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측 차선은 직진이 가능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무조건 직진하는 놈은 미친놈이죠.
상식을 가진 운전자들은 최우측 차선에 들어서기 전에
땅바닥에 직진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차선에 들어섭니다.
왜냐하면 최우측 차선이 직진이 불가능할 때 서있으면
뒤에서 빵빵거리기 때문입니다.
해당 도로에서 가장 우측 차선은 직진이 불가능하다고 도로에 표기되어 있으므로
직진하다가 사고난 운전자가 잘못한 것이지,
그게 도로를 설계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라는 거죠.
물론 운전자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한국의 모든 도로에서 최우측 차선에서 일괄적으로
직진이 불가능하게 혹은 가능하게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도로 여건상 현실적으로 불가능.
3회에 걸쳐 직진불가 표기를 땅바닥에 표기
해당 도로는 2차로에서 3차로로 확장되는 이유가 우회전 편의를 도모를 위한 것임
즉 운전자가 쉽게 우회전 차로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구조. 왜냐하면 갑자기 차로가 늘어나니깐.
게다가 저 근처를 운전해보면 분위기를 알 수 있는데,
저 근처는 전국에서도 유난히 최우측 차선에서
직진하는 얌체 차량이 많은 곳입니다.
공단 인근의 도로는 대개 이런게, 화물차가 많기 때문.
정작 화물차는 경험이 많아서 사고가 안 나고
승용차가 화물차 따라하다가 사고를 많이 내죠.
그런데 이를 까는 네티즌들은 운전을 한 번도 안 해본 걸까요?
댓글이 100개라면 도로공사를 까는 댓글이 99개고,
운전자가 잘못했다는 댓글은 1개인데,
비율이 어이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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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회전 횡단보도 사고가 많이 나는 것을 두고
우회전도 신호를 적용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는 철학이 등장합니다.
보행자와 차량 중 무엇을 도로에서 우선할 것이냐를 정해야 하는 거죠.
우회전에 신호를 주면 보행자를 우선하는 것이 되며,
보행자를 우선하면 차량 흐름은 저해됩니다.
최근 전국에서 차량/보행자 겸용도로 중 일부가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뀌고 있는게
이런 철학이 반영된 거죠.
서울에서도 사대문 안으로는 차량이 못 들어오게 추진한다는데,
이런 건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철학의 문제로 해석해야 합니다.
도로 위의 강자에 패널티를 주고 안전을 우선하는 게 21세기의 흐름입니다.
과거에는 차량흐름을 늘리고자 보행자에 패널티를 주고 육교를 활용 했다면,
지금은 육교 없이도 교통 벌칙을 빡세게 만들어서
보행자의 편의를 최대한 우선하잖아요.
또한 무조건 선진국에서 어떻게 하므로 이를 따라하자는 논리는
21세기 선진국인 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며,
이제는 한국이 시행착오를 직접 시연해야 합니다.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후진국에 비해 의사결정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안고서도 이것 저것 해볼 수 있는 게 선진국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무조건 법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답이 아니며,
문화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규칙을 만드는게
선진국의 에티켓 만들기 방법입니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로 존재해야 하며,
법이 과도하면 인간이 법에 의지하며
직접 의사결정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법만능주의는 보수의 방법이며,
적극적인 해석을 통하여 문화로 조지는게 진보의 방법이라고 구조론에서 말하잖아요.
법은 기계적으로, 문화는 맥락적으로 좀 더 적용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선진국 국민이라면 이왕이면 더 높은 지능이 필요한
맥락적 해석을 더 가치있게 받아들여야죠.
무조건 법을 지키라는 단순한 논리는
보수의 멍청한 소리입니다.
해당 도로에서도 보행자사고와 직진추돌사고를 막고자
최우측 차로에 신호를 적용할 수도 있는데,
신호를 적용하면 차량 흐름이 방해되지만
사고는 막을 수 있으므로
검토할 사항은 됩니다.
물론 정 거시기 하면 땅바닥에 LED로 직진 금지를 표시하고
최우측차선 직진 금지 안내판을 초대형으로 걸어놓던가 하는 등의 다양한 해법이 있습니다.
요새는 횡단보도에 서치라이트도 비추더만. 못할 게 뭐 있남.
역사적 관계를 통하여 수학의 맥락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