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사진 하단의 부바키키효과를 주목할 수 있다. 부는 입술을 불룩하게 바람을 부는 발음이니 풍선모양이 된다. 키는 목구멍에 가시가 걸리는 소리이므로 뾰족한 모양이 된다. 어떤 사람이 사람에게는 끼, 꼴, 꾀, 꿈, 끈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책을 썼다는데 이 다섯은 모두 ㄲ 발음으로 시작된다. 목구멍에 걸리는 소리다. 즉 가시인 것이다.
사람에게는 뾰족한 가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끼는 개성을 나타내므로 뾰족한 가시다, 꼴은 울퉁불퉁한 모양을 나타내므로 역시 뾰족한 것이다, 꾀도 돌출행동을 하는 것이므로 마찬가지다. K 발음으로 시작되는 단어는 구조론의 질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질은 뾰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성공하려면 자원의 질이 우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과학적 팩트를 들이댈 뿐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론으로 접근해야 완전해진다. 아마 많은 학자들이 라마찬드란 박사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의심하고 반론을 펼 것이며 논쟁은 오래 계속될 것이다. 전체를 한 줄에 꿰어내는 일관된 논리를 만들어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이러한 결과를 미리 예견했기 때문에 일관된 논리가 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단지 추측하고 있을 뿐이지만 구조론은 언어가 진화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를 어학에 적용한다면 학습효율은 크게 늘어난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보고는 그 새로운 학습법의 논리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모방을 강조하고 있지만 모방은 원숭이도 꽤 잘한다. 언어는 원래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능력에서 나왔다. 인간의 감정을 읽는 능력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발달시킨 특별한 능력이다. 어떤 사람이 웃으면 자기도 웃게 되고, 어떤 사람이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자기도 화가 난다. 특히 여성들은 더 감정이입이 뛰어나다. 여자가 남자보다 말을 더 잘하는데 이유가 있다.
이러한 감정이입은 인간의 얼굴에 털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원숭이나 침판지는 아직도 털이 많은 것이다. 구조의 밸런스 원리에 따라 한가지 능력이 생기면 모듈화 되므로, 그 능력은 인간 전체에 파급되었고 특히 혀에 전달되었다. 축구시청을 하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발로 차서 소반을 엎어버리듯이 인간은 동작을 모방하기 때문에
혀가 그것을 따라하는 것이다. 예컨대 앞으로 가야할 때는 인체의 눈동자부터 약간 돌출하여 앞을 가리킨다. 뒤로 물러설 때는 눈동자가 뒤로 들어간다. 그래서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이 죄를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죄지은 사람은 눈동자가 뒤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얼굴만 봐도 선인과 악인을 가려낼 수 있다. 한나라당 표정이 있다.
그때 혀도 그 동작을 따라한다. 심지어 강아지도 칭찬을 받을 일이 있을 때는 어깨를 으쓱 하며 앞으로 나선다. 상체를 꼿꼿이 펴는 것이다. 혀의 동작에 그것이 반영된 것이 언어이며 그 언어는 최초 100여개의 동사로 완성되며 그 순간 폭발한다. 어학도 이와 같은 원리를 반영하면 폭발적으로 학습된다.
창의성이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 라마찬드란 박사의 주장은 획기적인 것이다. 이는 필자의 소통지능에 다 나와있다. 그러나 라마찬드란 박사가 말하는 공감각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창의성은 역시 모방이며 그 모방은 포지션을 읽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오랑우탄이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는 식의 모방은 창의가 아니다. 누가 주고 누가 종이며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이며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를 아는 데서 창의가 일어나는 것이다. 창의는 구조론의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눈에 보이는 운동과 량을 앞질러 가서 그 이전의 입자와 힘을 아는 것이며 더 나아가 질을 아는 것이다.
맨손으로 열매를 따는 것은 하수고 막대로 따는 것은 상수다. 고수는 그 이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열매가 맺히기 전에 나무를 자기 집 마당으로 옮겨놓는 것이다. 즉 사건진행의 이전단계를 장악하여 포지션의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진정한 창의인 것이다. 사냥을 하는 것은 하수고 새끼를 잡아서 집에서 키워 가축화 하는 것이 창의다.
어떤 사건의 이전단계를 장악하는 것이 진정한 것이며 이는 공동체 생활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행동에서 촉발된 것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앞질러 가려는 것이다. 늑대 한 마리가 양을 쫓으면 다른 한 마리는 길목에서 기다린다. 이것이 앞질러가는 행동이며 바로 그것이 창의다. 이는 모두 인간의 뇌가 환경을 장악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외부환경을 내면화 한 데서 얻어진 것이다. 즉 인간의 공동체적 본성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구조론에 따라 다섯 단계가 있으며 이 중에서 가시화 되는 것은 네번째 다섯째다. 감추어진 이전단계를 장악해들어가는 것이 창의다. 이는 그냥 무질서하게 생각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의 경쟁행동 안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서울대 중심,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은 그러한 경쟁행동을 감추어서 드러나지 않게 하므로 창의를 어렵게 한다. 왜냐하면 비슷한 수준의 사람이 모여 있으면 모두 같은 단계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역할은 나누어져 있다. 할아버지는 용돈을 주는 역할이고 손자는 댓가로 심부름을 하는 역할이다. 할아버지가 용돈을 줘야 손자는 군것질을 할 수 있다. 손자가 할아버지에 종속되며 이때 손자가 순서를 앞질러 할아버지 포지션을 차지하려는데서 창의는 얻어진다. 주입식 교육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아놓아서 그러한 경쟁행동을 방해한다. 역할이 같으므로 역할을 앞지르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