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워야
겨우 나라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데
좋은 조총을 써먹어보지도 않고 청에 투항해서
한 번 방향이 잘못되면 이후 되물릴 수 없는 자동항해
쭉 미끄러져 버립니다.
인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임금과 신하의 신뢰가 한 번 깨지면 끝난 겁니다.
인조가 실권도 없이 촌놈이 얼떨결에 왕이 되어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실질권력을 장악할 수 없다는 거지요.
백성이 임금취급도 하지 않고 신하가 말을 들어먹지도 않습니다.
그 결과가 병사들이 데모를 한 남한산성에서의 추태지요.
홍타이지는 전염병 때문에 급하게 회군해야 했는데 버티지 못한 것.
우리나라에 조선을 망친 광해군과 정조를 비판하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역사책을 읽지도 않고 아는 척하는 거지요.
청이 세계를 먹을 수 있었던 근본은
몽골의 쿠빌라이가 중국을 찾아온 고려의 왕자 원종에 의해 패권을 쥐었듯이
조선을 먹는 자가 천하를 먹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 내부의 적, 청나라와 동맹한 몽골세력이 눈치를 보다가
도르곤이 조선을 먹자 대세가 결정났다고 가담해 들어온 거지요.
그때만 해도 누르하치가 만리장성을 넘지 못했는데
원숭환이 모문룡을 죽이고 이자성이 북경을 범하고
중국이 개판되어 갑자기 청이 득세한 것이며
이러한 전개의 첫 단추는 광해군의 백기투항입니다.
조총이냐 홍이포냐 하는 대결에서
청이 갑자기 두 가지 무기를 동시에 손에 넣은 것이고
조총과 홍이포를 가진 청을 막을 자는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원래 셋이 싸울 때 한 편이 적의 뒤에서 발목만 잡아줘도 천군만마입니다.
위촉오 중에서 촉은 위의 1/10도 안 되지만 우리는 보통 3할 쳐주잖아요.
고려와 송과 요의 대결에서 고려는 당당하게 3할을 챙긴 겁니다.
꼼수나 요행수를 바라고 적의 자비를 기대하며 약한 모습을 보일 때
상대는 만만히 보고 거침없이 공격이 들어옵니다.
정치는 애들 장난이 아닌 겁니다.
백만의 희생을 각오해야 국체를 보존할 수 있는데
적당히 타협해서 백성을 살리자는 식으로 가면 다 죽습니다.
청은 변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인 500만을 학살했습니다.
모든 것은 신하를 믿지 못하는 광해군의 의심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군대를 주면 보나마나 위화도회군을 할 텐데 하며
문관에게 적은 숫자의 군대를 쥐어 보내서 대충 싸우는 시늉이나 하고 와라.
의심병 광해군이 위화도 회군을 겁내서 조선을 망친 거지요.
광해군은 궁궐에 귀신이 산다며 궁궐을 옮기고
여러 가지 소동을 벌였는데 사실은 자객을 무서워한 것입니다.
이런 짓을 하니 백성이 왕을 우습게 알고
왕은 전전긍긍하며 적에게 항복할 궁리나 하는 것.
광해군이 대군을 동원하고 무장에게 전권을 주면
외교적으로 고립된 청은 내분을 일으켰을 것이 뻔하고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에 몽골세력까지 구조가 복잡해서
불과 기천 명의 적은 병력으로 일어난 누르하치는 망할 위기가 수도 없이 있었는데
천운이 따라서 천하를 먹은 것이며 그 첫 번째 천운은
당시 중국에서 과대평가하던 조선이 청에 백기투항한 사실입니다.
주원장이 걸핏하면 조선이 강병 20만으로 중국을 침략한다고 떠들었던데서 보듯이
고구려가 수와 당을 격파하고 고려가 거란을 격파하고
몽골이 고려에 의지하여 외교술을 구사한 이래로
조선이 과대평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단한 조선이 한 줌도 안되는 여진족에게 항복하다니 믿을 수 없는 전개지요.
고려 송 금이 솥발처럼 버텨서 균형을 유지하듯이
조선 여진 명이 삼각구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쪽 축이 무너지면 이후는 뻔한 것입니다.
위화도 회군을 겁내는 개새끼 하나가 역사를 망쳤습니다.
맹장이 당시 세력이 약했던 후금과 맞서 이기고
그 장수가 광해군의 목을 치고 새 왕조를 열어야 정답입니다.
물론 그 경우도 광해군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지요.
와... 소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