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면 죽는다. 윤석열도 그 정도 정치공학은 안다. 근데 왜 사과했지? 김건희가 시켜서다. 이건 윤석열의 사과도 아니고, 김건희의 사과도 아니고, 김건희는 죄가 없다고 윤석열이 대신 변명해준 것이다. 사과한다고 제목을 뽑아서 시청률 장사를 했을 뿐이다. 김건희 변호사 노릇이다. 문제는 이런 쇼 하면 지지율이 회복된다고 착각하는 거다. 윤석열은 자신에게 대단한 말솜씨가 있기 때문에 김건희를 쉴드치면 국민이 속아 넘어갈 줄 안다. 이게 개저씨 병이다. 회의 때 혼자 장광설 하면 부하직원들이 잠자코 듣고 있다. 권위주의로 찍어 누르면서 말솜씨로 착각한다. 그러나 국민은 말의 내용에 관심이 없다. 국민이 관심을 가진 부분은 여기서 누가 갑이고 을이냐다. 국민을 이겨먹으려고 하므로 망하는 것이다. 사과는 불필요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살리지 못했지만 그게 기회다. 여기서 뭔가 깜짝 카드를 던져야 한다. 그게 져주는 것이다. 국민이 승리자가 되고 정치인이 지면 사과쇼가 먹힌다. 거국내각이나 대연정이나 임기단축 개헌 같은 것을 제안해야 한다. 고급 정치술은 사과한다며 이목을 끌어놓고 역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 노태우의 629선언은 고급 정치술이다. 호헌철폐 직선약속. 국민에게 납작 엎드리면서 실제로는 삼김이 서로 싸우게 만든다. 자기가 갖고 있는 떡을 상대방에게 줘서 야당끼리 서로 물어뜯게 만드는 기술. 개사과로 망하는 이유는 그런 승부수가 없기 때문이다. 629선언 찜쪄먹는 깜짝카드가 없었다. 개헌도, 대연정도, 거국내각도, 임기단축도 없었다. 그게 무슨 사과냐고? 하여간 정치 진짜 못한다. 왜 검사가 군바리보다 못하냐고? 왜 국민은 사과하는 대통령을 싫어할까? 지지자들이 일용할 목표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연쇄적인 구조복제다. 한 사람이 길을 열면 여러 사람이 그것을 복제한다. 바이럴 마케팅과 같다. 거기에 작용하는 에너지의 쏠림효과를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이다. 그게 필요하다. 모든 권력에는 거품이 있다. 어떤 사람이 좋아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단계를 보고 지지한다. 권력자가 첫 단추를 꿰면 두 번째 단추를 꿰려고 모여든다. 나는 노무현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확히 나는 노무현이 좋다는 사람이 좋다는 거다. 왜? 노무현이 좋은 사람의 패거리를 이루고 세력의 존재감을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력이 붙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세력의 핵이 되는 무언가 뼈다귀를 던져줘야 한다. 불쏘시개를 던져야 한다. 무얼 하면 되지? 집회를 하면 되나? 뭔가 역할을 받아먹으려고 모두 TV를 보는 것이다. 근데 사과를 한다더니 사과만 하고 역할은 안 줘? 그게 정치냐? 사과한다면서 극적 승부수를 던져서 지지자에게 역할을 주는 게 정치 아냐? 정치는 집단의 방향전환이다. 지지자는 거기서 역할을 조달한다. 권력은 국민의 간격을 조인다. 조일 수 있는 뭔가를 줘야 한다. 첫 단추가 아니다 싶으면 방향전환이다. 이때 추진력이 필요하다. 왜 사과하면 망하는가? 방향전환에 추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성력 빼먹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지자가 떠날 때는 그냥 안 가고 집을 홀랑 불태우고 간다. 똥파리가 민주당에서 했던 짓이다. 그냥 안 가고 배 침몰시키고 간다. 박근혜는 역할을 줬다. 태극기부대 이름으로 윤석열 정권 만들었다. 얻어먹을게 있었다. 윤석열은? 지지자에게 어떤 먹잇감을 던져줬지? 야당을 분열시킬 어떤 뼈다귀를 던져줬지? 바보야.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냐. 김영삼이 울고 간다. 승부수는 어디 갔냐? 1. 사죄하면 죽는다는 사실은 윤석열도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