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가끔 말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 뭐 천성이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때론 평소에 말이 없다가 한 번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면 의문이 든다.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그 사람이 자라온 가족이라는 구조로부터 찾을 수 있다. 잠시 싸늘한 침묵이 흐르는 조용한 가족, 서로 무심하기 그지 없는 태도로 관심에는 짜증을 보이며 의미 있는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그런 가족. 그런 가족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한 남자를 그려보자.
그런 가족 속에서 자라난 차가운 도시 남자. 침묵을 금으로 말을 똥으로 삼는 그이지만, 이상하게 새로 사귄 여인 앞에선 그 미덕이 무너진다. 평소엔 여전히 말이 없지만, 애인과 술자리라도 갖는 날엔 그 동안 목구멍까지 쌓인 이야기가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처음엔 ‘이 과묵한 남자가 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정말 나를 사랑하긴 하나 봐’했던 여인의 속내는 이제 짜증으로 변한 지 오래이다. 술만 마시면 입에서 방언처럼 쏟아져 나오는 말에 지친 여인은 막상 자기 이야기만 할 뿐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상대에 실망감이 점점 커져가 이젠 이별까지 고려하고 있다.
남자는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사회적인 관계 속에선 그러한 욕망을 용케 참고 있지만, 친밀한 관계, 사적인 관계 속에선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자기 이야기를 펑펑 틀어 놓는다. 듣는 사람은 괴로워 미칠 지경이지만, 남자는 그걸 자각하지 못한다.
그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상대방의 느낌을 제대로 포착하질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세한 감정도 잘 못 느낀다. 침묵하는 가족의 구조 속에서 남자는 참고 참고 또 참아왔다. 그렇게 참아온 세월이 수십 년이었다. 남자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이야기한다. 지금이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으리란 심정으로 그렇게 봇물 터뜨리듯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그의 독백에 지친다. 그와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일방적인 독백과 듣기만이 가능할 뿐이다.
침묵은 일종의 행동 패턴이다. 그리고 우리가 습득한 행동 패턴의 대부분은 원가족의 구조로부터 나온다. 원가족의 상호작용의 대부분이 침묵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그 가족의 구성원은 침묵이라는 행통패턴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재현하기가 쉽다.
하지만 어떤 구조화된 행동 패턴은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 패턴을 낳기도 한다. 인간의 내면은 기본적으로 균형원리를 따르기 때문에 마치 저울처럼 한 쪽 추가 기울어지면 다른 쪽 추가 작용하여 평형상태를 복원하려는 현상이 벌어진다. 침묵하던 남자가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는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그가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갑자기 말이 많아지는 것은 자신이 가족 관계 속에서 경험했던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당황한다. 기껏 하는 반응이, “아니,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왜 저러지? 미쳤나? 뭘 잘못 먹었나?” 이런 식이다. 하지만 좀 더 그 사람을 이해하면, 우리는 알게 된다. 왜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저럴까? 왜 평소엔 조용하던 사람이 갑자기 폭주기관차처럼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 답은 그가 경험한 원가족에서의 불균형한 구조 속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