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일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진리는 하나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1은 2를 거친다. 2에서 1이 나온다. 2의 나란함을 1이라고 한다. 수학은 추상이다. 추상은 추려서 추출하는 것이다. 즉 빼는 것이다. 2에서 1로 줄어드는 것이 모든 사유의 출발이다. 2는 상대성이다. 1은 절대성이다. 상대성을 절대성으로 바꾸는 것이 사유다. 그 외에 나머지는 반응하는 것이지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감소해야 한다. 우주는 에너지 하나다. 에너지는 연결과 단절 둘이고 둘은 상대성이고 절대성은 방향전환이다. 우주에 방향전환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연결이 먼저다. 연결이 단절보다 커야 한다. 단절되면 0이고 0은 단절할 수도, 연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즉 우주는 0을 피하게 되어 있다. 그 방향은 엔트로피의 증가다. 존재는 연결이 단절보다 커야 지속가능하게 된다. 연결과 단절은 진보와 보수로 나타난다. 진보가 보수보다 커야 한다. 공격이 방어보다 커야 한다. 전쟁은 공격과 방어다. 공격이 방어를 이기고 진보가 보수를 이겨야 정치가 작동한다. 여러 가지 주의가 있다지만 자유주의뿐이다. 나머지는 게임의 초대 과정이다. 원래 19세기 자유는 보수가 주장하는 자유였다. 리버럴한 민주당 자유는 자유가 진보한 것이다. 정치는 진보자유와 보수자유의 싸움에 진보자유가 이기는 것이다.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 전투는 제병합동이 강철대오를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 전술이 발전을 한다. 강철대오가 이기면 축구의 포메이션은 필요가 없다. 그럼, 축구를 왜 하냐? 인간은 내부지향과 외부지향이 있다. 외부지향이 이기는게 선이다. 한국인의 감성지향은 내부지향이다. 즉 멸망하는 구조인 것이다. 내부에서 더 내부로 들어가는 결정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부지향에서 외부지향으로 방향전환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게 가능하려면 반드시 외부에서 구원군이 와줘야 한다. 그래서 진보는 항상 외부에 유격대를 빼놓는다. 정의당을 외부에 두는 것이다. 이게 내부로 들어오면 망한다. 문재인이 배반당해 실패한 것이 그렇다. 왜냐하면 에너지를 조달하는 방법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유효율이다. 그 외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없다. 엔트로피 증가란 공유해체다. 무엇을 하든 공유가 해체된다. 무언가를 공유하는 방법은 외부 세력과 연결하거나 내부를 쥐어짜거나뿐이다. 내부지향은 내부의 복잡도를 높이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자기관리에 골몰하는 것은 자기를 쥐어짜는 행동이며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정형행동이다. 일종의 정신병이다. 타인과 공유할게 없어 자신과 공유한다. 타인의 신체를 공유하는게 아니라 오른손과 공유한다. 막연히 무한동력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아는게 아니다. 그것은 법칙 뒤에 숨는 것이다. 무한동력을 이해했다면 당신은 우주 안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한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예술 다 이 상대성>절대성 일원성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칭은 2, 축은 1이다. 의사결정은 대칭의 축을 이동시켜 에너지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섬은 내부지향이다. 반도는 내부지향과 외부지향 둘 다 가능하다. 대륙은 외부지향이지만 커지면 내부지향으로 바뀐다.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으면 내부지향을 할 수밖에. 섬이라도 어쩌다 길목이 되면 외부지향이 된다. 영국이 그렇다. 바이킹이 지나가는 통로였다. 내부지향으로 바뀐게 브렉시트다. 윤석열은 내부지향이다. 이준석 자르고 유승민 자르고 한동훈 자를 준비 끝났다. 외부지향으로 방향전환을 하면 되잖아. 불가능하다. 외부지향에서 내부지향으로 방향전환은 가능하지만 그 역은 불가능하다. 에너지의 단절 때문이다. 외부지향에서 내부지향으로 바꿀 때도 일대는 외부에 남겨놔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물이 들어오면 다시 외부지향으로 틀 수 있다. 이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