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의 이야기를 읽었던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들의 천년제국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는 점이 종종 느껴집니다. 그 기초는 싸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합니다.
일회성의 싸움이 아니라 병참기지를 건설하고 보급체제를 구축하는 등 구조적인 승리방식을 적에게 드러냄으로써 상대편조차 그 방식에 승복하고 그 합리성을 모방하게 하는 그러한 과정 말입니다.
말이 좋아 실크로드지 역사적으로는 장구한 전쟁이었습니다. 실크로드의 교역체제가 가져다주는 이점과 합리성이 결국에는 그 길을 모든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로 만들었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아군의 사기이자 정당성의 확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싸우는 건 쉽다. 어려운 건 병사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것." 카이사르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즉,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함이 있고,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병사의 체험,
그리고 이겨놓고 보니 "적이 이기는 것보다 우리가 이기는 게, 적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훨씬 나았다"는 자부심. 그 자부심도 바탕에 깔려서 다음의 승리를 기약하는 것.
이게 카이사르군대의 백전백승을 뒷받침하는 '병사의 사기'였던 것입니다.
생명탈핵실크로드의 자부심을 뒷받침해줄 명강연을 소개합니다.
동영상
http://cafe.daum.net/earthlifesilkroad/iaCQ/11
생명과 탈핵의 코스모폴리스를 향하여
2016. 11.
조승래 (청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민교협공동의장)
생명·탈핵 실크로드 준비단의 발족은 우리의 시민환경운동이 전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이제는 국가 단위의 운동만으로는 현대 사회의 제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음을 우리 사회운동가들이 깨달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세계가 보편적으로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별 국가 단위를 넘어 초국가적 시민성을 고취해야 한다는 인식을 우리 운동가들이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미 세계 경제에 대한 국민 국가의 통제력이 약화되어 가고 있었던 1990년대부터 제기되었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세계화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초국가적 기구의 수립도 중요하지만 더 절실한 것은 그것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도덕적 실천적 기반인 초국가적 시민성의 구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유럽 공동체의 경우, 초국가적 기구를 수립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선거로 뽑힌 시민들의 대표들보다는 전문 기술 관료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그 결과 유럽은 ‘기업가들의 유럽’이 되었지 ‘시민들의 유럽’이 되지는 못 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유럽 금융위기의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 연합은 시민들의 분노와 열정을 반영하지도 못 했으며 헌신과 연대를 유도해 내지도 못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찍이 체코 대통령 하벨은 오늘날 유럽은 공동의 윤리의 부재로 인해 진정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유럽 통합의 윤리와 정신이 구현될 수 있는 가치를 고양하기 위한 범 유럽적 기구의 창설을 제창한바 있다. 또한 1995년에 출간된 전 지구적 거버넌스 위원회의 보고서는 전 지구적 시민성을 고양하고 전 지구적 시민 윤리를 광범위하게 고취시켜 단지 경제적 교환과 개량된 의사소통수단에 기초한 지구촌을 보편적 도덕 공동체로 변형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번 생명 탈핵 실크로드 준비단이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또한 1990년대에 들어와 더욱 활발해진 국제적 환경 운동과 인권 운동으로 인해, 드디어 전 지구적 시장과 미디어의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전 지구적 시민 사회의 출현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자, 전 지구적 혹은 인류적 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탈 영토적 전 지구적 시민성에 대한 이론적 모색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초국가적 시민성을 고양시키기 위한 시민 교육이 제창되기도 했다. 전 세계의 학생들에게 국민적 정체성을 뛰어넘어 먼저 인류공동체에 대해 충성심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코스모폴리타니즘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었다. 이는 세계화가 초래한 여러 문제들을 더 이상 개별적 국민 국가의 차원에서 해결하기가 점점 힘들어 지는 현실에서 전 지구적 거버넌스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세계화 과정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한 초국가적 자본과 일부 강대국들의 패권적 행태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인류애에 기초한 지구 공동체의 수립을 위한 이론적 모색이 시급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근대 국민 국가 시대에 들어와 빛을 잃은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고전적 이상이 어차피 도래한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편협한 민족주의의 극복과 전 지구적 정의의 실현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생명·탈핵 실크로드 준비단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바로 생명·탈핵의 코스모폴리스이다.
지성사적으로 볼 때 코스모폴리타니즘은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의 철학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시민성과 연계시켜 발전시킨 것은 스토아학파였다. 주지하다시피 이성을 소유한 존재로서 인간의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평등을 믿었던 스토아학파는 코스모폴리스를 시공을 초월한 자연법이 지배하는 하나의 세계로 인식했다. 따라서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그러한 코스모폴리스의 한 부분인 로마 공화국이 공동의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법이 지배하는 정치 공동체라고 역설하면서 공화주의적 덕과 시민성을 강조했다.
키케로는 단지 로마 시민들이 각별히 유덕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공동이 지배하는 로마 공화국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도 인간으로서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덕한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키케로와 마찬가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지적 능력과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정 부정을 가르는 법의 원천이고 그러한 법을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을 공화국의 동료 시민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세계는 하나의 폴리스라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아 사상을 이어 받은 근대의 정치 철학자 몽테스키외도 자신은 개인이기 이전에 가족의 구성원이며 가족의 구성원이기 이전에 프랑스인이요 프랑스인 이전에 유럽인이고 유럽인이기 이전에 인류의 한 구성원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특수한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범죄 행위라고 단언했다.
칸트의 코스모폴리타니즘도 스토아학파의 그것을 전유한 것이었다. 그의 평등하고 이성적인 인간들의 목적의 왕국이라는 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개개인의 인간들을 인류 보편적 국가의 시민으로 취급하는 코스모폴리스의 법으로 이 세계를 국가들의 연방으로 재편함으로써 영구적 평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 법은 이방인이 다른 국가의 영토에서 적대적으로 취급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보편적 공동체에 속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구상의 한 곳에서 가해지는 그러한 법에 대한 침해가 모든 곳에서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스폴리타니즘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현대 학자들은 지성사에 나타난 이러한 주장들을 강조하고 있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의 기초는 모든 인간이 이성과 인간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고 하나의 보편적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도덕적 의무의 대상은 우연적이고 특수한 조직이 아니라 인류 전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번 생명·탈핵 실크로드 준비단의 발족은 바로 이러한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인류 앞에 밀어 닥친 환경 재앙은 종말 시계의 바늘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칸트의 말처럼 지구상의 한 곳에서 가해지는 환경적 범죄 행위는 모든 곳에서 그 폐해가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전 지구적 자본의 지배가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책임 회피의 주술을 걸 때 깨어 있는 세계 시민으로서 연대하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살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명·탈핵 실크로드 준비단이여, 지구를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