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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250 vote 0 2019.03.11 (19:26:55)

    인간의 행동에는 이유가 없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성립되는 이유는 자유의지의 작용이라고 주장되는 야망, 탐욕, 신념, 의지, 목적 따위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럴듯한 목적이나 계획이나 야망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어떤 상황에 휩쓸려서 그 거센 에너지 흐름에서 탈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이 물어보면 난처해진다. 너 왜 그랬어? 분위기에 휩쓸려서라고는 차마 말을 못한다. 기세에 눌려서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 한다. 어른들이 시켜서라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쪽팔리잖아. 그러므로 나의 대단한 야망 때문에, 나의 거대한 계획과 탐욕 때문에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그런 언설들은 죄다 변명에 불과하다. 


    인간의 행동에는 그다지 이유가 없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관성의 법칙 때문이다. 사건은 연결되고 연결되어 계속 이어져 간다, 그 연결의 사슬을 끊고 탈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친일파는 왜 친일했을까? 특별한 이유가 없다. 부추김에 넘어간 것이다. 남이 시키니까 겁을 먹고 복종한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가고 친일간다.


    휩쓸리고 만다. 일본군의 침략에 매서운 기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떠밀려간 것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행동에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어쩌다 발을 담그게 된다. 주변에서 부추기고 사기꾼이 바람을 잡으면 잘도 넘어간다. 한 번 진입해 들어가면 제 발로는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짓을 하는 이유는 그것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는 왜 감옥을 나와서도 재범을 저지르는 것일까?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대도 신창원은 왜 좀도둑질을 계속하는 것일까? 그것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도둑은 남의 집 문을 딸 줄 안다. 그래서 문을 딴다. 문이 있으므로 문을 따는 것이다. 떨지 않고 태연하게 거실까지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간다. 그러다가 잡히고 만다. 


    진중권은 거기서 왜 그러고, 조영남은 왜 그러고, 변희재는 왜 그러는 것이며 안철수는 또 왜 그러는 것일까? 부추기면 넘어가고, 할 줄 알면 계속하고, 이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끊을 타이밍은 계속 놓치게 된다.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되는 게 아니라 반복훈련으로 되는 것이다. 


    안철수는 갑자기 머리가 돌아서 주제에도 불구하고 대선에 나간 게 아니고 말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 사나운 정치게임에서 탈출할 찬스를 잡지 못한 것이다. 변희재도 마찬가지다. 부추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속성이다. 결 따라 계속 가는 사건의 메커니즘 때문이고 관성력과 기세 때문이고 다음 단계 때문이다.


    달리는 황소 등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없기 때문이고 이미 습관이 되어서다. 거기서 벗어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걸려 있는 궤도에서 그것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 이유는 없다. 윤서인은 왜 그러는 것일까? 강용석은 왜 그러는 것일까? 야망? 탐욕? 신념? 쾌락? 없다.


    그런 거 없다. 윤서인에게 대단한 친일의 야심은 없다. 강용석에게 대단한 보수꼴통의 신념은 없다. 그냥 할 줄 아는 짓을 계속하는 것이며 친구들이 그쪽에 몰려 있어서 거기서 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바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짓을 하게 하는 플러스측 이유는 없지만 그것을 멈추지 못하는 마이너스측 이유는 있다. 


    세상은 마이너스다. 나쁜 짓을 더하는 플러스를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멈추는 마이너스를 실행하지 못한다. 시스템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대개 환경에 문제가 있다. 환경과의 관계가 긴밀하지 못하고 붕 떠 있다. 상호작용이 부족한 것이다. 주변에 말려줄 사람이 없다. 답은 언제나 마이너스에 있다.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을 말려줄 사람을 미리 확보해 두어야 한다. 노무현을 말려줄 문재인과 문재인을 말려줄 김정숙이 필요하다. 왜 나쁜 짓을 하느냐고 묻지 마라. 왜 나쁜 짓을 멈추지 못하는지를 물어라. 김정은이 핵개발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뒷배를 봐주는 군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바퀴와 도로를 연결하는 것은 브레이크다. 김정은이 난폭한 폭주에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것은 시스템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트럼프 역시 관종짓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지지세력의 질에 문제가 있다. 트럼프는 평론가 그룹과 전문가 그룹의 충분한 조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현명한 군주였다가 나이 들어서 폭군이 된 경우는 역사에 무수히 많다. 젊었을 때는 말려줄 측근이 있고 나이 들어서는 없다. 항우가 성공하기 전에는 말려줄 항량이 있었으나 성공한 이후에는 범증이 떠나고 없었다. 유방의 곁에는 말려줄 사람이 많았다. 그 차이다. 나폴레옹도 말려줄 사람이 없어 망했다.


    의자왕도 젊었을 때는 해동증자로 빛났으나 늙어서는 폭군이 되었다. 연개소문도 마찬가지 혼자 활약했을 뿐 시스템을 꾸리지 못하니 말려줄 사람이 없었다. 조조도 그렇게 망해갔고 사마의도 그렇게 망가졌다. 무리 가운데 너무 실력이 출중해서 감히 조조를 말리고 사마씨 일족를 견제할 사람과 세력이 없었던 것이다. 


    통제가능성을 상실할 때가 인간이 망가지는 지점이다. 자신을 말려줄 시스템을 의식적으로 갖추어야 하며 그것은 환경과의 긴밀한 관계다. 정당을 지지하고 진영에 소속해야 한다. 이념이 말리고 진보가 말리고 동료애가 말린다. 동지가 있어야 한다. 철학이 있어야 한다. 에너지는 통제되어야 한다. 정당정치도 마찬가지다.


    중국 공산당은 브레이크 시스템이 없다. 일본 자민당도 마찬가지다. 위구르족을 탄압하고 티벳을 억압하지만 누가 중국 공산당의 입에 재갈을 물릴 것이고 남북통일을 방해하고 있지만 누가 자민당 아베의 입에 고삐를 채우겠는가? 인간은 원래 주변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줄 때까지 계속 사고를 치게 되어 있다. 원래 그런다.


    자기에게 허용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탐색하기 위함이다. 대립각을 세워 상대방의 반작용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거기서 자기 행동의 근거를 조달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공부하여 공자의 가르침으로 나침반의 지침을 삼아야 한다. 자유의지는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데 있다. 학문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19.03.11 (20:29:13)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선명하게 보이는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3.12 (02:41:17)

"자유의지는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데 있다. ~ 자신을 말려줄 시스템을 의식적으로 갖추어야 하며 그것은 환경과의 긴밀한 관계다."

- http://gujoron.com/xe/1070428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9.03.12 (10:28:55)

맞습니다. 이유는 없고 할 줄 아는 게 그거 밖에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그져 빠져들어 가는 것이지요. 말려줄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요. 말려줄 사람을 옆에 두는 것도, 누군가를 옆에 둘 줄 아는 사람이어야 가능한 것이지요. 말려주는 사람도 그런 능력이 있으니까 말리는 것이구요.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내버려두면 망합니다. 문제는 말릴 줄 모르면서 말리다가 사단이 나네요. 시대의 기세를 탄 팀단위의 성장 시스템이 아니면 안됩니다. 참 쉽고도 어려운 길입니다.  


[레벨:3]hojai

2019.03.12 (15:06:08)

승리나 정준영도 같은 맥락 같습니다.

자신에게 허용된 특권와 자유를 한없이 누리면서 한계를 시험해보는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03.12 (16:56:10)

특히 정준영은 초등학교만 한국에서 다녔고

외국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방인의 심리가 되어


주변에 말려줄 사람이 없는 것이며 역으로 사고를 쳐서라도

자신을 말려줄 사람을 생산하려고 하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질러 졌을 때는 유승민처럼 너무 늦은 것이며 수습은 난망입니다. 

별명이 잘 자란 또라이인데 그게 자신을 거꾸로 


타자화, 대상화 하고 위악을 저지르는 이방인의 심리입니다. 

남을 지배할 권력적 에너지가 없으므로 자신을 길거리에 함부로 투척하여


남이 자신을 어떻게 집적거리는지 보는 거지요.

권력적인 샤르트르와 대비되는 반권력적 까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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