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는 본능적으로 나무 위로 기어올라 갑니다.
생후 1일짜리도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는데 이건 동물원에서 직접 본 것.
달성공원 동물원 원숭이가 출생했다고 대구 매일신문에 기사가 났음.
병장은 본능적으로 보일러실에 짱박히는데 취사반 부식창고에 짱박히는 병장도 있음.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박스 안에 기어들어가고
싸움꾼은 본능적으로 벽을 등지고 서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좁은 공간에 숨으려고 합니다.
캥거루는 인간이 키워도 일단 가방이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갑니다.
현대인은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서 생활하므로 구멍을 찾지 않지만
늑대나 호랑이에게 쫓기던 시절에는 필사적으로 작은 구멍을 찾아다녔습니다.
양떼는 필사적으로 무리에 섞여 있으려고 합니다.
뱀이나 쥐를 무서워 하는 본능과 마찬가지로 1차적으로는 본능입니다.
안전을 확보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거지요.
현대인은 안전하기 때문에 그 본능이 무의미해진 것이고.
권력적 동기도 일부 있겠지만 지하철 가장자리 좌석에 앉는다거나
양아치가 벽을 등지고 선다거나 꼬맹이가 2층침대를 차지하려는 행동이고
이런건 가장자리냐 가운데자리냐 경쟁대상이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 숨는 본능은 경쟁대상이 없는 행동입니다.
개가 공을 물어오거나 고양이가 놀이개에 달려들거나
어린이가 장난감을 선호하거나 장롱속에 숨는 행동은 강렬한 생존본능입니다.
원시시대에는 반타작도 아니고 1/5타작이니 열 낳으면 여덟이 어린이 때 죽습니다.
굉장한 숨는 능력이 있는 어린이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됩니다.
숨바꼭질도 숨는 본능 때문에 만들어진 놀이입니다.
분리불안에 빠진 개도 숨바꼭질 몇 번 해주면 정상화 됩니다.
어린이는 어딘가에 숨어야 한다는 굉장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한겨울에는 이불 속에 숨어 있는게 가장 안전한데.
저는 그 "안전에 대한 본능"이라는 게 "포지션 우위로의 이행"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언어가 짧아 표현이 부족한 것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사용한 "포지션 우위"라는 표현은 "더 좋은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대상과 나의 부-대칭에 의해 성립한 밸런스 회복이라는 관점에 의한 것입니다.
"비대칭"이라 하지 않고 "부-대칭"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비대칭은 대칭의 (상부)대칭을 가리키기 때문에
이와 구분코자 51 대 49와 같은 것을 부-대칭이라고 해봤습니다.
아무튼 동영상만 떠오를 뿐 딱히 적당한 표현법을 찾지 못하겠네요.
스포츠를 해봐도 이런 걸 느낄 수 있는데, 윙어가 사이드로 이동하는 것이나
좋은 미드필더가 빈공간을 찾아 패스를 하는 것도 같은 현상처럼 보입니다.
물론 어떤 미드필더는 빈공간이 "될" 곳을 찾아서 쓰루패스를 하기도 하죠.
직접 축구나 족구, 농구를 해보니깐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몸이 그렇게 되더라고요.
하여간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안전"이나 적으로부터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고차원 개념을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령 사슴이 쫓아오는 사자를 피해 도망가는 것을 보고
인간은 그것이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냥 사슴이 사자가 없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좀 지나친 설명이긴 하죠. 하지만
저는 이러한 생물의 인지 및 행위 연결이
에너지가 밀도가 적은 공간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합니다.
좀 더 과감하게 가정을 질러보자면,
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처음 본 뱀을 보고 놀라는 것도,
유전자에 이러한 알고리즘이 세대를 거치며 누적 반영된 것이라고도 봅니다.
인간이나 동물이 무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본능도
좁은 공간이 좋아서 그런다기 보다는
거꾸로 넓은 공간에 대한 위화감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데,
과연 무대에 홀로 서보니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어지더라고요.
물론 노래를 한 곡조 뽑으면 거꾸로 무대가 좁게 느껴지기는 했었습니다.
내가 압도할 수 있다면 말이죠.
이런 제 가정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고민이 좀 되기는 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린이에게만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애들은 잘 우는데 어른들은 안 울어요. 왜 안 우냐? 원래 남자 어른은 울지 않습니다.
권력적 동기는 판단이 들어가야 하며 심리적인 것이고 호르몬에 의한 물리적 반응이 우선입니다.
아기가 우는 것은 호르몬 작용으로 그냥 울음이 터져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방아쇠가 당겨지면 자동으로 발사되는 것이어서 특히 울보는 울지 않을 수가 없어요.
여자는 특히 비명을 자주 지르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 것도 아닌데 비명을 지릅니다.
얼마나 비명을 자주 지르는지 외국 동영상도 있습니다. 딸국질 소리만 들어도 비명을 지릅니다.
왜 비명을 지르는가? 그게 본능입니다. 인간은 본능이라는 것을 지각하지 못하지만 본능이에요.
남자애가 파란색 좋아하고 여자애가 분홍색 좋아하는 것도 본능인데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그럴 리가 있나 하고 말하는데 그 현상은 나이가 들면 약해집니다.
저는 명백히 색깔본능이 어린이의 나이와 관계있다고 봅니다. 할머니도 핑크색을 좋아하지만.
권력동기는 나이와 관계가 없지요. 저도 어릴 때 파란색이 끌렸는데 나이가 들며 시들해졌음.
스치로폴로 유리창을 문지르면 괴로운 소리가 납니다. 왜인가? 권력동기가 아니라 본능입니다.
화음은 듣기가 좋고 불협화음은 듣기가 싫다. 왜 그런가? 본능입니다.
아스퍼거인은 소음과 색깔에 민감하다. 왜 그런가? 본능입니다. 원래 그런 거에요.
남자애와 여자에의 색깔본능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스퍼거인의 이상행동도 부정하겠지요.
레인맨? 그거 다 영화감독이 꾸며낸 거짓말이지. 그런게 어딨어? 그런데 있거든요.
서번트 증후군이 실제로 있는데 그게 없다고 우기면 안 됩니다.
그건 게이가 전염된다는 기독교 광신도의 억지부리기와 같은 거지요.
게이는 타고나는게 아니라 게이에게 영향을 받아서 게이가 되었다. 이게 맞나요?
여자는 여자로 만들어지고 게이는 게이로 만들어진다? 아닙니다.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고 게이는 게이로 태어나고 아스퍼거는 아스퍼거로 태어납니다.
아 이 이야기는 이금재님의 권력설과 그다지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여간 그렇다구요. 심리분석 하지 말고 원래 그런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학계가 비뚤어져 있지요.
어차피 인간은 권력 총량의 법칙에 의해 나이가 어리나 많으나
일정량의 권력을 좇는데,
어린이에게 어떤 권력 추종 현상이 있었다면
어른이 됐을 때, 나이와 동료의 수준에 맞게 그것이 교체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어린이가 유난히 원색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아주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살짝 발가락을 담가본 경험에 의하면,
호불호도 나이와 교육에 따라 어떤 발달단계가 있었거든요.
아주 어릴 때는 인지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일단 잘 보이는 큼직큼직한 원색류를 좋아하다가
중고딩 쯤 되면 갑자기 선을 좋아하다가
대딩쯤 되니깐 입체를 좋아하다가
직딩쯤 되니깐 보이지 않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하더라고요.(오해 안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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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가 비뚤어져 있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지 알겠습니다.
학계는 학자 자신에게 권력을 주려고 하지요.
대중의 차별주의적 편견을 학자의 지성으로 극복한다는 프레임을 짜놓고
아무거나 무조건 기계적으로 프레임을 들이댑니다.
뭐든 다르다고 하면 그건 편견에 찬 대중의 차별이야. 나의 계몽을 받으랍신다. 에헴. 이런 거죠.
결국 결론은 권력인데, 흔히 말하는 진리에서 벗어난 왜곡된 권력이라는게 문제군요.
비슷한 사례로 윤석열개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과거의 실패를 왜 재현하려고 하나?
역사는 미래의 헤드라이트이다.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해찬을 그리워하게 하지 마라.
죄를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야한다.
무슨 사면얘기인가?
문대통령도 정치인을 전혀 사면안하고 있는 데
무슨 이명박근혜 사면인가?
다시 바보들이 정권을 잡고 활개치는 것을 보고 싶은가?
댓글들을 좀 보니 올해 시험을 못보고 내년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재시"라고 하던데, 재시가 아니라 초시(처음 시험 봄)이다.
85%의 의대생이 작년에 시험을 보지 않았고
그들이 다시 2021년도에 의사시험에 처음응시하는 것이다.
이 85%들이 시험을 다 볼 것인지 안볼것인지는 그들의 계획이고 권리이다.
1990년대 후반에 한의사들도 시험거부하고 그 다음해다 다 응시했다.
아니면 노인들이 뒤에서 이낙연을 조종하나?
이제 제3의 후보가 나와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