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니 도덕이니 관념에 불과하고 포지셔닝 우위가 포지션 열위를 지배하는 것은 현실이다. 부모들이 자식들 검사나 의사만드려는 것도 사회의 꼬리가 아니라 머리에 가까워야 편하다는 경험에서 나온다. 그러나 포지션은 시스템 전체의 성장방향에 의해 재편성된다. 초등학교 교실의 선악대결에서는 선생님이 편들어주기때문에 선이 이긴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관념은 필요없고 권력을 가진사람이 이긴다. 삐뚤어진 우병우처럼 권력에 줄서다가 촛불시민에 얻어터진다. 꼬리위에 머리있고 머리위에 공론있다. 머리는 공론의 대표자에 불과하다. 무엇인가? 소실점의 소실점 찾기다.
하다못해 북한에서도 소매치기에게는 정의가 실현된다. 그러나 북한사회는 부패로 작동한다. 인류 곳곳에 독재와 군부와 종교권력의 억압이 만연한다. 대한민국으로 보면 언론과 사학이 중간단위이지만 인류전체로 보면 국가가 중간단위다. 대한민국의 중간집단인 언론과 사학이 까부는 것은 국가단위에서 시민권력이 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고, 카다피와 김정은이 까부는 것은 인류단위에서 국제연합이 덜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가단위 사건이 있기 때문에 사건에 참여한 자들에게 시민권이 있다. 역시 인류단위 사건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인류에게 인권이 보장된다. 모든 인류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인류단위 사건인 문명을 완성하려는 역사의 에너지 흐름이 작동하고 있다.
결국은 전체를 보냐 부분을 보냐다. 부분에서는 대칭이 작동하므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지만 전체의 에너지 흐름은 일방향으로 작동한다. 인류전체로 보고 역사전체로 보면 언제나 정의가 이긴다. 에너지를 수렴하는 집단이 살아남고 에너지가 확산되는 집단은 사라진다.
개인에게는 에너지가 없고 집단에게서 에너지가 나오며 방향은 일방향이다. 치명적인 이야기다. 개인은 대표성을 얻음으로써 집단을 조직할 수 있다. 대표자는 대표한다. 무엇인가? 대표자는 자기의지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집단의지를 대표할 수만 있다는 것이다. 대표안하면 짤린다. 개인은 자기의지를 앞세우다가 집단에 치이고, 집단구성원은 자기의지를 앞세우다가 대표에게 혼나고, 대표자가 자기의지를 앞세우면 대표자가 아니므로 짤린다. 최후에 남는것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지 그 자체다. 집단의지 자체가 실체가 있다고 볼수 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투사 자손이 불쌍해서 챙기겠는가? 눈물콧물 신파주의 몸에 해롭다. 그 방향으로 가야 공동체가 보존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인류문명은 인류문명이 보존되고 인류단위로 동원가능한 구조로 간다. 집단의 해체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있을 수 있는가? 그건 이미 해체됬기 때문에 집단이 아니다. 말인즉슨 인류가 가는 길도 물리적으로 답이 나와있고, 개인이 가는 길도 물리적으로 답이나와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인류의 지속적성장이 담보되는 방향으로 가고, 개인은 집단의지가 가는 방향으로 간다. 안가면? 죽는다. 진리에게는 진리의 입장이 있다.
"에너지를 수렴하는 집단이 살아남고 에너지가 확산되는 집단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