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단 한 사람만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 사람의 결정이 곧 우주의 결정이 된다. 우주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면 일단 많이 움직여볼 것이다. 인류에게 허용된 한계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있으므로 나 하나쯤 죽어도 상관없다. 나의 희생으로 인류가 얻는게 있다. 우주 기준으로 손해본 장사가 아니다. 보통사람의 보통행동은 이러하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으므로 쪽수를 믿고 일단 집적대 본다. 그런데 중요한 의사결정이라면 달라야 한다.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 인류원리란 간단히 우주에 인간은 한 명 밖에 없으며 그 한 사람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한 사람의 선택이 중구난방이라면? 그런 영장류라면 인간 수준까지 진화하지 못한다. 인간 수준까지 진화했다면 대표성을 따른다. 자기 행동의 파급효과를 예상하고 신중하게 행동한다. 사이코패스는 다르다. 사이코패스 영장류는 인간 수준까지 진화하지 못한다. 이는 구조적 필연이다. 인간만의 독점적 생태적 지위에 수렴하는 진화를 하는 것이다.
인류원리는 연결지점에서 하나가 되는 원리다. 우주도 하나고 인류도 하나다. 둘이라 해도 만나지 못하므로 하나와 같다. 의사결정은 하나다. 원자론의 사고를 버리고 메커니즘적 사고를 하면 깨닫게 된다. 화살이 백 발이라도 활은 하나이며 둘이라도 의미는 하나다.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필연적으로 우주 안에 인간은 하나일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고 살펴봤더니 하나 밖에 없더라는 측면도 있다. 살펴봤더니 하나 뿐이더라는 견해는 희귀한 지구 가설과 페르미의 역설이다. 둘일지도 모르지만 발견되기 전까지는 하나로 친다.
우리은하 어딘가에 인류 이상의 고등 생명체가 있겠지만 서로 교류하기 전에는 없는 것과 같다. 프로젝트 뛸만한 거리는 100광년이다 그 안에 있다면 1천년 안에 의미 있는 수준의 교류를 할 수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답장을 받는데만 200년이 걸리니까 말이다. 인류는 100광년 안쪽을 뒤졌다. 낌새도 없다. 낌새가 1만개 나오면 하나 정도 외계인이 있을텐데 외계인은 커녕 생명체의 흔적도 없다. 1만 광년까지 가야 외계인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없는 것으로 쳐야 한다. 외계인은 지구인의 백업에 불과하다.
우주도 하나, 인류도 하나다. 왜 하나인가? 우주가 유체이기 때문이다. 유체는 계를 이루고 계 내부는 균일화 된다. 그러므로 복잡할 수 없다. 다양한 온도대가 있는게 아니라 영하 270도 아니면 1만도다. 중간 온도는 하나 있는게 지구다. 왜 우주는 다양하지 않나? 은하철도 999처럼 다양한 행성에 다양한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가? 유체는 원래 다양하지 않다. 다양한건 강체다. 복잡은 5를 넘을 수 없다. 복잡한 것은 1이 2를 겸하는 메커니즘이다. 방식은 다섯이다. 우주는 다섯 가지 방식으로 하나가 둘이 된다. 복잡의 중복은 약분하면 사라지고 혼잡은 여과기를 통과하면 사라진다. 영차원 구슬은 1차원 실에 꿰어지고, 1차원 실은 2차원 옷에 꿰어지고, 2차원 옷은 3차원 레이어에 꿰어지고, 3차원 입체는 4차원 유체에 꿰어진다. 한 줄에 꿰어져 단순해져야 외부로 전달된다.
외부와 연결하는 지점에서 계를 이루고 차원의 도약을 일으키므로 단순해진다. 같은 0차원이나 같은 1차원끼리 모여서는 외부로 나가는 출구를 만들 수 없다. 의사결정을 못한다. 같은 서울대 출신끼리 모아놓으면 진행이 안 된다. 총대 매고 나설 사람이 없어서다. 모든 외부와 연결되어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차원의 도약 지점에 전혀 움직이지 않는 밸런스의 중심점이 있고 그것은 기적으로 보인다. 특이점은 압력이 걸린 닫힌계에 반드시 하나 이상 무조건 있다. 특이점이 없으면 계에 외부의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선의 도킹이나 비행기의 공중급유와 같다. 도킹지점에 정지한다. 기름을 넣으려면 자동차를 정지시켜야 한다. 삽입을 하려면 활동을 멈추어야 한다. 옷을 입든, 음식을 먹든, 똥을 싸든, 자판을 치든 입력은 멈추어야 한다. 붙잡아주는 도마 역할은 반드시 있다.
놀라운 것은 우주의 존재 자체다.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지점에서 반드시 멈추며, 반드시 붙잡으며,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이며, 대표성을 가지며, 우주가 단일자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우주에 인간 밖에 없다. 복잡하니까 뭔가 많이 있어 보이지만 없잖아. 전선이 아무리 많아도 전원 스위치는 하나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량이 많을수록 질은 1이다. 의사결정은 질에서 일어난다. 병력이 많을수록 대장 1명에 집중된다. 10명의 소대원은 각각 임무를 부여할 수 있지만 100만 대군은 한 명의 사령관이 다 통제해야 한다. 곤양대전이 증명한다. 팽성대전에서 유방군 56만이 깨진 것도 같다. 병력이 많을수록 1명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 한 명이 움직이지 않으면 현리전투 꼴이 난다. 한신은 다다익선이다. 그 한 명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다양성의 주장은 소인배의 권력행동이다.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냐. 문명의 중심은 중국이 아냐. 교실의 중심은 학생이 아냐. 넌 중심이 아냐. 이 말에는 교사가 학생을 심리적으로 제압하고 굴복시키려는 나쁜 의도가 숨어 있다. 어떤 학생은 당연히 중심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중심임을 알았다. 세종은 중심이라고 믿었고 최만리는 변방이라고 주장했다. 이순신은 제 발로 위험한 전쟁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의사결정은 중심에서만 일어난다. 변방은 중심의 위치를 결정하는데 쓰인다. 누구든 중심이 될 수 있다. 중심이 되려는 야심을 품어야만 중심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