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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65 vote 0 2023.11.26 (18:08:19)

    조르주 멜리에스에 의해 영화의 편집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필름을 잘라서 붙이면 갑작스런 장면의 전환에 관객들이 당황하지 않을까? 멀미를 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아무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픽션이 가능하잖아? 장면을 이어 붙여 사기를 칠 수 있잖아.


    인공지능이 작정하고 거짓말을 하면 인간은 당해낼 수 있을까? 마법 같은 영화의 편집기술로 픽션을 쓰면 어떨까? 영화의 탄생이다. 충격받아야 한다. 인간의 뇌는 자기를 속이는데 능하다. 인간은 자신이 못 본다는 사실을 못 본다. 눈동자의 맹점과 같다.


    세상은 변화다. 존재는 변화다. 지식은 변화를 추적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눈으로 보면 된다. 변화가 없다면 과거를 기억할 필요도 없고 미래에 대비할 이유도 없다. 변화가 없으면 지식도 없다.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것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변화는 단절한다. 지식은 단절된 것을 복구한다. 복구하는 방법은 연결이다. 연결고리는 인과다. 인류의 문명은 수학의 기반 위에 서 있고 수학은 인과의 기반 위에 서 있다. 인과가 모든 것이다. 지식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런데 인과는 시간이다. 공간은?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인류 문명은 애초에 출발점을 잘못 찍었다. 인과는 변하기 전과 변한 다음을 각각 보고 둘을 비교하는 것이다. 변화의 현재 진행형을 보지 않는다.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데 인과는 현재진행형이 없다. 허술하다.


    변화는 공간에서 일어나는데 인간은 시간을 추적한다. 주체와 객체의 문제다. 인간이 판단의 주체라면 변화는 객체다. 지식을 구하는 것은 주체가 객체에 개입하는 것이다. 개입하면 왜곡된다. 변화는 불변과 비교된다. 인간의 관측이 변화다. 변화로 변화를 판단할 수 없다.


    영화의 장면이 바뀌었는데 관객은 멀미를 하지 않는다. 이는 뇌가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변화를 보지 못한다. 인과는 변하기 전의 변하지 않음을 보고 변한 후의 변하지 않음을 보되 변화의 현재진행을 못 본다. 인과는 변화를 추적하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보지 않는다.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추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매개다. 매질이다. 촉매다. 매는 붙잡는다. 붙잡는 것은 밸런스다. 구조다. 축과 대칭이다. 메커니즘이다. 시스템이다. 닫힌계다. 그것이 있다.


    우리가 아는 인과는 메커니즘의 부속품이다. 하나의 메커니즘을 두고 관측자인 인간이 원인 측과 결과 측에서 시차를 두고 두 번 바라본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하나를 둘로 착각하는 데서 모든 오류가 일어난다. 인과는 존재의 사실이 아니라 관측자인 인간의 형편을 반영한다.


    공간을 보면 소실점이 있다. 점은 하나다. 언제나 1이다. 우리는 보여지는 둘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를 찾아야 한다. 존재는 그냥 있다. 그냥 있는 것은 1이다. 1은 불변이다. 근원에서 보면 우주 안에 어떤 변화도 없다. 변화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위반한다. 변하면서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서 변하는 것은 관계다. 관계가 변할 뿐 그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움직임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움직이려면 그 자신이 변해야 한다. 움직임은 변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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