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다. 데모크라시는 이즘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법적 정당성을 따지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권력을 위임받았으므로 정당하다는 뜻이며 독재는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통성과 같다. 주변의 인정을 받아낸다. 국힘이 돌아서 경상민국으로 독립하면 주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주변에서 인정해 주면 독립국이고 팔레스타인처럼 이스라엘이 인정을 안 해주고 물고 늘어지면 괴롭다. 민주주의 본질은 전쟁이다. 전쟁이 약화한 것이 민주주의다. 내전이든 외전이든 터진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면 결국 전쟁을 한다. 민주주의는 만인대 만인의 휴전상태이며 물리력으로만 꺾을 수 있으므로 정당성이 있는 것이다. 전쟁만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자는 만인을 상대로 선전포고 했으므로 때려죽여도 죄가 안 된다. 형법상으로는 죄가 된다. 미친놈을 죽이면 그것도 죄다. 법리가 그렇다는 말이다. 예컨대 전쟁 중에 적군은 죽여도 된다. 민주주의 반대자는 본질에서 적군과 같다는 말이다. 나를 부정하고 나의 권리를 부정하는 넘은 인간이 아니며 그것은 물질과 완전히 같다. 자본주의도 이념이 아니다. 전쟁의 변형이다. 사람을 죽여 개체수를 조절하다가 생산력 전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무인도에 두 명이 사는데 생산력을 두 배로 올리는 방법은 한 명을 죽이는 것이다. 과거에 인류는 이 방법으로 살아왔다. 개체수를 조절해 왔다. 생산력이 증대되자 개체수 조절이 필요 없게 된게 자본주의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과연 생산력이 향상되는가 하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생산력이 하락하면 다시 개체수 조절문제가 떠오르는 것이다. 중국이 급부상하자 인류는 극우공포에 빠져있다. 근래 생산력을 중국이 독식했다. 자본주의에 실패하면 전쟁으로 가는 것이다. 이는 이차대전으로 증명되었다. 전후 평화가 유지된 것은 지속적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반대는 사회주의가 아니고 전쟁이다. 개체수 조절본능이다. 민주주의 정당성 – 반대는 전쟁. 휴전상태 붕괴 자본주의 생산력 – 반대는 전쟁. 개체수의 조절 자유주의도 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게임 참가자 자격이다. 과거에 시민계급 성인 남자만 참여했다. 즉 누가 전쟁을 하러 가느냐다. 과거에는 남자만 일하고 여자는 아기를 키웠으므로 자유주의는 전쟁을 하는 남자에게만 해당되었으나 근래는 맞벌이 전쟁이다. 이념은 사회주의뿐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냐,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자유주의냐 택일하라고 하면 피곤하다. 진보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고 보수는 기득권의 자유를 주장하며 어느 쪽이든 자유를 주장하는 점은 같다. 리버럴은 도시자유, 보수는 시골자유. 사회는 생산력을 두고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조절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안에서 진보 리버럴과 보수 자유주의가 대립하는 것이다. 조절은 어느 쪽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본질은 생산력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나 생산력은 향상 혹은 하락된다. 자유주의 – 초반은 경쟁으로 생산력 향상, 후반은 독점으로 생산력 하락 사회주의 – 생산력이 향상되었을 때 추가상승 가능. 초반 적용은 불가능. 자유주의로 가면 처음 좋지만 어느 순간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먹이사슬이 작동하며 포식자가 나타나서 생산력 향상보다 경쟁자 암살이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시장포화 - 제로섬 사회로 가는 것이다. 서부극 - 살인이 제일 잘 되는 장사. 무법천지 된다. 사회주의로 가면 생산력이 등장하지 않는다. 일정한 정도 생산력이 증대하면 사회주의로 조절해야 한다. 그 시점은 생태계가 등장하고 먹이사슬이 정착될 때다. 사자만 바글바글하고 사슴은 한 마리도 없으면 그 시장은 죽는다. 자본주의는 내부 모순으로 죽는다. 생산력 향상이 자유주의, 생산력 통제가 사회주의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유주의는 초반에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후반에 생산력을 하락시킨다. 사회주의는 초반에 생산력을 죽이지만 후반에 생산력을 상승시킨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제도의 조절장치다.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속도가 붙으면 사회주의로 가야 한다. 이는 신제품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된다. 다만 시장의 규모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 큰 시장은 통제를 늦추어도 되고 한국과 같은 작은 시장은 순식간에 독점에 의해 황폐해진다. 트럭과 자전거 차이. 트럭이 급정거하면 전복되고 자전거는 급정거를 못 하면 안 되고. 일의 우선순위로 따질 문제이며 선 자유 후 통제다. 자본주의 안에서 선 자유 후 사회다. 같은 자유주의 안에서는 선 도시 리버럴 후 시골 패거리 자유(보수)다. 좌파나 우파나 다 자유를 주장한다. 좌파의 자유는 개인주의, 성소수자, 페미, 다문화 이런 것이고 우파의 자유는 시골에서 부족장이 국가의 개입 없이 자체 해결하는 것이다. 가장이나 보스나 족장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 도시와 시골은 완전히 다른 자유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안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 감시장치일 뿐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사회주의는 없다. 극좌는 검증되지 않은 정치실험이다. 극좌와 극우는 인간이 아니므로 일단 패스. 이놈들은 절대 인간의 대화상대가 아니다. 어른의 대화에 끼워주면 안 된다. 좋은 제도는 자본주의 + 열린사회 + 혁신 + 경쟁 + 사회주의적 감시장치 + 민주주의 뒷받침이라야 한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삐꺽대거나 멸망하거나 뭐 안 그래도 인공지능 때문에 어차피 멸망하지만. 인간 사회가 발전하는 것은 오로지 경쟁과 혁신 덕분이다. 본질이 혁신인데 인간들이 엉뚱한 소리를 해서 미치겠다. 왜 본질은 놔두고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취미가 들렸는지. 자본주의, 열린사회, 경쟁,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혁신을 돕는 보조장치다. 결국 혁신하는 넘이 다 먹는다. 그것은 정당하다. 내 것을 내가 가진다. 닫힌사회, 독점, 자유방임, 독재는 혁신을 방해한다. 막연한 자유주의는 혁신을 방해한다. 혁신보다 착취가 쉽고 약탈이 쉬운데 미쳤다고 혁신하냐? 창의보다 표절이 더 돈벌이가 되는데 미쳤다고 창의하냐? 자유 방임주의=표절주의=대멸망. 무조건적 멸망확정. 필리핀은 70명의 귀족이 토지를 움켜쥐고 1년에 25퍼센트 지대수익을 올리는데 공장보다 낫다. 공장 해봤자 손해인데 미쳤다고 공장 하냐? 삼성, 현대 이익률 얼마냐? 사회는 정밀한 기계장치와 같은데 억지 프레임을 걸어서 자유주의다, 사회주의다 난장쳐. 멋대로 답정너 구사. 하여간 프레임을 걸어서 답정너를 구사하는 넘은 패 죽여야 함. 오냐오냐하고 대화상대로 받아주면 안 됨. 우주로 가는 로켓은 오로지 기술에 의해 가는 거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로 가는 게 아니다. 기술이 본질이며 이념은 자리를 깔아준다. 사회주의 만능으로 가면 아무도 앞장서지 않고 자본주의 만능으로 가면 누군가 앞장서는데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는 자가 나타난다.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죽는다. 누군가는 문제를 풀고 누군가는 컨닝 하는데 컨닝하는 넘이 이긴다. 공부할 시간에 체력을 키웠으니. 모범생.. 공부만 한다. = 실패 컨닝생.. 컨닝 + 자기관리 = 성공 묻지마 자유주의는 반칙하는 넘이 이기는 세상이다. 혁신을 중심에 놓고 혁신을 돕는 자유주의, 혁신을 강제하는 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 혁신을 안 하고 세습에만 골몰하는 기업은 파산시켜야 한다. 혁신을 하면 세습을 해도 용서해야 한다. 프레임을 버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