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대를 일치시키는 데 실패한 경우
액체로 가득찬 잠잠한 냄비에 돌멩이를 던져보자.
냄비 안은 액체 매질이라는 내부적 대칭들로 균일한 계가 성립해있었다.
또한 액체와 고체끼리는 운동량이 전달된다는 공유되는 토대가 있다.
액체는 외부에서 작용한 대략 운동량이라는 외력을 물결파를 생성하며 내부적으로 처리한다.
이번엔 같은 냄비에 성냥불을 던져보자.
그랬더니 수면이 잠깐 불타오르다가 이내 불이 꺼졌으며 냄비엔 액체가 좀 남아있었다.
사실 냄비엔 물과 기름이 함께 들어있었던 거다.
물과 기름이 불이 붙느냐 아니냐만으로 분류될 순 없지만 이번엔 외력이 성냥불이라는 설정 하에 들어가보자.
기름은 가연성이라는 내부적 대칭들로 균일한 계가 성립해있었으며 물은 비가연성이라는 내부적 대칭들로 균일한 계가 성립해있었다.
다만 성냥 역시 가연성이라는 토대 위에 있으므로 성냥불에 대하여 물은 토대가 달라 반응하지 못하는 즉 비사건이며 비존재이다.
엄밀히는 열의 전도성이라는 토대에서는 물온도가 미약하게 오르는 반응이 있었겠으나 이 경우엔 기름에서의 반응과 비교하자면 안 쳐준다고 할 수 있겠다.
기름은 외부에서 작용한 대략 불씨라는 외력을 불을 번지게 함으로서 내부적으로 처리한다.
물에 성냥불을 던졌는데 불이 안 붙는 걸 보고 계는 균일했다면서 왜 사건이 벌어지지 않나고 말하면 오류다.
물 내부적 대칭들의 균일함과 외력과는 토대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이 경우 외력이 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의 온도가 코딱지만큼 올랐을 수는 있으니 열의 전도라는 관점에선 사건이 일어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기름에 돌멩이를 던져놓고 어째서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냐고 질문할 순 없다.
----서열관계를 착각하는 경우
토대라는 말엔 이미 전체와 부분과 그 사이 서열관계까지 들어있다.
기름과 성냥불의 사건을 자세히 뜯어보자.
기름에 성냥불이 닿으면 가연성이라는 내부적 대칭들로 균일한 '기름-접촉-성냥불'이라는 계가 성립한다.
가연성 물질은 탈 거면 다 같이 타든가 아니면 다 같이 잠잠해야하는 데 초기에 이 계엔 성냥불 부분만 불타오르고 있으므로 에너지의 평형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모순을 일으킨 성냥불의 다이빙은 기름 입장에서 외력이라 할 수 있다.
이건 액체에 돌멩이를 던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식이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화염이 계의 부분인 성냥불에서 전체인 기름까지로 확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에너지의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수렴한다는 점이다.
토대가 되는 가연성은 불이 접촉했을 때 옮겨 붙을 수 있다면 다 옮겨붙는다는 개념이므로, 성냥불이 기름에 옮겨붙는 건 토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부로 결따라 진행하는 거다.
다만 계 내부가 불 타게 될수록 더 이상 탈 것이 남지 않게되는 건 점점 이상 수렴이 진행될 포텐셜은 소모되어 간다는 말이며 이 맥락에서도 전체와 부분의 서열관계는 명확하다.
귀납적으로 눈에 보이는 하부구조의 확산과 연역했을 때 상부구조의 확산은 에너지의 맥락에서 위상이 전혀 다르다.
다시말해 상부구조의 수렴은 하부구조에서 확산으로 착각될 수 있으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사건은 내부적으로 수렴수렴할 뿐이며 그와 동시에 통제가능성 면에선 효율을 소모하므로 확산확산이라 할 수 있다.
틀린 귀납-불이 번지므로 확산하는구나.
바른 연역-가연성의 토대 위에서 비가연성이라는 외부로 탈출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결따라 진행하므로 사건은 수렴하는구나.
방향성이 헷갈린다면 전체와 부분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연습을 해야한다.
방향성을 사유하다가 까딱 단어에 매몰되어 맥락을 놓쳐버리면 귀납적으로 사유하는 즉 틀린 연역을 해버리게 된다.
전체와 부분과의 서열관계를 혼동하면, 사유는 확산해버려서 돌고 도는 순환에 빠지거나 아예 방향을 착각해서 산으로 가니 결과적으로 귀신이 있다는 헛소리와 같게 된다.
전체와 부분을 분류하는 관점으로 사유하면 이미 그 사이에 명백하게 뒤짚히지 않는 서열관계가 의식되니 헷갈릴 여지가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