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사고의 원형은 주역의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모든 아이디어를 복제하는 사유의 원본 모형이 된다. 원형이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를 의미한다. 탄생하고, 성장하고, 도달하고, 멈춘다. 원형이정은 변화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중용의 사고방식으로 발전한다. 정貞이 기승전결의 결結에 해당된다는 점이 각별하다. 변화가 원인이고 안정으로 사건은 종결된다. 세상을 변화 속의 균형으로 보는 주역의 관점이 세상을 불변으로 보는 서구의 원자론과 발상법이 다른데 주목해야 한다. 양자역학의 시대에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세상을 유柔로 볼 것인가, 강剛으로 볼 것인가? 유는 움직이고 강은 머무른다. 유가 길이라면 강은 집이다. 집이 먼저 있었고 집과 집 사이를 연결하여 길이 만들어졌는가, 아니면 길이 먼저 있었고 길이 끝나는 곳이 집이 된 것인가? 길이 먼저고 유가 먼저다. 원형이정의 정貞은 안정이다. 안정으로 끝난다. 변화가 안정에 앞선다. 세상을 변화로 이해하는 관점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길이 먼저다. 길은 액션이다. 액션이 먼저다. 가다가 막히면 방향을 바꾸는 것이 집이다. 집은 길의 말단부다. 강은 유의 교착상태다. 우리는 존재가 먼저라고 생각한다. 존재가 먼저고 변화는 존재에 딸려 온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변화가 나란한 것이 존재다. 액션이 먼저다. 우주는 액션이다. 문제는 인류에게 액션을 표현할 언어가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언어가 관측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머물러야 관측된다. 변화를 관측하지 못하고 안정을 관측한다. 모든 관측된 것은 왜곡된 것이다. 생선을 요리하려면 붙잡아야 한다. 관측하려면 액션을 멈추어야 한다. 원형이정의 변화에서 인간은 원형이를 날려먹고 마지막 정 단계를 관측한다. 왜곡이다. ### 바람이 부는가, 부는 것이 바람인가? 부는 것이 먼저다. 인간이 그것을 보고 바람이라고 명명한다. 인간은 바람+불다로 알지만 천만에. 바람이 갑자기 불어올 리가 없다. 자연은 기압>바람>불다 순서다. 인간이 개입하여 관측>바람>불다로 왜곡된다. 언어는 주어+동사다. 동사는 주어에 딸려 있다. 용언은 체언에 딸려 있다. 길이 집에 딸려 있다. 틀렸다. 관측자 중심으로 보는 인간의 언어가 잘못된 데서 꼬였다. 바람이 불기 전에 기압골이 만들어져 있었다. 비가 내리기 전에 구름이 만들어져 있었다. 진실 = 액션 + 주어 + 술어 거짓 = 관측 + 주어 + 술어 자연의 진실 - 기압 > 바람 > 불다 인간의 착각 - 관측 > 바람 > 불다 우리는 강체가 운동한다고 믿지만 유체 + 강체 + 운동이다. 부는 그것 + 바람 + 불다가 된다. 부는 그것은 기압이다. 기압은 유체다. 바람은 강체다. 세상은 존재 + 운동이 아니라 유체 + 강체 + 운동이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그것에 앞선다. 우리는 사람과 행동으로 이해하지만 권력과 사람과 행동이다. 유체 중심, 변화 중심, 에너지 중심의 사고를 얻어야 한다. 유체는 계를 이루고 계 내부에 압력을 형성하며 압력의 균형이 강체다. 닫힌계를 중심으로 보는 원형이정의 사고로 갈아타야 한다. |