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직관이 있다. 영화는 직관의 예술이다. 말이 필요 없다.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라는 영화가 있다. 사창가 포주 컨셉으로 뜬 흑인 가수가 돈을 벌어서 뜬금없이 영화감독이 되려고 나댄다. 영화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그에게는 감이 있었다. 포주 컨셉 아이디어도 어떤 노숙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발전시킨 것인데 그것도 감이다. 감으로 대박을 치더니 감으로 영화를 만든다. 무명가수가 감으로 노래 몇 곡은 히트시킬 수 있지만 영화제작은 차원이 다르지. 만들었다. 조잡했다. 대박쳤다. 엥? 이상하잖아. 무려 실화다. 그에 의하면 영화의 본질은 쿵후액션, 자동차 추격씬, 왕가슴 여성 3박자라는 거. 이 셋만 갖추면 영화 뜬다고. 왜? 극장은 시내에 있고 시내는 흑인 거리다. 흑인은 자동차가 없어 도보로 이동되는 다운타운에 살고 그곳에 흑인이 오는 극장이 있다. 흑인은 할 일이 없으므로 하루 종일 극장에 죽치고 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쿵후액션, 자동차 추격씬, 왕가슴 여성뿐이다. 말 된다. 60년대라면 서부극이다. 서부극에는 서부가 나와야 한다. 인디언이 나와야 한다. 말 타고 역마차를 추격하는 스펙타클이 있다. 이쯤 되면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감이 왔을 것이다. 그것은 B급 정서다. 영화는 본질이 B급이다. 극장 스크린에다 난해한 논문을 쓰려고 하면 안 된다. 주성치 영화처럼 팝콘 흘리면서 킬킬거리는게 영화다. 그러나 박찬욱은 아직 영화가 무엇인지 모른다. 엘리트가 어설프게 B급 흉내. 진중권이 노동자를 위하는 척. 대중은 직관이 있다. 진중권의 계략은 1초 안에 간파된다. 근래에 본 좋은 영화로는 넷플릭스에 나오는 '파워 오브 도그'를 들겠다. 서부영화인데 과연 서부가 있다. 뉴질랜드에서 찍은 가짜 서부지만. '피아노' 만든 감독이 만들었다. 이 영화는 박찬욱의 겉멋만 든 '헤어질 결심'과 같은 예술지향적 영화이고 똑같이 평론가의 극찬을 받는 영화지만 반대다. 한쪽은 찐따고 한쪽은 쿨하다. 한쪽은 넘치고 한쪽은 적당하다. 한쪽은 구조론적이고 한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공간친밀이다. 영화는 공간으로 조져야 한다. 닫힌공간이면 더욱 좋다. 서부는 일단 로키산맥이 앞을 딱 틀어막고 있다. 갇혀버린 것이다. 숨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온다. 공간을 열어주면 안 된다.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도 서부에 온 이상 얄짤 없다.
넌 갇혔어. 거기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박찬욱은 반대다. 그 역시 B급을 존중한다. 대중의 직관은 B급이다. 영화는 대중이 보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정의당 훈장질을 못해 안달 나 있다. 미장센 과잉. 연출과잉. 복선이 너무 많다. 너무 관객을 지치게 한다. 직관으로 조져야 하는데 논문 쓴다. 나같이 까칠한 관객에게는, 예감이 맞아버렸다. 불편할 것 같아서 안 봤는데 역시 불편했다. 우선 그 바다는 동해인데 서해다. 이해했는가? 이건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일반관객이라면 동해인지 서해인지 알게 뭐야? 영화는 공간으로 조져야 한다. 감독도 안다. 그래서 안개를 사용한다. 문제는 그게 그림이 아니라 대사로 나온다는 거다. 그것도 여러 번. 예컨대 서부극이면 이곳은 서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박찬욱은 진짜 안개를 못 본 거다. 바다안개가 얼마나 끔찍한지 몰라. 이 영화의 컨섭은 안개야. 안개로 조지는 영화라고.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지독한 안개가 가득할 거야. 대사로 이런다. 오글거리게. 진짜 안개 발끝에도 못 가봤다. 안개가 처음 강에서 확 치고올라올 때의 느낌은 없다. 화면을 뿌옇게 해놓고 안개라고 우긴다. 먹물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 설명충 행동. 경찰서는 너무 예쁘다. 무슨 미술 전시장 같다. 거기서부터 숨이 막힌다. 저런 경찰서가 어딨어? 판타지물인가? 지붕에 녹색 페인트도 방금 칠한 듯. 심지어 오래된 칠인 것처럼 방금 칠해 놨다. 절벽은 CG 티가 나고. 탕웨이가 영화 망쳤다. 이 영화는 색계 속편이다. 색계는 친일파를 사랑하는게 진정한 사랑이란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 나사 빠진 소리. 한술 더 뜬다. 진정한 사랑은 죽을 때까지 나를 잊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거라고. 좋다. 근데 왜 배우가 탕웨이지? 탕웨이는 지적이고 엘리트고 세련되었고 인간을 가지고 논다. 근데 컨테이너 타고 밀항해서 궂은일을 하며 폭력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설정이라고. 그럼 파이란이지. 말이 되냐? 탕웨이라면 그런 머저리 남자는 단숨에 제압해 버렸을 듯. 포스가 장난이 아니잖아. 내가 깡패인데 마누라가 탕웨이면 하루에 열 번 절한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 남편은 십 년 넘게 단순한 일을 한 늙은 공무원인데 폭력가장이고 산을 잘 타는 젊고 섹시한 유튜버? 늙고 힘없고 지루한 일을 하는 공무원이 폭력을 쓸 힘이 넘치고 암벽등반을 해? 늙고, 지루하고, 공무원이고, 에너지가 없고, 비열하고, 힘이 넘치고, 암벽을 타며 시대를 앞서가는 매력쟁이, 귀염둥이에 세련된 꼰대가장에 주먹질이라고? 이게 연결이 되냐? 다중인간인가? 멀티를 뛰냐? 그럼, 남편이 주인공이라야지. 말 짜맞추려고 억지설정. 손이 부드러웠는데 등산 한 번 했다고 딱딱해지냐? 말이 돼? 손이 거칠어졌다고 한다면 몰라도. 앞뒤가 안 맞는 억지 복선이 난무한다. 주성치 영화라면 그냥 낄낄거리고 보는데 이건 초고도 집중을 하게 해놓고 상황에 안 맞는 개소리를 시전하는 것이다. 어휴. 굉장히 많은 떡밥을 던지고 일일이 회수하는데 전혀 회수가 안 된 거다. 떡밥이 썩었다. 말 한마디, 장면 하나하나에 무언가 있다. 뒷부분과 연결이 된다. 근데 연결이 안 된다. 예컨대 우리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나온다. 뒤에도 우리라는 말이 나온다. 근데 억지. 뒤의 우리에서 앞의 우리를 떠올려야 한다면 관객은 무슨 입시 시험장에 와 있다는 거냐? 골때려. 왜 영화가 망했는가? 공간친밀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떤 공간을 설정하고 공간을 파고드는 것이라야 한다. 모든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 그것이 있었다. 지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영화라면 계속 전쟁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전쟁 속에는 전략이 있고, 전략 속에는 전술이 있고, 전술 속에는 전투가 있고, 전투 속에는 총알이 있고, 총알 속에서 화약이 터지고, 화약은 혈관을 뚫고 피를 뿌린다. 계속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밖에서 안이라는 방향성이 명확해야 한다. 승부는 여기서 나는 거. 도로 밖으로 기어 나오는 순간 망한다. 이 영화는 경찰영화냐? 경찰이면 마동석이 나와야 되는데 박해일? 아니잖아. 엘리트 여성 나왔어. 근데 왜 간병을 하는 거지? 그러다가 갑자기 이포로. 불륜영화냐? 마지막에는 사랑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는다. 이게 진짜 사랑이라고. 서부영화가 동부로 가면 망한다. 영화 밀수는 해녀영화인데 육지로 가서 망했다. 바다에서 시작하고 바다로 끝났으면 천만 찍는 건데. 예고편 보고 절망 류승완 또 삽질하네. 나한테 와서 자문을 구했어야지. 니가 바다에 대해서 아는게 뭐냐? 뱃일해 본 사람한테 자문을 구했어야지. 타짜 찍으려면 장병윤을 고문으로 모셔야 한다. 영화 찍을 장면을 바다에서 찾지 못하고 육지와 바다를 오가면서 헐렁해진 거다. 공간을 조이고, 또 조이고, 거기서 한 번 더 조여야 하는데 잘 조이다가 조인성이 군천으로 내려오면서 헐렁해진다. 전국구 보스가 달랑 부하 한 명 데리고. 말이 되냐? 그건 동네 불량배지. 이 영화는 스릴러인지 애정영화인지 불륜인지 하다가 옴니버스가 된다. 자세히 보면 영화 속에 영화가 여러 편. 통합되지 않고 팔다리가 따로 논다. 트집을 잡자면 한이 없고 한마디로 박찬욱은 영화를 모른다. 180만 들었으면 올 만큼은 온 것이다. 너무 산만하다. 과잉을 줄여야 한다. '친절한 금자씨'가 아직 이 영화에 돌아다닌다. 심지어 파이란도 낀다. 관객을 이겨먹으려는 의도를 들키면 안 된다. 김기덕이 만들었다면 관객이 안 들거니까 상이나 받아가라고 하겠지만 이건 상만 노리는 영화가 아니다. 관객이 들어야 하는 영화라면 관객이 들게 만들어야지. 정의당 멸망공식과 빼박이다. 감독이 결말을 지을 자신이 없으면 열린결말을 핑계로 얼버무린다. 열린결말 좋아하네. 망한 거다. 영화는 가둬서 조지는 예술이다. 관객은 직관적으로 그것을 안다. 관객의 직관을 존중해야 한다. 이포로 오는 순간 열렸다. 망했다. 탕웨이는 미스 캐스팅이다. 영화가 살려면 어설픈 애정타령 집어치우고 사이코패스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한 번 더 보려면 이 방법밖에 없잖아.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이코패스 대사다. 의심이라는 말도 이상하다. 의심은 마음속으로 하는 건데 감독이 대사로 스포일러를 너무 많이 한다. 모호필름 만들 때부터 모호했다. 그 모호를 아직도 달고 다닌다. 조지필름으로 바꿔야 뜬다. 감독은 영화의 답을 찾지 못하고 애매해졌다. 엄여인도 미녀라던데 미녀 사이코패스는 확실히 말이 되지만 미녀 사이코패스 지적인 엘리트 불쌍한 파이란은 곤란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3일치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치가 답이다. 모아져야 한다. 흩어지면 죽는다. 가둬놓고 조진다. 파이란과 색계와 금자씨를 섞어놓고 방황한다. 180만이면 올 만큼 온 거다. 가두려고 했는데 그림이 아니라 미결이라는 대사로 가둔다. 주제를 배우가 입으로 말하는게 어딨어? 감독이 스포일러 대마왕. 설명충. '블랙코미디도 훈계투가 되면 재미없어진다.' 김은형의 친절한 금자씨 평. 근데 아직도 훈계하고 있다. 20년간 발전이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