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돼지 멱을 따는 정도의
강심장이 아니면 동물관련업에 종사하지 못한다. 의사가 되려면 살아있는 토끼 배를 가르는 훈련을 해야 하고
동물구조를 하려면 안락사를 무수히 경험해야 한다. 몇 년 전 있었던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회장의 일탈과 같다. 지금 교도소에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홀트아동복지회 아동수출과 같다. 부모가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고아원에 아기를 맡기면 바로 해외에 팔아먹는다. 관계자는 말한다. 부모가 말은 저렇게 하지만 찾으러 안 와. 그냥 버리는 거야. 팔아먹어도 돼. 그렇게 해외로 팔려나간 한국 아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전 국민이 다 알면서 모르쇠하는 인권 범죄다. 비겁한 한국인들. 당신네는 인간실격이다. 그때 해외에서는 한국 전쟁고아 입양 안 하면 지성인 대접을 못 받았기 때문에 한국 아기 입양붐이었다. 수요 폭증. 그래서 우디 알렌은 한국 마누라를 입양했다. 돈 주고 사 온 매매혼. 그런 인권참상을 겪으면서도 희희낙락인 한국인들 한술 더 뜨는 꼬라지 봐라. 인간에게 통제되는 모든 동물은 일종의 정신질환에 걸린 상태이며 야생에서 개는 두목개한테 충성하지 않는다. 성견이 되면 적당한 시점에 독립하고 죽을 때도 식구들 모르게 혼자 동굴에 가서 죽는데 다른 개들이 찾지 않는다. 때가 되면 가는 거지. 개를 아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게 정신질환이다. 종교에 냉담한 한국인들이 종교를 만들어낸다. 하긴 종교가 정신병이지. 교회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가르치지만, 한국 기독교도는 절대 생육하지 않고 절대 번성하지 않으면서 인맥놀음으로 이용한다. 한국인들은 종교적인 인간이 아니다. 믿는 척하는 거다. 한국인 절반이 기독교도인데 이들만 생육하고 번성해도 인구 넘친다. 어리석은 동물교 광신도들을 강형욱이 등쳐먹은 거다. 알파독 없이 카밍시그널만 가지고는 교육이 안 된다. 야생에서 어미 개는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지, 당근만 사용하지 않는다. 긍정경험을 통해 훈련한다는 것은 머리 좋은 일부 개들한테나 먹히는 것이다. 사람도 교육이 안 되는 넘은 안 되는데 개라고 해서 다 서울견대 가는가? 어미 개는 말 안 듣는 꼴통 개를 사정없이 물어버린다. 젖뗄 때는 정도 같이 뗀다. 알아서 독립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이웅종 소장은 딱총화약을 터뜨린다거나 해서 단박에 교정한다.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을 거부하는 정신병자 견주들이 카밍시그널을 찾지만 그것은 교육하지 않는 방법으로 교육해 달라는 말이다. 교실붕괴는 있어도 견실붕괴는 없다? 동물사랑? 살아있는 햄스터를 뱀한테 먹이로 주면서 동물을 사랑한다고? 그게 말이나 되나?
1. 개를 아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정신질환자다. 애완이라는 게 자신의 정신병을 개한테 넘기는 것이다. 혼자 앓는 것보다 같이 앓으면 기쁨 두 배. 동물에 대한 사랑과 학대는 정확히 같은 말이다. 올리버 쌤 정도의 넓은 공간을 동물에게 제공할 수 없다면 정신병을 욕심내지 말자. 한국인의 과잉교육도 같다. 부모들은 내 자식 잘되라고 학원에 보낸다고 말하지만 정신병이다. 교육은 그 자체로 압박이다. 압박하지 않고 교육한다는 말은 과거 한때 유행했던 농사를 짓지 않고 농사짓는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잡초와 곡식의 경쟁력은 백 대 빵이다. 곡식이 1센티 자랄 때 잡초는 1미터 자란다. 전멸이다. 실험해 봤는데 농사를 짓지 않고 팽개쳐 두었더니 알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곡식이 자라기는 개뿔. 잡초에 묻혀서 보이지도 않더라. 수확량은 정확히 0. 교육도 압박, 농업도 압박, 구조론도 압박이론이다. 방향이 충돌하는 모순된 압박이냐, 방향이 일관된 순조로운 압박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교육은 압박이다. 모든 사랑은 압박이다. 인간들이 거의 정신병이므로 자신에게 쏠린 압박을 개와 나누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압박이라는 본질을 잊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