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느냐'고 물으면 '그건 질문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소설가 김훈 혹은 '나의 존재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인간은 이유없이 그냥 존재한다'고 답하거나 승려 법륜 이런건 당연히 개소리다. 인생의 철학 말이다. 왜 사는지, 왜 존재하는지,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는 누구인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존재는 사건이다. 모든 사건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답을 모를 수도 있다. 자동차는 자신이 왜 달리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운전자는 안다. 객차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관차는 안다. 개인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인류는 가는 길을 알고 간다. 지도자는 길을 안다. 그 길은 진보의 외길이다. 사물이냐 사건이냐? 사물로 보면 인생의 정답은 없다. 사건으로 보면 정답이 있다. 무엇이 내게 에너지를 주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하루를 숨쉬게 하고, 세상을 향해서 부단히 발언하게 하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그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집단에서 온다. 집단과의 긴밀한 관계에서 그리고 환경과의 부단한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집단이 한 방향으로 가면 관성력으로 기세가 있다. 모든 에너지는 궁극적으로 관성력에서 나온다. 구체적으로는 무의식에서 나오고 호르몬에서 나온다. 이건 물리학이다.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가,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문명 단위의 사건에 가담했는지다. 집단의 관성력을 빼먹고 있는가다. 그렇지 못할 수 있다. 소인배의 에너지는 식욕과 성욕에서 나온다. 집단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기라면 자신의 소속집단을 모른다. 자신의 가족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동물의 식욕과 성욕이 유일한 에너지원이 된다. 그러나 한 살만 되어도 제법 눈치를 챈다. 알건 다 아는 거다. 집단 안에서 자신이 막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재롱을 부려서 주목을 끌고자 한다. 귀여움 공격을 가하여 집단을 조종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자신이 가족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조건을 걸고 반대급부를 기대하며 제법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식욕과 성욕을 넘어서 그 이상의 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소인배는 남과 비교하여 비교우위를 달성하려고 한다. 이기려고 한다. 형은 동생을 이기려고 한다. 동생은 형에게 대들려고 한다. 그 방법으로 집단 속에 녹아들고자 한다. 집단 안에서 확실한 역할을 얻으려고 한다. 집단에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사실이지 부족민은 열 살만 되어도 소녀와 소년을 추방한다. 추방된 소년들이 무리를 만든 것이 화랑도와 같은 고대 청소년 집단이다. 부족민의 전사집단이라고도 한다. 어느 나라든 유사한 것이 있다. 소년이 무리에서 추방되면 죽는다. 어떻게든 동료를 제치고 이겨서 역할을 얻어야 집단에 자리를 잡는다. 거기서 삶의 동기를 얻는다. 중간배는 신분상승을 원한다. 결혼이 그러하다. 결혼하려면 파트너와 급이 맞아야 한다. 급을 맞추기 전에 먼저 만나야 하고 만나려면 돋보여야 하고 돋보이려면 뾰족한 지점에 가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신분상승할 수밖에 없다. 제자리에 머무르면 무리 속에 파묻히게 되고, 파묻히면 눈에 띄지 않고 따라서 만나지 못한다. 개인적 승리가 아니라 집단적 상승이다. 대인배는 대표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리더가 되려고 한다. 두목이 되려고 한다. 가장이 되려고 한다. 책임자가 되려고 한다. 동물로 말하면 어미가 되어 새끼를 돌보려고 한다. 역할을 획득하고자 남을 이기려 하는 것도 아니고 파트너를 만나고자 높은 그룹에 들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약자를 돌보려고 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나이로 구분하면 소인배의 승리지향은 10대, 중간배의 신분상승은 청년, 대인배의 대표성 추구는 어른이다. 진정한 것은 무엇인가? 완전성의 획득이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편을 만들어서 에너지를 조달하는데 있다. 음악가는 완전한 음악을 원한다. 화가는 완전한 작품을 꾀한다. 요리사는 완벽한 요리를 조리한다. 이것이 진정한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나를 배제한다. 완전성은 내가 어떻게 되는게 아니다. 완전한 요리를 누가 먹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요리사가 요리를 먹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먹는다. 음악은 작곡가가 듣는 것이 아니다. 청중이 듣는다. 완전한 음악, 완전한 그림, 완전한 요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의 확인이 중요하다. ● 대표성 – 집단의 리더가 되어 약자를 보호하려고 한다. ● 신분상승 – 파트너를 찾아 급을 맞추도록 상승하고자 한다. ● 비교우위 – 이겨서 역할을 얻어 추방되지 않으려고 한다. ● 본능 – 성욕과 식욕의 동물적 본능에 반응한다. 신이 있는지가 중요할 뿐 신이 누구와 친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이냐 신이 아니냐 오직 이다/아니다의 판단이 중요할 뿐이다. 신이 특정한 누군가의 편이라면 신이 아니다. 내 입에 맞는 요리를 찾으면 이미 틀려먹었다. 나를 배제해야 한다. 콜라에는 햄버거가 어울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기소개는 금지되어야 한다. 자체의 논리를 따라 그것을 자연스럽게 완결시키려고 하는 것이 진짜다. 그 안에 관성력이 작동하고 있으며 거기에 빨대를 꽂아 에너지를 빼먹는 것이다. 소유냐 존재냐다. 소유는 자기를 개입시킨다. 존재는 자기를 배제한다. 아기의 본능, 십대의 비교우위, 청년의 신분상승, 어른의 대표성은 모두 자기를 개입시키고 있다. 완전성은 자기를 배제한다. 모든 완전한 것에는 기세가 있고, 진보가 있고, 발전이 있고, 긴밀하고 부단한 상호작용이 있으며 그 앞에서 인간은 전율하게 되고, 에너지를 얻게 되고, 기운을 북돋우게 되고, 벌떡 일어서게 되고, 흥분하게 되고 달려들게 되고, 삶의 의욕을 찾고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대표성에 도전한다. 동물이라도 어미가 되면 새끼를 보호하게 된다. 강자가 되어 약자를 보호하고, 집단을 보호하고 무리를 책임지려는 행동을 한다. 이는 어른의 것이요, 청소년이라면 대표성을 발견하지도 못한다. 청년은 그저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데 만나려면 일단 남들보다 돋보여야 한다. 군중 속에 파묻혀 있으면 만날 확률은 없다. 대개 신분상승으로 나타나지만 신분상승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신을 만남의 장소에 둘 수 있다. 그곳이 어디든 뾰족한 장소다. 게임을 해도 스포츠를 해도 뾰족한 장소는 있다. 도드라진 위치는 있다. 튀는 곳이 있고 주목받는 장소는 있다. 특이점은 있다. 주인공의 무대가 있다. 그것으로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한다. 청년이라면 말이다. 소년이라면 집단에서 추방되지 않는 것이 성공이 된다. 이겨야 추방되지 않는다. 지면 서울대에서 추방되어 지방대로 밀려나는 것이다. 이기는 것이 소년의 동기가 된다. 아기의 철학은 본능이요, 소년의 철학은 승리요, 청년의 철학은 상승이요, 어른의 철학은 대표다. 진정한 자는 자연의 완전성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패러다임에는 자체 에너지의 순환이 있다. 진보가 있고 발전이 있다. 관성력이 있고 가속도가 있다. 거기서 에너지를 조달해야 진정하다. 흐름에 올라타고 함께 나아가면 에너지를 얻는다. 방향의 판단이 맞아야 한다. 역주행하면 에너지는 없다. 고립되면 에너지는 없다. |
"흐름에 올라타고 함께 나아가면 에너지를 얻는다. 방향의 판단이 맞아야 한다. 역주행하면 에너지는 없다. 고립되면 에너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