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938 vote 0 2019.11.27 (11:40:56)

      

    https://news.v.daum.net/v/20191127091421440


    과학이라고 써놨지만 아무 근거없이 떠드는 것이다. 유사과학이다. 과거에는 잔다르크가 가짜라는 설이 우세했다. 근거는? 없다. 보수파들이 애국놀음에 써먹을 의도로 잔다르크를 띄우니까 진보가 싫어한 것이다. 10대 소녀가 무슨 군사전략을 알겠냐? 말이나 돼? 이런 식이다. 그러나 학계의 연구성과가 축적되자 진실이 드러났다.


    10대 소녀도 멋전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감각적 기동이 적의 의표를 찌를 수 있다. 이세돌이 은퇴 기자회견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묘수는 감각적 판단에서 나온다고. 둘 중에서 어느 수가 좋은지 선택을 해야하는데 그걸 두고도 60수, 70수를 더 두어야 결론이 나는데 감각을 믿어야지 어떻게 답을 미리 알겠냐고. 구조론도 감각이다.


    알파고를 이긴 문제의 수도 감각적으로 둔 꼼수였는데 알파고가 당한 것은 일종의 버그라고. 알파고에 그런 버그가 있는지 이세돌이 어떻게 알어? 그런데 컴퓨터의 알고리즘 한계에 따라 왠지 그런 버그가 있을 것 같다는 감각적 판단을 따른 것이다. 계몽주의는 뭐든 말을 그럴듯하게 갖다 맞추려고 한다. 스토리를 쓰는게 위험하다.


    사막에서 가장 많은 사망원인은 무엇일까? 익사다. 사막에서 물에 빠져 죽는다고? 그렇다. 사막에 비가 오면 배수가 안 되므로 곳곳에 모래늪이 생긴다. 갑자기 생겨난 물웅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보통은 이런 역설을 생각 못한다. 알파고에 버그가 있듯이 지식에도 버그가 있다. 이세돌은 이런 부분에 대한 감각이 있는 거다.


    계몽주의를 버리고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잔다르크는 그냥 군대를 따라다니는 매춘부였는데 어쩌다 말이 와전되어 떠버렸다는 진보진영 일각의 근거없는 주장은 보기좋게 반박되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계몽주의가 과학을 왜곡시킨다. 계몽할 의도로 말을 그럴듯하게 짜맞추어 스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익사하듯이, 알파고가 버그를 일으키듯이, 계몽주의 지식인의 스토리 집착이 함정이 되는 것이다. 모든 과학은 최종적으로 물리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남자가 핑크색을 싫어하는 것은 기계적인 시각 메커니즘 탓이지 감정적 선호가 아니다. 심리주의 들어가면 일단 거짓이다. 위 링크한 기사는 대략 허튼소리다.


    2살 먹은 아이가 자기 성별을 인지해서 색을 선택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과거 PC통신 시절 모니터 색상을 지정할 수 있었는데 텍스트를 빨간색으로 지정하니까 도저히 글자를 읽을 수 없었다. 글자가 앞으로 약간 돌출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착시현상과 같다. 억지로 텍스트를 읽으려하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차멀미를 하는 것도 성별에 대한 인지 때문인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차가 흔들려서 멀미가 나는 것이다. 이건 착시현상처럼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리적으로 눈동자 초점이 흔들리는 것을 어쩌겠는가? 우선 색을 선호한다는 표현 자체가 틀려먹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선호하는게 아니다.


    호불호는 감정인데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들은 특히 파란색에 끌리는데 그 색이 좋아서 끌리는게 아니다. 색깔에 좋고 싫고가 있겠는가? 교실 흑판을 왜 녹색으로 칠해놓는다. 흑판을 핑크색으로 칠하면 수업이 진행이 안 된다. 동물의 눈은 흑백인데 흑백이라야 움직이는 사물을 잘 포착한다. 동체시력과 관계있다.


    풀컬러는 잘 익은 과일을 포착하는데 유리한다. 핑크색 공간에서 움직이는 사물을 포착하기 힘들기 때문에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움직임을 잘 포착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원하는 것이다. 핑크색은 약간 흔들려 보인다. 필자는 핑크색이 싫은게 아니라 괴로운 것이며 핑크색 바탕이면 미세한 차이가 도드라져 보인다.


    명암의 차이가 없는데도 얼룩진 것처럼 보여서 괴롭다. 그 부분이 신경쓰이기 때문에 호흡에 방해되어 호흡곤란을 유발하므로 싫어하는 것이지 색깔 자체가 싫은 것은 전혀 아니다. 적절히 핑크색이 섞여 있는 디자인이 나쁘지는 않다는 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색으로 도배를 하면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눈이 어지럽다.


    핑크색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호흡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반대로 여성은 핑크색을 좋아하는 것이지 푸른색을 싫어하는게 아니다. 남자는 핑크색이 괴로운 것이지 핑크색이 싫은 것이 아니다. 사회에 핑크색과 파란색의 차이가 확실히 생긴 것은 1940년대 부터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오히려 남자가 핑크색 옷을 즐겨입곤 했다고.


    조선시대라면 옷은 여자가 짓는 것이므로 남자의 옷은 엄마가 선택한다. 자기 옷은 자신이 보는게 아니므로 색깔이 어떻든 상관없다. 핑크색 남자 한복 많다. 1940년대는 소비자가 직접 물건을 사던 시대다. 특히 어린이들이 직접 백화점에서 상품을 선택하는 시기다. 여자는 핑크 남자는 파랑으로 정해진 것은 어린이의 선택 때문이다.


    이 사건은 학계의 방법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증거가 된다. 물리적 증거를 찾는게 아니라 계몽주의 의도로 뭐든 사회요인설로 몰고간다. 구조론으로 보면 오컴의 면도날로 쳐내야 하는 부분이다. 두어다리 건너 복잡하게 설명되는 것은 보나마나 가짜다. 그저 호르몬이 결정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작용에 의해 그런 것이다. 


    60년대에 여자는 여자로 가르쳐서 여자가 된다는 식의 무식한 주장이 활개쳤던 일과 같다. 남자아이에게 부모가 강제로 여자옷을 입혀서 학대한 일도 있었다. 호르몬이 성별에 따른 선호를 결정한다. 남자 어린이의 파란색 집착은 나이가 들면 약화되는데 그게 닌자복장에 대한 선호를 버리는 시기와 대략 일치한다고 보면 된다. 


    남자나 여자나 후드티를 입고 스카프를 쓰고 자신을 감추려고 하고 조로의 가면이나 닌자복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일수록 그 경향이 강하다. 파란색 집착은 자신을 숨기려는 본능이다. 배트맨이나 슈퍼맨은 왜 망토를 입고 다닐까? 자신을 숨기려는 것이다. 꼬마들은 장롱에 숨어 있거나 벽장에 숨어 있는 일이 있다. 


    그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지기 때이다. 숨바꼭질 놀이를 특히 좋아한다. 왜 숨바꼭질이 재미가 있을까? 숨으려는 본능 때문이다. 개는 개굴에 숨어 있기 좋아하고 고양이는 박스를 좋아한다. 고양이에게 너는 고양이야 하고 가르쳐서 2살이 된 고양이가 아 나는 고양이니까 박스를 좋아해야 하는구나 하고 박스를 좋아하는게 아니다.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하는 것은 안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새끼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마루밑으로 숨는다. 항상 숨을 곳을 의식하고 미리 공간을 확보해 두려고 하는 것이다. 남자는 나이 열다섯을 넘기면서 자신을 숨기려는 본능이 사라져서 파란색 집착에서 벗어난다. 상식적으로 보자. 사회의 영향이면 어른이 되어도 그래야 한다.


    파란색에 집착하는 남자 어른은 없다. 있다면 지체현상이다. 남자 어른이 파란색에 시큰둥한데 왜 어린이가 파란색에 집착하겠는가? 남자 어른이 검은색 정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튀지 않으려는 것이다. 튀면 찍히고 찍히면 불려가서 일을 해야 한다. 군대 가보면 안다. 제일 키가 큰 사람이 잘 찍힌다. 너 이리 나와. 이거 들고 따라와. 


    안찍히려면 검은색 뿐이다. 여자가 흰색을 좋아하는 것은 반대로 튀려는 의도 때문이다. 앙드레김이 돈을 번 이유는 마네킹 대신 흰색 천을 쇼윈도에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왜 여자의 웨딩드레스는 흰색이고 남자의 연미복은 검은색인가? 어린이의 핑크색, 파란색이 성인의 흰색, 검은색으로 대체된다. 튀는 색깔은 남들이 쳐다본다.


    남들이 쳐다보면 이걸 공격으로 여긴다. 양아치들이 시비를 걸 때는 '너 왜 날 째려봤어?' 하고 시비를 건다. 누군가 쳐다본다는 것을 일종의 공격신호로 읽는 것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원에 갈 때는 정면으로 쳐다보면 안 된다. 개도 그렇다. 정면으로 개를 쳐다보면 개는 으르릉거린다.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물리학이다.


    호르몬이 나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은 남이 쳐다보기를 바라지만 반대로 그것을 거부하는 심리도 있다. 좋은 사람이 바라보면 기분이 좋고 양아치가 쳐다보면 당연히 싫은 것이다. 개가 짖는 이유는 묶어놓고 키우기 때문이다. 개는 항상 숨을 곳을 의식한다. 누가 다가오면 잽싸게 도망쳐야지 하고 생각한다. 


    도망칠 공간이 없으므로 다가오지마 하고 짖는 것이다. 풀어놓고 키우면 도망가면 되므로 짖지 않는다. 넌 개야. 넌 개니까 사람이 오면 짖어야 해. 하고 학습해서 개가 짖는 것일까? 천만에. 개는 원래 짖고 고양이는 원래 박스를 좋아하고 남자는 원래 검은색옷을 입어 튀지 않으려고 하고 여자는 원래 흰색옷을 입어 튀려고 한다. 


    여자아이는 핑크색을 선택하여 집단이 자신을 주시하도록 하고 남자는 안전한 푸른색 속에 숨으려고 하는 것이다. 망또를 입고 닌자가면을 쓰면 더욱 좋다. 후드티를 입기도 한다. 머리카락을 눈까지 내려서 눈썹이 안 보이게 하는 것은 자기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를 감추려는 의도다. 눈이 마주치면 야! 눈 안깔어? 하고 시비를 건다. 


    누가 자신을 쳐다보면 이를 공격신호로 읽어서 괴롭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목받기를 원하기도 한다. 때와 장소와 분위기와 상대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고 한다. 응가하는 모습을 감추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똥누다가 반격할 수 없잖아.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개도 응가할 때 주변을 매우 살피고 안전을 확보한 다음 행동으로 옮긴다. 동물에게만 본능이 있고 인간은 본능이 없다고 믿으면 무지한 것이다. 인간도 상당부분 본능을 따른다. 자신이 본능을 따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린이의 핑크색 청색 집착이 어른의 흰색 검은색 선호로 바뀐다는 사실만 봐도 교육때문이 아니다.


    푸른색을 인지하지 못하는 부족민도 있다. 하늘은 푸르고 하늘에는 적이 없다. 푸른 색은 안전하다. 푸르다는 단어가 없는 부족도 있다. 푸른 색을 설명할 수 없다고. 푸른 색은 진한 푸른색이든 연한 푸른색이든 상관없다. 어린이는 취약하고 가장 안전한 색은 푸른색이며 무시해도 좋은 색이며 그러므로 이름이 없는 색깔이 된다.


    어른은 강하고 강하면 푸른색 집착에서 벗어난다. 푸른색은 남자의 색깔이 아니라 남자어린이의 색깔일 뿐이다. 남자어린이는 항상 누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으며 반대로 여자어린이는 항상 누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고양이가 박스를 좋아하는 원리와 정확히 같다.


    도로를 메우고 있는 자동차는 흰색과 검은색이 대부분다. 핑크색도 없고 파란색도 드물다. 핑크와 파랑은 어린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교실의 흑판은 녹색이지만 녹색 자동차는 거의 없다. 녹색은 편안한 색이지만 배경색이지 주목하는 색은 아니다. 여자어린이는 주목받아야 안전하고 남자어린이는 공격당하지 않아야 안전하다.


힘바족.jpg


    파란색을 고르는데 애를 먹는 힘바족


    파랑은 비교적 최근에 색표에 추가되었으며,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다. 파랑이 영어에 등장하게 된 것은 겨우 11세기에 들어와서였다. 세상 모든 언어를 고려할 때 파랑을 하나의 고유한 색으로 인정하는 태도는 검정이나 흰색, 빨강, 노랑, 초록에 비해 비교적 늦게 나타난다. [웹검색]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챠우

2019.11.27 (17:51:27)

인간의 본능이 작동하는 작은 범위 안에서 보자면, 여성이 더 시스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독립적이라 주목을 받으려고 하므로. 즉 주변인을 자신의 시스템 안에 넣으려는 것. 


반면 남성은 해당 범위 안에서는 비시스템적인 존재이지만, 더 큰 범위에서는 또 시스템적인 구조를 차용하므로, 청소년~ 대학생 ~ 회사원 남자애들이 개떼처럼 몰려다니는 거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9.11.28 (12:27:52)

남과 여가 비슷한 부분이 많으나 

여자는 관계적 존재고, 남자가 독립적인 존재인 게 맞네요. 

학교에서 봐도 그래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11.28 (00:45:01)

"인간은 본능이 없다고 믿으면 무지한 것이다. 인간도 상당부분 본능을 따른다. 자신이 본능을 따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http://gujoron.com/xe/1144320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867 세계상 김동렬 2024-06-07 4404
6866 원형이정 김동렬 2024-06-05 4531
6865 동작을 이수진의 배신 12 김동렬 2024-06-05 4454
6864 도처에 맞다이 김동렬 2024-06-04 3833
6863 믿음 아니면 죽음 김동렬 2024-06-04 4487
6862 코기토 논증 1 김동렬 2024-06-04 3739
6861 민희진과 배신자들의 말로 김동렬 2024-06-02 4815
6860 의사결정 김동렬 2024-05-31 4428
6859 방시혁 민희진 전쟁 중간점검 김동렬 2024-05-31 4041
6858 프레임 정치의 야만성 김동렬 2024-05-30 3147
6857 현대인의 비가역적 뇌손상 김동렬 2024-05-29 4320
6856 정신병동 대한민국 김동렬 2024-05-28 4452
6855 삼체의 진실 1 김동렬 2024-05-28 4166
6854 닭도리탕 닭볶음탕 논란 종결 2 김동렬 2024-05-27 68093
6853 강형욱 양원보 통일교 내전? 4 김동렬 2024-05-27 5666
6852 인간의 입장 김동렬 2024-05-26 3239
6851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위험성 image 김동렬 2024-05-26 3208
6850 강형욱 사냥 십만 일베페미 5 김동렬 2024-05-26 3972
6849 강형욱 소동과 프레임 정치의 비극 김동렬 2024-05-25 4405
6848 윤석열 사냥시즌 1 김동렬 2024-05-24 4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