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72 vote 0 2021.07.09 (10:55:51)

나는 석사 두 개, 박사 한 개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줄리 못 하신 분도 이해할 수 있다. 46% 논문 표절 같은 거 이해할 수 있다. 사모펀드에 투자해서 8개월만에 겨우 83% 수익을 올리는 시추에이션도 이해할 수 있다. 주가조작도, 부인 집에 삼성이 전세권 설정한 것도, 윤우진 전 세무서장 뇌물수수 사건 덮어준 희대의 사건도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시선집이나 시집을 사서 그걸 읽고 있다는 분들 진짜 이해할 수가 없다. 시(선)집은 읽기용이 아니다. 이걸 자꾸만 갈쳐줘야 하나? 시집은 사서 읽으라는 책이 아니다. 시집은 그냥 사는 책이다. 그냥 사놓고 잊어먹는 책이다. 그러다가 가끔 라면받침으로 꺼내놓고 제목을 상기하는 책이다. 누가 시 같은 거 물어보면 막 읽은 척 하면서 응, 나 그거 우리집 서가에 있어... 뭐 이럴 때 써먹는 책이다.
자꾸만 시집 사놓고 읽을 생각을 하는 건 시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차피 그래놓고 읽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읽어야 하는 게 부담된다고 사는 것조차 하지 않으니까 세상이 이렇게 황폐해지고 피폐해지고 지폐만도 못해지는 것이다. 시집 절대 읽지 마시라!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이해가 안 가는 분들이 또 계시다. 휴가 갈 때 누가 시집 같은 거 챙기면 왜 그런 짐을 들고 가냐고 잔소리하는 김주대 시인 같은 분들. 진짜 무식한 거다. 시집은 과시용이다. 어디 가서 낮잠 잘 때 핸드폰 베고 자는 사람과 시집 덮고 자는 사람은 품격이 다르다. 애인들이 막 꼬인다. 요즘 세상에 참 고아하고 고결한 사람처럼 보여진다. 시집은 쓸모가 많다.
그래서 시선집 사 놓고 그걸 읽느라 시간 끄는 답답한 분들 때문에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는 이제 겨우 5쇄를 찍고 하이파이브나 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집 읽을 시간 있으면 선물을 하셔야 한다. 시집은 원래 나는 안 읽고 남들한테 선물할 때나 써먹는 책이다. 세상도 얼마나 좋아졌는지 카O오톡 선물하기도 되고 요즘 슬프게 소문난 쿠O으로도 주문이 된다.
하여간, 나도 아직 다 못 읽은 시선집 다 읽었다고 자랑질하는 분들 진짜 이해가 안 된다. 5쇄가 뭔가, 5쇄가... 시바.


###


시는 읽는게 아니다.
섬기는 거다.
그런데 시가 똥을 싼다.
그게 시다.
꼬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4046 운명적인 출석부 image 23 김동렬 2014-12-22 5779
4045 우뚝한 출석부 image 43 김동렬 2017-04-24 5779
4044 검찰개혁 시국선언 계속된다 image 8 김동렬 2020-12-09 5779
4043 미얀마의 여름 출석부 image 14 김동렬 2012-02-13 5780
4042 봄 나드리 출석부 image 13 무득 2013-04-10 5780
4041 안아주는 출석부 image 36 universe 2020-01-02 5780
4040 코코볼 출석부 image 35 이산 2020-01-14 5780
4039 탄탄대로 출석부 image 38 이산 2020-03-05 5780
4038 물개안녕 출석부 image 41 김동렬 2017-12-27 5782
4037 농부처럼 출석부 image 45 김동렬 2018-05-15 5782
4036 날아오르는 월요일 출석부 image 28 이산 2022-05-22 5782
4035 사슴 출석부 image 19 김동렬 2014-01-17 5783
4034 어색한 출석부 image 44 솔숲길 2016-04-05 5783
4033 게임 출석부 image 35 universe 2019-08-04 5783
4032 벌새 출석부 image 15 universe 2020-08-16 5783
4031 오바 푸틴 출석부 image 26 김동렬 2015-07-21 5784
4030 개추운 출석부 image 40 이산 2016-01-24 5784
4029 멋진 성당 출석부 image 15 ahmoo 2016-01-17 5785
4028 심상찮은 출석부 image 45 김동렬 2016-01-21 5785
4027 포근한 출석부 image 12 곱슬이 2013-01-29 5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