 사람은 앞에 간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보고 힘을 낸다.
우리가 힘든 상황을 견디는 것은 식민시절에 변절하여 잘먹고 잘산
친일파를 보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계 160위밖의 나라가 제10안에 드는 나라의 식민지상황에서
감히 독립을 꿈꾸고 죽음을 불사하고 그것을 실현시키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독립운동가를 보고 버티는 것이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굴복한 친일파를 보고
우리가 힘든상황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저항한 독립운동가를 보고
후세는 힘든상황을 견디며 저항하며 살아내는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저항이 없었다면 지금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었을까?
기득권이 저항이 무섭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백기를 들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뭘 보고 느끼겠는가?
그럼에도 불고하고 앞으로 가야한다.
뒤에 오는 사람에 이정표를 남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이어받아 다음 길을 간다.
개혁의 성과가 나한테 오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의 영토안에 이익이면
그것으로 만족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